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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14일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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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꿈치 까지는 새 구두, 포기 못하는 이유

김나영 서울 양정중학교 사회과 교사

입력 2024-04-12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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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쌀수록 포기 어려워
고통 견디고 오래 보관
회수 못하는 '매몰 비용'
가볍게 무시할 수 있어야
합리적인 선택 가능해
사진설명

Q. 주말 혼자 점심을 해결해야 해서 편의점에 갔어요. 마침 하프 냉동 피자를 50% 할인해서 4000원에 파는 거예요. 냉큼 집어 들었죠. 집에 와서 피자를 데우려고 하는데, 친구한테 전화가 걸려왔어요. 저희 집에 와서 같이 점심 먹고 놀기로 했죠. 친구가 먹을 피자를 사러 다시 편의점에 달려갔어요. 그런데 가격이 원래대로 8000원! 편의점에서 1시간 동안만 세일을 진행했다는 거예요. 할 수 없이 정상가로 사 왔어요. 두 피자 간에 차이가 있는지 살펴봤는데, 모든 것이 똑같았어요. 친구한테 얘기하니, 어쩐지 비싸게 사 온 피자가 더 끌린다며 그걸 달라고 하는 거 있죠. 저도 그런 느낌이라 반반씩 나눠 먹었어요. 분명 똑같은 피자인데 왜 이런 마음이 들었을까요.

맛과 품질, 소비기한까지 똑같은 두 하프 피자. 사 온 가격만 다르네요. 합리적으로 생각하면 얼마에 사 왔든 같은 피자니까 어떤 쪽을 선택해도 무방하죠. 하지만 비싸게 사 온 피자가 더 끌리는 건 지불한 돈이 얼마인지 신경 쓰고 있기 때문일 거예요.

뷔페식당에 가면 배가 불러도 더 먹게 될 때가 있지 않나요? '내가 낸 돈이 얼마인데, 이 정도는 먹어야지'이러면서요. 그러다 과식해서 속이 더부룩해진 경험! 저도 있습니다. 이미 지불했고 되돌려받을 수 없는 돈을 '매몰비용'이라고 하는데요, 매몰비용은 무시해야 합리적인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몇 해 전 저는 좋아하는 가수 콘서트 티켓을 10만원 주고 예매했고, 콘서트 날만 기다렸어요. 그런데 콘서트 당일 감기에 걸려 콧물·기침에 열까지 났어요. 콘서트 당일에는 티켓이 환불도 되지 않았어요. 콘서트에 못 가면 10만원뿐만 아니라 예매를 위해 들였던 노력과 시간을 모두 잃게 되는 것 같았어요. 게다가 그날은 폭풍우가 와서 운전도 쉽지 않았어요. 그럼에도 저는 폭풍우를 뚫고 콘서트에 갔고, 콘서트를 보는 내내 기침을 참느라 집중할 수가 없었어요. 노래는 전혀 들리지 않았고, 기침에 온 신경이 쓰였어요. 그러고는 집에 와서 앓아 누웠어요. 콘서트 당일 제가 할 수 있던 선택은 '1) 집에서 쉬기' '2) 폭풍우를 뚫고 가서 아픈 걸 참으며 콘서트 보기' 두 가지가 있었어요. 누가 봐도 1)을 선택하는 것이 합리적입니다. 저는 지불한 돈과 시간이 아깝다고 생각해 잘못된 선택을 한 거죠. 이미 지불해서 회수할 수 없는 돈은 무시하고, 지금부터 들어가는 비용과 만족감을 비교해서 선택해야 합니다. 콘서트 사례에서 콘서트장에 가는 데 들어가는 비용은 '폭풍우를 뚫고 운전하기, 객석에서 아픔을 참기' 등일 거예요. 콘서트를 보면서 느낄 수 있는 만족감이 이런 비용보다 적다면 집에서 쉬는 게 합리적인 선택인 거고요.

비슷한 사례를 한번 상상해 볼게요. 여러분이 예쁜 구두를 새로 샀어요. 그런데 신고 다녀보니 불편하고 뒤꿈치가 까졌어요. 아무래도 발 모양이나 크기와 잘 맞지 않게 만들어진 구두 같았어요. 뒤꿈치 상처에 밴드를 붙이고 다시 도전해 봤습니다. 20분쯤 있으니 또다시 통증이 느껴집니다. 이 구두가 계속 불편하다고 할 때 여러분은 몇 번이나 더 도전하실 건가요. 결국 포기하게 되었다고 해봅시다. 구두를 버리거나 기부하기 전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 동안 신발장에 보관할 것 같나요. 구두 가격에 얼마를 지불했는지에 따라 몇 번이나 더 구두 길들이기에 도전할지, 또 신발장에 얼마나 보관할지 달라지지 않나요.

비쌀수록 포기하기 전까지 더 많은 고통을 견디고, 신발장에 더 오래 보관하려 하는 사례가 많습니다. 이미 신은 구두여서 환불이 안 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구두 가격은 매몰비용인데 말이지요. '이미 엎질러진 물'인데 아깝다고 여기 집착하다 보면 더 큰 비용을 지불하게 되는 일이 많습니다. 이제부터는 물이 엎질러지기 전에 신중하게 선택하되 '이미 엎질러진 물'은 가볍게 무시할 수 있도록 의식적으로 노력해보는 게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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