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나영 서울 양정중학교 사회과 교사
입력 2024-05-09 16:33teen.mk.co.kr
2024년 12월 15일 일요일
Q.저는 아버지 직장 때문에 2년간 미국에 오게 되었어요. 말로만 듣던 미국 쇼핑몰에서 K김밥도 사 먹고 즐겁게 지내요. 그런데 물가가 비싸긴 해요. 요즘 환율이 올라 더 그렇게 느끼는 걸 거예요. 언제나 머릿속으로 '이건 원화로 얼마지?' 계산하거든요. 환율 영향만은 아닌 게, 미국 친구들도 물가가 올랐다고 하면서 투덜대긴 하더라고요. 그런데 신기한 건, 대형 쇼핑몰엔 언제나 사람이 많다는 거예요. 구경만 하는 게 아니라 많이 사기도 하고요. 물가가 올라서 힘들다면서도 쇼핑을 계속하는 미국인들, 그 이유가 뭘까요?
미국인들이 정말 소비지출을 많이 하고 있는지 확인해봤어요. <그림1> 그래프는 미국인들의 소비지출 정도를 보여주는 거예요. 정말 꾸준히 증가하고 있네요! 2020년 초, 팬데믹의 영향으로 크게 줄었다가 이후에는 꾸준히 늘고 있습니다. 2024년 3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3.5%(지난해 3월과 비교했을 때 3.5% 상승했다는 의미)예요. 소비자물가는 소비자들이 사용하는 상품들의 평균적인 가격 수준이라 보면 됩니다. 2022년 9월에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9.1%에 달하기도 했으니 다소 안정돼 보이긴 하네요. 하지만 물가 '상승률'이 감소했다는 거지 물가가 낮아졌다는 말은 아닙니다. 최근 몇 년 사이 물가가 급격히 올랐는데, 그 물가 수준보다 더 올라간 것이니까요. 현재 미국인들은 경제 상황이 좋지 않다, 물가가 너무 올라서 힘들다고 느끼고 있더라고요. 이런 것들을 지표로 나타내주는 '소비자심리지수'가 있어서 찾아봤습니다. 소비자심리지수는 100보다 크면 소비자들이 평균적인 경기 상황보다 낫다고 느끼는 거고, 100보다 작으면 평균적인 경기 상황보다 좋지 않다고 느끼는 거예요.
<그림2> 그래프를 보면 2024년 4월 미국의 소비자심리지수가 77.2로 나온 거 보이시죠? 점차 회복되고 있긴 해도, 아직 팬데믹 전보다는 한참 낮은 수준입니다. 미국인들이 '경제 상황이 좋지 않고, 물가가 비싸서 부담'이라고 느끼고 있다는 얘기예요. 하지만 부담 된다면서도 실제 개인의 소비지출은 지속적으로 늘고 있습니다. "어휴 뭐가 이리 비싸요? 블과 몇 년 전엔 5000원이었는데 지금 1만원이라고요? (하지만) 10개만 주세요!" 하는 거잖아요. 이상하죠? '왜 그런 걸까?' 탐정처럼 고민을 해봤어요. 한 가지 가능성은, '쇼핑하던 습관을 버릴 수 없어 물가가 올라도 계속 산다'는 것입니다. 만약 그렇다면, 예전에 비해 소비지출이 더 늘어나지는 않아야 하는 것 아닐까요? 소비하는 게 부담되지만, 쇼핑을 줄이기 힘든 거라면 소비지출이 살짝 줄거나 예전 정도 수준으로 유지되겠죠. 또 구매할 수 있는 돈 자체가 줄어, 장기간 지속되긴 힘들고요. 그런데 <그림1>에서 볼 수 있듯, 개인의 소비지출은 지속적으로 늘고 있습니다. 또 다른 가능성! '소득이 늘어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어요. 찾아보니, 정말 그랬습니다. 물가가 오른 걸 반영해도 작년에 비해 소득이 0.6% 증가했다고 해요(2024년 3월 기준). 예를 들어 식빵이 하나에 3000원이었다가 6000원이 됐다고 해봐요. 가격이 2배가 된 거죠. 하지만 월급도 200만원이었다가 400만원이 됐다고 해봐요. 그럼 구매력은 변함이 없는 거예요. 그런데도 사람들은 물가가 올라 힘들다고 착각하는 겁니다. 엄살 아닌 엄살을 부리게 되는 건데요. 이처럼 실질적인 구매력을 고려하지 않고, 가격 그 자체만 보고 비싸다고 느끼는 걸 경제학에서는 '화폐 착각(money illusion)'이라고 합니다. 소득이 높아진 것은 내가 일을 열심히 하고, 성과를 잘 내서 마땅히 높아진 거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럼 그만큼 더 풍요로운 소비를 하고 싶은데, 물가가 올라 있으니 풍요로운 소비를 못한다는 데서 불만이 생기는 겁니다.
물가가 올랐다고 툴툴거리면서도 소비는 많이 하는 현상. 소득이 높아진 건 내 노력으로 마땅히 받는 대가고, 물가가 오른 건 경제가 나빠서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거라면 설명이 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