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en.mk.co.kr

2024년 04월 29일 월요일

경제 공부 시사·경제 생활 속 경제

당신의 지갑이 열린 이유 중 하나 … '앵커링 효과'

김나영 서울 양정중학교 사회과 교사

입력 2024-03-29 10:04
목록
처음 접한 가격과 제품이
구매 판단 기준으로 작용
상대적으로 싸다고 여겨
 
사진설명
게티이미지뱅크

Q.얼마 전, 미용실에 갔다가 패션잡지를 보게 되었어요. 속옷에 다이아몬드가 장식된 속옷이 있는 거 있죠! 가격은 그만큼 엄청나게 비쌌어요. 보이지도 않는 속옷에 다이아몬드를 장식하고, 비싼 가격을 매겨 두면 아무도 사는 사람이 없을 것 같아요. 왜 이런 제품을 만드는 걸까요?

다이아몬드가 박힌 속옷! 정말 의아하죠. '대체 저걸 사는 사람이 있기나 할까?' 하는 의문이 들고요. 회사에서도 그걸 팔려고 만든 건 아닐 거예요. 팔려고 만들지 않으면 왜 만들까요? 우리 회사 제품은 고급스럽다는 이미지를 만들고, 사람들의 머릿속에 그 제품의 가격을 기준점으로 만들고자 하는 걸 거예요. 기준점이란 게 뭐고, 우리의 선택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아볼게요.

사람을 사귈 때 첫인상이 중요하다는 얘기는 들어봤을 거예요. 첫인상은 사람과의 관계에만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에요. 무언가를 선택할 때, 여러분이 물건을 구매할 때도 영향을 준답니다. 처음 접하게 된 무언가가 내 선택의 기준점으로 작용하는 것이죠.

제가 얼마 전 봄 트렌치코트가 필요해서 친구와 쇼핑몰에 갔어요. 의류 매장 옆을 지나가는데 진열대에 고급스럽게 보이는 트렌치코트가 저를 보며 사라고 유혹하는 거 있죠. 가격표를 보니 무려 100만원! 트렌치코트 하나에 100만원이라니 믿을 수 없는 가격이라고 생각하며 매장 안으로 들어가 봅니다.

여러 트렌치코트를 입고 벗으며 구경하다 보니 어느새 매장에서 가장 마음에 든 트렌치코트가 손에 들려 있습니다. 가격은 40만원. 가격표엔 정가 80만원이 적혀 있고 옆엔 50% 할인 표시가 붙어 있어요. 트렌치코트가 40만원이라니 비싸긴 하지만 '100만원짜리를 파는 브랜드에서 40만원이라면 횡재가 아닐까? 더구나 50%나 할인한 거잖아?'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때 친구가 부추겨요. "야, 가격도 괜찮네. 아까 저건 100만 원이었잖아." 100만원짜리 트렌치코트를 파는 매장에서 40만원짜리는 거저나 다름없다며 스스로 합리화하고 계산대 앞에 섭니다.

결제를 마치고 쇼핑백을 한 손에 들고 나오니 문득 출출함이 느껴지네요. 어느 음식점에 갈까 둘러보니 사람들이 줄 서 있는 수제 햄버거집이 괜찮아 보여요. 어쩐지 줄을 서지 않은 곳보다는 사람들이 줄을 서 있는 곳이 더 맛있는 곳일 것 같아요. 15분쯤 기다려 식당에 들어갔어요. 내부도 역시 근사해 보입니다. 메뉴판을 넘겨보니 셰프 특선 햄버거가 가장 첫 페이지에 있습니다. 가격은 3만원. 다음 장으로 넘겨 보니 치즈버거 세트가 1만5000원이에요. 햄버거 세트 1만5000원이 저렴한 가격은 아니지만 3만원짜리 햄버거를 판매하는 집에서 1만5000원짜리 세트는 꽤 괜찮은 가격으로 느껴집니다.

여러분, 가격의 비밀을 알아채셨나요? 실제 음식점이나 의류 매장에서 가장 비싼 제품을 내세우고, 상대적으로 다른 제품을 싸게 느끼게 해서 구매를 유도한다는 걸 말이에요. 정가에서의 할인은 더욱 그 상품의 원래 가치보다 저렴한 것으로 착각하게 만들고요. 여러분이 진열대에서 본 비싼 패딩의 가격, 실제 구매한 패딩의 정가, 햄버거집 메뉴판 첫 장에 있던 메뉴의 가격. 여러분에게 '처음' 제시된 이 가격들이 판단의 기준으로 작용하게 만든 거랍니다.

행동경제학에서는 이런 현상을 '앵커링 효과(anchoring effect; 닻내림 효과)'라고 불러요. 앵커는 배의 닻을 뜻하는 단어로 배가 닻을 내려 정박하는 것처럼 처음 접한 어떤 숫자나 가격 혹은 제품 등이 판단의 기준이 된다는 의미지요. 다이아몬드가 박힌 속옷도 이런 앵커링 마케팅의 하나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사진설명

[김나영 서울 양정중학교 사회과 교사]

인쇄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