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en.mk.co.kr

2024년 05월 14일 화요일

경제 공부 경제학 교실 역사 속 경제사

여왕의 시대는 저물고, 왕실 폐지 기로에 선 英

임성택 경제경영연구소 연구원

입력 2022-09-30 09:47
목록
지난 8일(현지시간) 세상을 떠난 고(故)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추모 사진 앞을 런던 시민들이 지나가고 있다. [AP = 연합뉴스]
△ 지난 8일(현지시간) 세상을 떠난 고(故)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추모 사진 앞을 런던 시민들이 지나가고 있다. [AP = 연합뉴스]

영국 여왕인 엘리자베스 2세가 지난 8일(현지 시간) 서거했다. 영국 곳곳에서 조문을 하기 위한 추모객들의 줄이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여왕은 생전에 사랑과 존경을 받았다.

엘리자베스 2세는 25세 나이로 대관식을 치른 이후 96세까지 장기간 재임하면서 현대 세계사의 주요 장면들을 함께했다. 13세였던 1939년에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영국 국민과 함께 독일군의 폭격을 견뎌냈고, 성인이 되면서 본인도 자원해 군대에 입대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귀족이 의무를 진다'는 의미)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부친인 조지 6세의 건강이 악화되자 공주였던 그녀는 섭정(군주가 너무 어리거나 연로할 때 통치를 대행하는 사람)으로 임명돼 조기에 군주로서의 임무를 수행했다. 그녀가 첫 임무로 영국 연방 국가들을 순회하던 도중인 1952년 조지 6세가 사망하자 왕위를 계승하게 된다. 여왕은 그리스 왕국 및 덴마크의 왕자였던 필리포스 왕자(훗날 개명해 필립공이 됨)와 결혼해 슬하에 2남 1녀를 두었다.

영국은 당시에 이미 입헌군주제로 완전히 자리잡은 이후였기 때문에 국왕은 나라를 직접 통치할 권한이 없는 상징적인 존재였다. 엘리자베스 2세는 군주로서 국가 정치에 개입을 거의 하지 않았지만 군주라는 거대한 상징적 위상을 인식하고 있었다. 이로 인해 각종 국가 행사와 영연방과 관련한 의전 활동에 주력했고, 이를 통해 국민을 결집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여왕은 역사상 두 번째로 오랜 기간 재위한 군주였다. 그러나 긴 제위기간은 주로 영국의 쇠락과 맞물려 있었다. 과거 영국은 대항해시대와 엘리자베스 1세 시대 이후 전 세계 면적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영토와 식민지를 거느리며 대영제국을 형성했다. 특히 인도는 영국의 부(富)의 상징으로 '영국 왕관의 보석'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1차 대전 이후 우드로 윌슨 미국 대통령의 민족자결주의 선언으로 인도의 민족지도자 간디가 주도하는 '비폭력·불복종 운동'을 비롯해 식민지들의 독립 움직임이 강해졌다.

2차 대전은 영국의 영광스러운 시절에 종지부를 찍었다. 영국은 승전국이었지만 전쟁 수행 과정에서 막대한 피해를 입었고, 미국으로부터 빌린 전쟁 물자를 상환하기 위해 큰 경제적 부담을 지게 됐다. 이후 새롭게 체결된 브레턴우즈 체제(미국 달러를 기준으로 한 세계적 고정 환율 시스템)로 인해 영국 파운드화는 기축통화 지위를 상실하게 된다.

전 세계에 있던 식민지들의 독립도 가시화됐다. 1947년에는 인도가 영연방에서 독립했다. 가나, 나이지리아, 우간다, 케냐 등의 아프리카 식민지도 1950년대 이후 차례로 독립했다. 1956년에는 이집트의 친영 정권이 쿠데타에 의해 무너지고 해상 물류의 핵심 통로인 수에즈운하(지중해와 홍해를 연결하는 운하)의 소유권도 빼앗겼다. 영국은 프랑스와 이스라엘과 함께 2차 중동전쟁을 일으켰지만 운하 통제권 회수에 실패했고, 중동 지역에 대한 영향력도 함께 상실했다. 더 이상 대영제국은 실체가 없다는 점이 현실화된 것이다.

1970년대 영국은 소위 '영국병'이라 불린 현상을 경험했다. 이는 산업을 국유화하는 과정에서 구조조정(기업의 과잉고용인원을 감축하는 것)을 하지 않으면서 생산성 저하를 불러일으키는 것을 말한다. 높은 인건비와 비효율성으로 인해 막대한 손실을 입고 경영 위기에 처한 기업들을 정부는 국유화로 해결하려 했다. 이로 인해 기업의 자발적 쇄신 노력은 부족하게 됐고, 막대한 손실이 정리해고로 이어지면서 노사갈등이 심해지고 파업이 만연하게 됐다. 또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표어로 시작된 복지정책은 정부 지출 증가와 물가상승을 함께 초래했다. 결국 1976년 국제통화기금(IMF)에서 구제금융 지원을 받는 처지에 이르렀다. 최근에는 국민투표에 의해 유럽연합(EU)에서 탈퇴하는 '브렉시트'가 진행되면서 영국 경제상황에 대한 부정적 견해가 이어지고 있다. 이에 왕위를 이어받은 찰스 3세가 모친의 노력을 이어받아 영국 왕가에 대한 존경을 되살릴 수 있을지에 관심이 커지고 있다.

인쇄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