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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14일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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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도적 1위 기업인데…상품 가격을 내린다고?

최봉제 매경 경제경영연구소 연구원

입력 2024-04-25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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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소수의 기업이 높은 시장점유율을 차지하는 과점시장(oligopoly)에서 기업은 제품 공급량을 줄이고 가격을 높임으로써 폭리를 취하곤 한다. 현실에는 정부 인허가, 특허 제도, 규모의 경제 등 신규 사업자의 진입을 제한하는 수많은 진입장벽이 존재하고 이로 인해 기업들 간 경쟁이 제한되기 일쑤이다. 그렇다면 경쟁이 제한된 시장에서 기업은 초과이윤을 오랫동안 향유할 수 있을까? 이때 기업은 터무니없이 높은 가격을 책정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한 대답은 '그러기 쉽지 않다'이다.

왜 그럴까? 얼핏 눈에 띌 만한 경쟁이 관찰되지 않는 시장일지라도 잠재적 경쟁사가 호시탐탐 시장 진입 기회를 엿보며 기존 기업의 지위에 도전하려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시장에 초과이윤을 누릴 기회가 남아 있는 한 이러한 시도를 멈추지 않고 계속 시장 바깥에서 동향을 예의주시하게 마련이다. 기업은 시장에서 독보적인 위치에 있더라도 잠재적 경쟁사의 진입을 저지하기 위해 전략적 행동을 취하지 않을 수 없다. 게임이론(game theory)은 이와 같이 과점시장에서 기업들 간 피 튀기는 경쟁 상황을 현실적으로 묘사하고 분석하는 데 유용한 분석도구다. 구체적 사례를 통해 이들 간 복잡한 속내를 살펴보자.

<사례> A사는 현재 AI 반도체 위탁생산 시장에서 지배적 사업자로 군림하고 있으며, B사는 이 시장으로의 진입을 고려하고 있다. A사는 B사의 이러한 움직임을 포착하고 이를 저지하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 A사는 '가격 인하'와 '가격 유지' 가운데 하나를 선택할 수 있고, 이를 관찰한 수 B사는 '진입 강행'과 '진입 철회' 가운데 하나를 선택한다. 아래 [그림]은 A사, B사 각각의 행동과 그에 따른 보수를 나타내는 게임나무(game tree)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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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반도체 위탁생산 시장에서 A사는 선행자(leader)로서 먼저 가격을 인하할지 그렇지 않으면 그대로 유지할지 선택할 수 있고, B사는 이를 관찰한 뒤 시장진입을 강행할지 그렇지 않으면 철회할지 결정해야 하는 후발자(follower)의 처지에 놓여 있다. 이처럼 한 참가자(player)의 선택이 먼저 이뤄지고, 그 후 다른 참가자의 최적 대응이 이뤄지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게임을 순차게임(sequential move game)이라고 하며 이러한 종류의 게임은 후발자의 선택을 먼저 분석하고 이를 토대로 선행자의 선택을 분석하는 방식(역진귀납)으로 분석해야 한다. 마치 '사다리 게임'에서 사다리의 맨 아래에 있는 당첨자로부터 위로 거슬러 올라가며 출발점을 찾는 것과 유사하다.


먼저 후발자 B사의 행동을 분석한다. 후발자 B사는 (1)선행자 A사가 '가격인하'를 선택했다면 '진입철회'를, (2)A사가 '가격유지'를 선택했다면 '진입강행'을 선택하는 것이 최선이다. 이제 이를 이용해 선행자 A사의 행동을 분석하자. (1), (2) 중 (1)일 때 A사의 보수(80)가 (2)일 때 보수(70)보다 크므로 선행자 A사는 '가격인하'를 선택하는 것이 최선이다. 따라서 이 게임은 선행자 A사는 '가격인하'를, 후발자 B사는 '진입철회'를 선택하고, A사와 B사가 각각 80과 40의 보수를 얻는 것으로 끝나게 된다. 결국 B사는 시장진입을 스스로 철회하는 선택을 하게 되는데 이는 A사가 B사의 시장진입을 저지하기 위해 제품 가격을 낮췄기 때문이다. A사 입장에서는 자신이 제품 가격을 유지하더라도 B사가 시장진입을 시도하지 않는 것이 최선이지만, B사 입장에서는 제품 가격이 유지되는 한 진입을 강행(70)하는 것이 철회(40)하는 것보다 더 낫기 때문에 A사가 가격을 인하하지 않는 한 B사의 도전은 계속될 것이다.

한편 A사가 제품 가격을 인하하면 B사는 이 시장에서 얻을 이익이 없다고 보고 진입을 철회한다. 이때 A사의 이익(80)은 B사의 시장진입을 허용할 때(70)보다 크다. 따라서 A사는 자사 제품 가격을 낮춰서라도 B사의 시장진입을 저지하려고 하는 것이다. 따라서 B사는 이 시장의 바깥에서 시장진입 기회를 노리되 진입을 하지는 않을 것이며 이러한 잠재적 위협으로 인해 A사는 제품 가격을 낮게 유지할 것이다. 이와 같이 겉으로 드러나는 경쟁은 없지만 언제든 가격, 비가격 경쟁이 일어날 수 있는 시장을 경합가능시장(contestable market)이라고 하며 이 시장에서 기업은 시장지배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가격을 한계비용 수준과 가깝게 유지하곤 한다. 즉, 잠재적 경쟁사가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시장지배력을 가진 기업의 폭리를 막을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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