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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금리 20%까지 올려 살인적 물가 잡았는데…

경제경영연구소 콘텐츠팀

입력 2024-04-12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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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3월 폴 볼커의 얼굴과 함께 금리 인상의 괴로움이라는 기사를 실은 타임지의 표지 사진. 당시 연준 의장이던 폴 볼커는 과감한 통화정책으로 고물가에 시달리던 미국 경제를 회복시켰다. 타임지

1973년 이집트는 시리아와 함께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했습니다. 3차 중동전쟁에서의 굴욕적 패배를 설욕하고 빼앗긴 영토를 회복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우방국을 잃을 수 없었던 미국은 군수물자를 이스라엘에 지원했고 결국 이스라엘의 승리로 전쟁이 마무리되었습니다. 이에 불만을 품은 아랍권 산유국들이 석유 생산량을 줄이고 이스라엘 편에 섰던 서방 국가에 석유 수출을 중단했습니다. 이 사건이 바로 제1차 석유파동입니다.

석유수출국기구(OPEC) 중심이었던 사우디아라비아는 석유 생산량을 매달 5%씩 감소시켰습니다. 이로 인해 배럴당 2.5달러였던 국제유가는 11.7달러로 4배 넘게 상승했습니다.

1979년에는 이란 혁명(입헌군주제인 팔레비 왕조가 무너지고 루홀라 호메이니의 이슬람 공화국이 들어선 사건으로, 종교 지도자가 최고 권력까지 가지는 사실상 신정 체제로 전환)과 이란·이라크 전쟁(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이 이란 혁명정권 타도 등을 목적으로 이란을 침공하면서 발생한 전쟁)으로 인해 석유가격은 또다시 3배 상승(제2차 석유파동)했습니다.

휘발유 가격이 상승하면서 전 세계가 큰 고통을 겪었습니다. 중화학공업 위주 산업구조로 원유 사용량이 많았던 한국 경제도 1980년 물가상승률이 30%에 달하는 등 충격을 받았습니다.

석유파동은 경제학 조류에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당시 주류였던 케인스학파 경제학을 받아들인 주요국 정부는 경기 침체와 디플레이션(물가 하락)이 발생할 때마다 경기안정화 정책(재정지출 확대, 통화 공급 증가)으로 경기 회복을 도모하곤 했습니다. 그러나 오일쇼크로 물가 상승에 경기 침체가 동반되는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이 발생했습니다. 정부가 실업을 해결하기 위해 돈을 풀자니 물가 상승이 더욱 심해지고, 물가를 진정시키기 위해 돈줄을 죄니 실업이 극심해지는 진퇴양난에 빠진 것입니다. 이후 작은 정부와 자유 시장 경제를 옹호하는 신고전학파 계열로 무게추가 이동하게 됩니다.

 

석유파동 이후 유가는 비교적 빠르게 하락세로 돌아섰지만 높은 물가상승률은 장기간 지속되었습니다. 물가상승률은 '관성'이 있어 공급 충격이 사라진다고 자연스럽게 예전 수준으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이는 물가가 '미래 물가 수준에 대한 기대'에도 영향을 받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내년에 물가가 더 오를 것이라고 예상한다면, 생활비 상승에 대비해 더 높은 임금을 요구하게 되고, 임금 상승은 제품 가격에 전가돼 현재 물가를 상승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합니다.

물가 안정은 고통스러운 긴축정책을 요구합니다. 높은 금리를 유지해 투자와 소비를 억제하고 물가 상승 압력이 사라질 때까지 실업률 상승을 감내해야 하는 것입니다.

1980년대 초 12%에 달하던 물가상승률을 적정 수준으로 낮추기 위해서는 얼마만큼의 고통을 감수해야 할까? 경제학자들은 통계분석을 통해 물가상승률을 1%포인트 낮추기 위해서는 적정 수준(당시 미국의 경우 약 6%)보다 1.8%포인트 높은 실업률을 감수해야 한다고 추산했습니다. 단번에 목표 물가상승률(4%)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실업률이 20%에 가깝게 상승해야 합니다. 반면 약한 경기 침체(실업률 8%)로 물가상승률을 조금씩 낮추는 전략(점진주의)을 취할 경우 약 7년이 걸립니다.

다수 경제학자들이 점진주의를 지지하는 가운데 '큰 고통 없이도 단시간에 물가상승률을 낮출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었습니다. 국민들이 중앙은행의 물가안정 노력을 진심이라고 믿어줄 경우 중앙은행이 물가상승률을 낮출 것이라는 발표만 보고도 곧바로 기대물가 수준을 낮추고 임금도 하향 조정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주장이 허황되다는 반론이 제기되었지만 적어도 석유파동 직후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으로 임명된 폴 볼커(1927~2019)는 진지하게 받아들였습니다.

 

볼커는 재무부에서 국제금융과 통화정책 업무를 맡아온 관료 출신입니다. 아서 번스와 윌리엄 밀러 등 연준 의장을 보좌하면서 이들이 긴축정책을 주저하다 높은 인플레이션을 초래한 것을 목격한 바 있습니다. 지미 카터 정부 연준 의장으로 임명된 볼커는 평소 소신에 따라 단호한 결단을 내렸습니다. 물가상승률을 낮추기 위해 금리를 20%까지 상승하도록 용인한 것입니다. 정치적으로는 자살행위에 가까운 이 조치로 인해 실업률은 약 10%까지 상승했지만, 약 3년 만에 물가상승률을 4%대로 하락시키는 데 성공하였습니다. 볼커는 중앙은행은 정치권의 압력으로부터 독립적인 의사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중요한 교훈을 남겼습니다. 이 교훈은 전 세계 중앙은행에 계승되고 있으며, 경제학원론 교과서에 소개될 만큼 보편적 지식이 되었습니다.

 

[경제경영연구소 콘텐츠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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