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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에 값을 매기면…'공유지 비극' 막을 수 있죠

최병일 경제경영연구소 책임연구원

입력 2023-11-30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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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서 흔하던 버펄로 멸종
주인 없는 야생동물 남획한 탓
축산농가 키우는 소들만 남아
지구 온난화 원인도 마찬가지
마구잡이로 탄소배출 못하게
상품화 통해 협상·거래 유도

사진설명
게티이미지뱅크

16세기 유럽인들이 북미 대륙에 처음 상륙했을 때 그곳에 서식하던 버펄로 개체수는 수천만 마리가 넘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후 본격적으로 유럽인들이 미국 대륙에 정착하면서 버펄로를 무분별하게 포획됐고, 그 결과 현재 미국에서 야생 버펄로를 찾아보기 어렵게 됐습니다. 미국 축산 농가에서 사육하는 소의 개체수는 육우(우유가 아닌 고기를 얻기 위해 사육하는 소)만 대략 3000만마리라고 합니다. 분명 500년 전 미국 대륙의 소는 대부분 버펄로였는데, 이제는 어렵게 유럽에서 배로 운송해온 소(육우)가 미국 소 개체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300~400년 전 미국에서 버펄로는 흔한 동물이었지만 유럽에서 막 수입해왔던 육우들은 희귀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주인이 없던 야생 버펄로는 무차별적으로 사냥하던 사람들을 피할 수 없었고, 개인이 축사에서 사육하던 육우는 안전하게 사료를 먹으며 새끼를 낳아 개체수를 증가시키면서 번성하게 됐습니다. 버펄로처럼 주인이 없어 남획되고 천연자원이 남용되는 현상을 경제학에서는 '공유지 비극'이라고 합니다.

노벨경제학상 수장자인 로널드 코스 교수는 이러한 공유지 비극에 대한 해결책으로 주인이 없는 공유자원에 소유권을 부여하자고 주장했습니다. 공유자원에 소유권을 부여하고 경제주체들이 협상과 거래를 통해 자원을 배분하면 공유지 비극을 예방할 수 있고, 자원도 효율적으로 배분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코스 교수의 이 같은 아이디어가 실현된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탄소배출권 거래제도'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의 대기(大氣)는 특정 국가나 개인이 소유할 수 없는 인류의 공유자원입니다. 공유자원인 지구의 대기는 주인이 없어 특정 국가가 남용하거나 다른 국가에 오염을 야기하는 행위를 강제로 막을 수 없습니다.

결과적으로 환경에 관심이 많은 일부 국가가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해 이산화탄소 배출을 감축하는 데 막대한 비용을 지출해도 다른 나라들이 이산화탄소 저감을 위해 함께 노력하지 않는다면 실질적 효과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이 때문에 '지구의 대기 혹은 환경오염'은 앞서 소개한 버펄로 사례와 같이 '공유지 비극'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런 극단적인 비극을 피하기 위해 국제사회는 앞서 설명한 코스 교수의 이론을 채택했습니다.


사진설명

20세기 중반 내연기관 기술이 발전하면서 석유 같은 화석연료 사용이 증가해 대표적 온실가스인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크게 증가했습니다. 전문가들은 지구 온실가스의 80% 이상을 이산화탄소가 차지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이산화탄소 배출량 증가로 온실 효과가 심화되면서 국제사회는 기후 온난화 문제를 범지구적 차원에서 해결하기 위해 2005년 교토의정서를 채택했습니다. 교토의정서를 통해 주요국 정상들은 온실가스 감축을 결의했습니다. 2016년 세계는 교토의정서에 이어 또 한번 파리협정을 채택했습니다. 선진국만 참가했던 지난 교토의정서와는 달리 이번에는 '모든 국가'가 자발적으로 탄소 배출량을 감축하는 협정을 체결합니다. 파리협정 발효 후 각국은 스스로 정한 탄소 배출 목표, 즉 '국가별 기여 방안(NDC·Nationally Determined Contributions)'에 따라 탄소배출권을 자국 기업에 할당했습니다. 탄소배출권을 할당받은 기업들은 자사가 확보한 탄소배출권보다 더 많은 양을 배출해야 하는 상황이 되면 '규제시장'인 탄소배출권 거래소에 돈을 주고 부족한 탄소 배출권을 매입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탄소저감 효과를 낼 수 있는 기업활동으로 탄소 저감성과(탄소 크레디트)를 인증받아 관련 규제에 대응할 수도 있습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올해 하반기 시작한 '자발적 탄소시장(VCM)'은 탄소배출권 거래의 대안이 될 수 있는 탄소저감성과 인증제도의 일환입니다. 기업이 탄소배출량을 저감하고 그 성과를 인증받으면 탄소 크레디트를 취득할 수 있고, 이를 대한상공회의소에서 개설한 거래소(자발적 탄소시장)를 통해 주식처럼 거래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자동차 회사가 생산 공정에서 전력 사용을 줄이면 에너지 절약으로 얻은 탄소저감성과를 인증받아 탄소배출권으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례로 제지회사가 이산화탄소를 흡수할 수 있는 산림을 조성하거나 숲을 보호하는 활동을 해 그 성과를 인정받으면 탄소 크레디트(탄소배출권)를 취득할 수 있습니다. 국내 탄소배출권 거래소는 2015년 공공기관인 한국거래소(KRX)에 처음 개설돼 운영해왔습니다. 이번 대한상공회의소에서 구축한 자발적 탄소시장은 민간에서 운영하는 국내 첫 탄소배출권 거래 시장입니다.

탄소배출권 거래는 환경에 대한 관심이 높은 유럽에서 가장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습니다. 올해 유럽연합(EU) 탄소배출권 거래소에서 탄소배출권 가격은 사상 처음으로 t당 100유로를 경신했습니다. 3년 전 가격에 비해 다섯 배가량 상승한 수준입니다. 탄소배출권 가격이 오른 것은 그만큼 탄소배출권에 대한 수요가 커졌다는 것을 방증합니다.

지구는 누구의 것도 아닌 우리 모두의 것입니다. 그래서 더 늦기 전에 국제사회가 앞서 소개한 경제 이론을 기반으로 지구 온난화 저감 대책을 시행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좋은 제도라도 성공 여부는 제도를 실제 적용하는 사람들의 의식과 전폭적인 지지에 달려 있습니다. 최근 지구 곳곳에서는 기상 이변으로 농작물이 죽고, 자연재해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늘었습니다. 이 같은 현상은 원자재 가격 인상과 물가 상승으로 이어져 '에코플레이션(ecoflation)'을 유발하기도 했습니다. 더 큰 범지구적 비용이 발생하기 전에 하루빨리 지구 온난화를 예방할 수 있는 대책이 자리 잡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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