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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장고속 콜라 사라져도 돈은 남아있다는데…

김나영 서울 양정중학교 사회과 교사

입력 2024-06-20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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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Q.

저는 학교 기숙사에서 생활하는데요, 저희 층 휴게실엔 공동으로 이용하는 냉장고가 있어요. 전 음료를 차갑게 마시는 걸 좋아해서 주스나 이온 음료를 넣어두곤 합니다. 오늘 땀을 흘리며 농구하고 나니 지난주에 넣어둔 이온 음료가 생각나더군요. 운동 후에 마시는 시원한 이온 음료의 상쾌함을 생각하며 냉장고 문을 열었는데, 하나도 없는 거 있죠! 제가 다섯 캔이나 넣어두었는데 말이에요. 어찌나 화가 나던지요. 친구들한테 얘기하니 이런 경험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돈이나 지갑 도난은 거의 일어나지 않지만, 이처럼 소소한 물품들이 사라지는 경우는 종종 있다고요. 대체 왜 이런 일이 발생할까요?

운동 후 마시고자 한 시원한 음료가 사라져서 당황스럽고 화가 났었군요. 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어요. 이런 일들은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는 모양이에요. 경제학자 댄 애리얼리는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기숙사에 있는 여러 공동 냉장고에 콜라를 6캔씩 넣어두고 얼마나 빨리 사라지는지 관찰했어요. 72시간 만에 넣어둔 콜라가 모두 사라졌습니다. 그는 냉장고에 콜라만 넣어둔 게 아니었어요. 지폐 6달러를 접시에 담아 함께 놓아두었죠. 돈도 콜라처럼 사라졌을까요?

놀랍게도 지폐는 그대로 남아 있었어요. 아무도 돈에는 손대지 않은 거죠. 콜라 한 캔에 1달러 정도 하니 가치로 따지면 거의 비슷합니다. 소소한 물건과 그만한 가치의 돈. 무슨 차이일까요? 다음 상황에 여러분이 있다고 상상해 보세요. 내일 시험이라 컴퓨터용 사인펜을 사야 해요. 방과 후 들른 도서관 공용 필통에 컴퓨터용 사인펜이 잔뜩 꽂혀 있어요. 도서관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사인펜을 하나 갖고 나온다면, 여러분은 찝찝한 기분이 들까요? 찝찝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어요. 다음 상황은 어떨까요? 똑같이 방과 후, 컴퓨터용 사인펜을 사야 하는 상황인데 오늘 따라 지갑을 가지고 나오지 않았어요. 도서관 공용 책상에 동전이 가득 든 단지가 열려 있고 그곳엔 아무도 없습니다. 1000원을 꺼내가서 사인펜을 살까요? 도서관에서 사인펜을 하나 가져오는 건 별로 거리낌이 없을지라도, 돈을 꺼내오는 건 좀 꺼림직할 거예요. 설문을 해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적은 액수라도 직접적인 돈을 꺼내는 건 꺼리지만, 소소한 물건을 꺼내오는 건 대수롭지 않게 생각합니다. 직접적인 돈이 아니면 심리적으로 도덕적인 부담이 많이 줄어든다고 해요.

냉장고에 넣어둔 콜라와 동일한 가치의 돈. 돈은 사라지지 않았지만, 콜라는 금방 사라진 것도 이런 심리에서 비롯된 걸 거예요. 카페 자리에 핸드백을 놔두고 화장실에 다녀와도 지갑이 없어지는 경우는 잘 없지만, 세워둔 자전거가 사라지는 일은 꽤 있다는 기사도 있더라고요. 또 다른 예가 있어요. '워드로빙(wardrobing)'이라는 단어를 들어봤나요? 워드로빙은 옷을 구입하고 하루 정도 입고 나서 구입 당시의 상태로 포장해서 반품하고, 환불을 받는 걸 말해요. 특히 크리스마스, 연말 파티 의상을 입고 반품하는 사람이 많다고 하네요. 파티에 한 번 착용하고 반품을 하는 사람들. 이렇게 반품된 옷은 재판매가 힘드니 그만큼 의류 회사에서 손실을 보게 됩니다. 워드로빙을 하는 소비자들은 회사로부터 직접 돈을 훔친 건 아니지만, 구입하고 하루 입고 환불하기를 반복하면서 의류 회사에 손해를 입히는 것이지요. 값비싼 서적을 구매하는 게 부담돼 도서관에서 책을 빌린 후 복사해서 제본을 하는 경우도 종종 있어요. 회사에 다니는 직장인이 회사 일을 위해 사용할 수 있는 법인카드로 개인적으로 필요한 물품을 사거나 친구나 가족과 함께 식사를 하는 일도 종종 일어납니다. 저는 예전에 온라인 쇼핑몰에서 포인트로 물건을 사려고 했는데, 포인트로 구매 시 더 높은 가격을 지불하도록 돼 있는 경우를 발견한 적이 있어요. 회원 가입 시 '1포인트=1원'이라고 했고, 제가 사려고 했던 상품은 2만5000원이었어요. 그럼 2만5000포인트로 결제가 돼야 하는데, 결제가 불가능하다고 오류가 뜨는 거예요. 고객센터에 전화해보니, 인기 상품의 경우 포인트를 사용하려면 포인트를 두 배로 지급해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정말 5만포인트를 쓰니 결제가 되더군요. 온라인 쇼핑몰이 제 지갑에서 그만한 돈을 빼내갈 수는 없을 거예요. 하지만 현금이 직접 개입돼 있지 않은 포인트에 대해서는 2만5000포인트를 추가로 요구한 거죠. 이처럼 돈이 직접 개입돼 있지 않은 경우 부정행위는 우리 주변에 만연해요. 돈이 직접적으로 개입돼 있지 않을 때 도덕적 죄책감은 줄어들고, 부정을 저지르기가 훨씬 쉬워지는 거죠. 돈이 직접 개입돼 있지 않을 때, 어떻게 하면 우리가 부정에 대한 유혹을 떨쳐낼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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