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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15일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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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초만에 문딴 열쇠공에 … 수리비 4만원 불공정하다?

김나영 서울 양정중학교 사회과 교사

입력 2023-12-21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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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한 시간 대비해 비싸 보이지만
그 이전 기술 축적시간 간과한 것
2분 만에 그린 초상화 값이 5천弗
피카소 "내 평생에 2분을 더한 값"
서비스가치와 공정함은 별개 문제
사진설명
게티이미지뱅크

Q. 저는 책상 서랍을 항상 잠그고 다닙니다. 서랍 안에 일기장이나 USB 같은 개인적인 것들을 보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열쇠를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두 시간 후 중요한 발표를 해야 했는데 자료가 서랍 속 USB에 들어 있었습니다. 급하게 열쇠 수리공을 불렀습니다. 출장 나온 아저씨는 고리 같은 걸 넣어서 몇 번 딸깍하더니 30초 만에 열었습니다. 정말 다행이다 싶었죠. 그런데 비용으로 4만원을 요구하는 겁니다. 아니, 30초 만에 열었는데 4만원이라니 너무 비싼 거 아닌가요?



A. 발표 자료가 들어 있는 서랍이 잠겨서 마음을 졸였겠네요. 열쇠 수리 아저씨가 빨리 열어주셔서 정말 다행이네요! 하지만 잠긴 서랍을 여는 데 30초밖에 안 걸렸는데, 4만원을 내려니 아까운 마음이 들었나 봐요. 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습니다. 요즘엔 현관문 잠금을 번호 키로 하지만, 예전엔 열쇠를 주로 썼습니다. 무더운 여름인데도 제가 열쇠를 안 들고 나왔고, 집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딱히 갈 만한 곳도 없었습니다. 저도 열쇠 수리 집에 연락했고, 열쇠 수리공이 도착했습니다. 금방 집에 들어갈 수 있으리라 기대했는데, 이리 돌리고 저리 돌리고 삐걱삐걱해도 열리지 않았습니다. 아저씨의 이마에 땀방울이 맺히기 시작하더니 얼굴, 목덜미에서 땀이 흘러내렸습니다. 저는 너무 덥고 힘들어서 차에 가서 에어컨을 켜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다 되면 연락을 달라고 했고, 두 시간이 지나서 연락이 왔습니다. 가보니 아저씨의 얼굴은 벌겋게 달아올랐고, 티셔츠는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습니다. 얼마나 고생하셨을까 싶었습니다.

"아유, 이거 보통 열쇠가 아니구먼. 내 젖 먹던 힘까지 써서 돌리다 보니 이 뭐냐 잠금이 망가져 버렸어."

"아, 그럼 잠금장치도 다시 달아야겠네요."

아저씨가 수리하다가 잠금장치를 망가뜨리는 바람에 잠금장치도 새로 달아야 했습니다. 그렇게 하고 저는 7만원을 냈습니다. 잠긴 문을 연 비용 4만원과 잠금장치 3만원이었습니다. 더운 여름날 땀을 뻘뻘 흘리며 두 시간 동안 고생하셨다고 생각하니 7만원이 아깝지 않았습니다. 충분히 그럴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오히려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이었습니다. 시원한 음료라도 드시라고 팁도 드렸습니다. 그런데 몇 달 후 비슷한 상황이 또 생겼습니다. 열쇠를 안 들고 나왔던 상황이었고 그때도 열쇠 수리공을 불렀습니다. 그런데 이번엔 1분 만에 딸깍하고 열었습니다. 처음엔 '와! 다행이다!'라고 생각했는데, 수리비용이 4만원이라고 말씀하시자 너무 비싼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분밖에 안 걸렸는데 4만원이라니! '저분은 시간당 임금이 240만원인 건가?' 불공정하다는 생각에 기분이 상했습니다.

어쩔 수 없이 4만원을 드리긴 했지만 공정하지 않다는 생각엔 변함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집에 들어와 샤워하는 중 문득 '지난번과 똑같은 서비스 아닌가?'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습니다. 그때는 기다린 시간도 더 길고, 잠금장치까지 고장 내서 비용을 더 많이 지불했는데 돈이 아깝다는 생각이 안 들었습니다. 그 이유는 열쇠 수리공이 오랜 시간 고생했기 때문입니다. 오래 고생했으니 비싼 가격을 지불하는 게 공정하다고 생각했던 겁니다.

잠긴 문을 금방 열어준 분은 숙련된 기술을 가진 분 아닐까요? 이분도 초보일 때는 오랜 시간이 걸려서 문을 열었을 겁니다. 하지만 기술이 좋아지면서 금방 열 수 있게 된 것이죠. 저는 건강검진에서 혈액검사를 할 때마다 느끼는 것이 있습니다. 제 혈관이 가늘어서 바늘이 들어가면 잘 터지는 편입니다. 능숙한 분은 한 번에 혈액을 채취하기도 하는데, 익숙하지 않은 분은 자꾸 실패해서 고생하게 됩니다. 이곳저곳 찌르다 일곱 번 만에 성공한 적도 있습니다. 열쇠 수리도 마찬가지일 수 있습니다. 1분 만에 문을 연 편이 제가 받은 혜택은 더 큰 건데, 두 시간 걸려 열고 잠금장치까지 망가뜨린 경우보다 비용이 더 비싸다고 생각하는 건 합리적인 사고가 아닙니다.

실제로 있었던 일인지 알 수 없지만, 화가 파블로 피카소에 대한 이와 비슷한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어느 날 그가 공원에 있는데, 한 여성이 다가와 초상화를 그려 달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는 그 여성을 잠깐 살펴보고 일필휘지로 휘리릭 초상화를 그려서 건넸습니다.


"5000달러요."

"네? 단 2분밖에 안 걸렸잖아요. 어쩜 그렇게 많은 돈을 받으려고 하세요?"

여성분의 항의에 피카소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고 합니다.

"단 2분이라니 무슨 말씀을요. 내 평생의 시간에다 2분이 더해진 시간이 걸린 건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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