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나영 서울 양정중학교 사회과 교사
입력 2023-12-21 14:20teen.mk.co.kr
2024년 10월 04일 금요일
Q. 저는 책상 서랍을 항상 잠그고 다닙니다. 서랍 안에 일기장이나 USB 같은 개인적인 것들을 보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열쇠를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두 시간 후 중요한 발표를 해야 했는데 자료가 서랍 속 USB에 들어 있었습니다. 급하게 열쇠 수리공을 불렀습니다. 출장 나온 아저씨는 고리 같은 걸 넣어서 몇 번 딸깍하더니 30초 만에 열었습니다. 정말 다행이다 싶었죠. 그런데 비용으로 4만원을 요구하는 겁니다. 아니, 30초 만에 열었는데 4만원이라니 너무 비싼 거 아닌가요?
A. 발표 자료가 들어 있는 서랍이 잠겨서 마음을 졸였겠네요. 열쇠 수리 아저씨가 빨리 열어주셔서 정말 다행이네요! 하지만 잠긴 서랍을 여는 데 30초밖에 안 걸렸는데, 4만원을 내려니 아까운 마음이 들었나 봐요. 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습니다. 요즘엔 현관문 잠금을 번호 키로 하지만, 예전엔 열쇠를 주로 썼습니다. 무더운 여름인데도 제가 열쇠를 안 들고 나왔고, 집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딱히 갈 만한 곳도 없었습니다. 저도 열쇠 수리 집에 연락했고, 열쇠 수리공이 도착했습니다. 금방 집에 들어갈 수 있으리라 기대했는데, 이리 돌리고 저리 돌리고 삐걱삐걱해도 열리지 않았습니다. 아저씨의 이마에 땀방울이 맺히기 시작하더니 얼굴, 목덜미에서 땀이 흘러내렸습니다. 저는 너무 덥고 힘들어서 차에 가서 에어컨을 켜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다 되면 연락을 달라고 했고, 두 시간이 지나서 연락이 왔습니다. 가보니 아저씨의 얼굴은 벌겋게 달아올랐고, 티셔츠는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습니다. 얼마나 고생하셨을까 싶었습니다.
"아유, 이거 보통 열쇠가 아니구먼. 내 젖 먹던 힘까지 써서 돌리다 보니 이 뭐냐 잠금이 망가져 버렸어."
"아, 그럼 잠금장치도 다시 달아야겠네요."
아저씨가 수리하다가 잠금장치를 망가뜨리는 바람에 잠금장치도 새로 달아야 했습니다. 그렇게 하고 저는 7만원을 냈습니다. 잠긴 문을 연 비용 4만원과 잠금장치 3만원이었습니다. 더운 여름날 땀을 뻘뻘 흘리며 두 시간 동안 고생하셨다고 생각하니 7만원이 아깝지 않았습니다. 충분히 그럴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오히려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이었습니다. 시원한 음료라도 드시라고 팁도 드렸습니다. 그런데 몇 달 후 비슷한 상황이 또 생겼습니다. 열쇠를 안 들고 나왔던 상황이었고 그때도 열쇠 수리공을 불렀습니다. 그런데 이번엔 1분 만에 딸깍하고 열었습니다. 처음엔 '와! 다행이다!'라고 생각했는데, 수리비용이 4만원이라고 말씀하시자 너무 비싼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분밖에 안 걸렸는데 4만원이라니! '저분은 시간당 임금이 240만원인 건가?' 불공정하다는 생각에 기분이 상했습니다.
어쩔 수 없이 4만원을 드리긴 했지만 공정하지 않다는 생각엔 변함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집에 들어와 샤워하는 중 문득 '지난번과 똑같은 서비스 아닌가?'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습니다. 그때는 기다린 시간도 더 길고, 잠금장치까지 고장 내서 비용을 더 많이 지불했는데 돈이 아깝다는 생각이 안 들었습니다. 그 이유는 열쇠 수리공이 오랜 시간 고생했기 때문입니다. 오래 고생했으니 비싼 가격을 지불하는 게 공정하다고 생각했던 겁니다.
잠긴 문을 금방 열어준 분은 숙련된 기술을 가진 분 아닐까요? 이분도 초보일 때는 오랜 시간이 걸려서 문을 열었을 겁니다. 하지만 기술이 좋아지면서 금방 열 수 있게 된 것이죠. 저는 건강검진에서 혈액검사를 할 때마다 느끼는 것이 있습니다. 제 혈관이 가늘어서 바늘이 들어가면 잘 터지는 편입니다. 능숙한 분은 한 번에 혈액을 채취하기도 하는데, 익숙하지 않은 분은 자꾸 실패해서 고생하게 됩니다. 이곳저곳 찌르다 일곱 번 만에 성공한 적도 있습니다. 열쇠 수리도 마찬가지일 수 있습니다. 1분 만에 문을 연 편이 제가 받은 혜택은 더 큰 건데, 두 시간 걸려 열고 잠금장치까지 망가뜨린 경우보다 비용이 더 비싸다고 생각하는 건 합리적인 사고가 아닙니다.
실제로 있었던 일인지 알 수 없지만, 화가 파블로 피카소에 대한 이와 비슷한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어느 날 그가 공원에 있는데, 한 여성이 다가와 초상화를 그려 달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는 그 여성을 잠깐 살펴보고 일필휘지로 휘리릭 초상화를 그려서 건넸습니다.
"5000달러요."
"네? 단 2분밖에 안 걸렸잖아요. 어쩜 그렇게 많은 돈을 받으려고 하세요?"
여성분의 항의에 피카소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고 합니다.
"단 2분이라니 무슨 말씀을요. 내 평생의 시간에다 2분이 더해진 시간이 걸린 건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