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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대전땐 생산성 증가…우크라戰은 인플레 심화 우려

전쟁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

전쟁우크라이나인플레이션

최병일 경제경영연구소 책임연구원

입력 2022-03-11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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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고마비는 가을을 알리는 대표적인 표현이다.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하늘은 높고 말은 살찐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일반적으로 '맑고, 높은 가을 하늘과 농작물이 여무는 풍성한 수확의 시기'로 해석한다. 원래 '천고마비'는 당나라 시인 두심언(杜審言)이 변방을 지키던 친구에게 보낸 편지 글의 일부다. 그는 "가을 하늘이 높고, 흉노족의 말이 살찌니 이제 변방 경계를 더욱 신경 써야 한다"고 했다. 왜 가을이 되면 흉노족들은 만리장성을 넘어 중국을 침략했을까? 두심언의 표현대로 가을에 살이 오른 힘센 말들은 흉노족의 기동성을 높여 전투력을 향상시킨다. 또 가을에는 농가 곳간에 농작물이 수북이 쌓여 있으니 약탈할 것이 많다. 흉노족뿐 아니라 과거 로마제국이나 아시아 국가들의 전쟁은 영토를 확장하고, 세금과 자원을 확보하는 주요 수익활동이었다.

그렇다면 산업이 고도로 성장한 오늘날, 전쟁과 경제는 어떤 상관관계가 있을까? 단기적으로 전쟁이 발발하면 많은 사람이 죽고, 생산시설이 파괴돼 경제적 손실이 발생하는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장기적으론 전쟁이 경제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이론이 적지 않다. 엄청난 전쟁 물자를 만드는 과정에서 생산성이 증가하고 총수요가 커져 경기가 상승할 수 있다는 것이다. 2차 세계대전은 전쟁이 경제에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사례로 소개되기도 한다. 2차 세계대전은 1929년 미국발 경제 대공황으로 글로벌 경제가 심각한 하강 국면에서 겨우 벗어나던 때에 발발한 것이다. 근대 경제사에서 가장 큰 침체기라고 할 수 있는 대공황의 여파로 1930년대 세계 경제는 '유효수요'가 부족했다. 큰 경기 침체를 경험한 기업이나 가계가 돈 쓰는 것이 두려워 좀처럼 주머니를 열지 않았다. 급격한 기술 발전으로 생산성은 높아졌는데 이를 수용할 마땅한 수요처가 없던 때 전쟁은 부족한 유효수요를 일정 부분 채워주는 역할을 했다. 따라서 2차 세계대전은 대공황 이후 제한적으로 경기 회복에 긍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다.

그렇다면 최근 관심이 높은 우크라이나 사태는 어떨까? 러시아의 침공으로 시작된 전쟁이 단시일에 끝나지 않으면서 글로벌 경제 상황은 좋지 않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 코로나19로 글로벌 공급망이 위축된 데다 최근 원자재를 비롯한 물가가 급등하고 있는 가운데 '전쟁'이 가져올 높은 인플레이션 이벤트가 추가된 것이다. 우크라이나 사태가 가시화되지 않았던 2021년 하반기부터 미국 연방준비제도(Fed)를 비롯한 주요국 중앙은행들이 인플레이션 우려를 수습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던 가운데 이번 침공이 발생한 것이다. 전쟁 발발로 각국 통화당국이 긴축정책을 편다고 해도 얼마나 물가를 안정시킬 수 있을지 의문이다. 공교롭게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세계적인 농산물 수출 국가다. 러시아는 전 세계 밀 공급의 28.5%를 담당하며 밀 수출 2위다. 우크라이나 역시 흑토 지대에서 밀을 생산해 글로벌 수출 4위다. 두 나라는 콩과 옥수수 수출도 많아 전쟁이 장기화하면 국제 곡물 가격 상승이 불가피하다. 이미 미국 시카고선물거래소 등 국제 곡물 시장에서 밀, 옥수수, 대두 가격은 20% 이상 올랐다.

 


한국은 밀, 옥수수, 콩 등 주요 곡물의 90%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어 우크라이나 사태가 장기화되면 곡물 가격 상승뿐 아니라 수급에도 차질이 발생할 것이다. 또 리튬은 배터리 등 전자제품의 필수 원자재로 완제품 생산이 어려워질 수 있다. 특히 우리나라는 반도체 생산에 필요한 특수 원재료인 네온가스의 30% 이상을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에서 조달해왔다. 따라서 이번 사태는 국내 반도체 산업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물론 우크라이나 사태로 수혜를 얻을 수 있는 산업도 있다. 최근 방위산업 관련 주식들은 큰 폭으로 상승했고, 조선업도 선박 수주 물량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러시아가 입게 될 피해는 너무 크다. S&P, 무디스, 피치 등 세계 3대 신용평가사는 러시아의 신용등급을 일제히 강등했고, 러시아 국채와 루블화 가치는 사상 최저인 '투기등급'으로 분류됐다. 러시아의 국채 가격은 지난 1일 하루 만에 50%가량 폭락했다. 러시아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9.5%에서 20%로 파격적으로 인상했지만 루블화 가치는 30% 이상 평가절하됐다. 러시아 종합주가지수 역시 우크라이나 침공 전과 비교해 50%가량 급락했다.

영국 국립경제사회연구소(NIESR)는 최근 거시예측모형 기반으로 우크라이나 사태가 글로벌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추정했는데 그 결과는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유사하다. NIESR는 우크라이나 분쟁으로 유럽 국가들의 난민 수용 지출이 증가하는 등 부정적인 영향이 커 2022년 세계 GDP가 1%가량 감소할 것으로 추정했다. NIESR는 이번 사태로 유럽 경제가 가장 큰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측했고, 신흥국 시장보다 선진국에 미치는 영향이 더 클 것으로 추정했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우크라이나 사태가 장기화될수록 그 피해는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경기가 전반적으로 하강하는 가운데 물가가 상승하는 '스태그플레이션'이 발생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의견을 모으고 있다. 정부는 물가 안정과 경기 회복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아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 알쏭달쏭 OX 퀴즈

1. 2차 세계대전은 대공황으로 감소한 유효수요를 진작시키는 역할을 했다. ()

2. 우크라이나 사태는 국내 모든 산업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

3. 스태그플레이션은 물가 상승과 경기 침체가 동시에 발생하는 경제 현상이다. ()

▶정답 1. O, 2. X, 3. 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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