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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14일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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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 대륙의 운명, 제도의 차이가 뒤집었다

북미·중남미 경제력, 왜 역전됐나

북미아메리카남미제도특허

임성택 경제경영연구소 선임연구원

입력 2022-11-11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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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잘사는 나라다. 지난 100여 년간 미국은 '기회의 땅'이라고 불리며 많은 사람들이 정착하길 희망하는 곳이었고, 지금도 멕시코를 비롯한 많은 국가에서 사람들이 미국행 이민을 선택하고 있다. 미국에서 일하는 것이 고향에서보다 나은 생활 수준을 제공해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500년 전만 해도 아메리카 대륙 문명의 중심지는 북미가 아닌 중남미였다.

현재 페루와 볼리비아, 칠레 등지에 자리 잡았던 잉카제국은 1500년대에 1500만명의 인구를 유지하던 문명으로 당시 프랑스 전체 인구와 맞먹는 수준이었다. 멕시코의 아즈텍제국도 900만명 수준이었다. 철을 제련하는 기술을 개발하지 못해 석기·청동기 문명이었지만 바퀴와 가축 없이도 신대륙 최대의 도시 테노치티틀란을 건설할 정도의 문명과 천문기술을 가지고 있었고 시장을 통한 물물교환 경제를 형성했다.

반면 광활한 북미 대륙의 인구는 300만명이 채 되지 못했고, 인구밀도는 잉카제국의 500분의 1 수준이었다. 당시 북미 원주민(인디언)은 부족 연맹을 결성하였으나 수렵과 채취에 의존했고, 중앙집권 국가나 발달한 도시 문명을 만들지 못했다. 주된 생산물은 옥수수와 담배, 가죽 등이었다. 잉여 생산물의 교역도 상거래 행위라기보다는 '선물 교환'에 가까웠다.

두 지역의 경제력은 무엇에 의해 뒤집혔을까? 미국 경제학자 대런 애쓰모글루는 두 지역의 제도적 차이가 '운명의 역전(the reversal of fortune)'을 가져왔다고 주장한다. 남미는 사유재산과 시장경제를 억압하는 '착취적 경제제도'가 자리 잡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개인의 사유재산이 보장되지 않고 언제든지 지배자에게 빼앗길 수 있는 사회에서 개인들은 근면한 근로와 절약을 통해 재산을 형성할 유인이 없어진다.

스페인에서 온 탐험가들은 금으로 치장된 남미 도시를 보고 정복자로 돌변한다. 아즈텍의 정복자 코르테스는 원주민들의 지도자를 납치해 인질로 삼고 그들이 축적한 재물을 몸값으로 갈취하는 사업 모델을 확립했다. 보물이 다 떨어지자 유럽에서 온 이방인들은 기존 원주민들의 세계에서 새로운 귀족계층으로 자리 잡았고 획득한 권력을 이용해 착취적인 경제정책을 시행했다. 아즈텍과 마찬가지로 스페인의 식민지로 전락한 잉카제국에서 은 광산이 발견되자 식민지 총독은 '미타'라는 잉카제국 시절의 강제노역 제도를 부활시켰다. 인디오 청년들은 7명 중 1명꼴로 광산에 끌려가 강제노역을 수행해야 했는데 이 제도는 1825년까지 계속됐다. 원주민 농지 몰수와 강제노역 및 높은 세금과 생필품의 강제 매입 정책은 번영했던 남미 문명의 경제적 잠재력을 송두리째 앗아가버렸다.

반면 북미에서는 다른 운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영국이 뒤늦게 신대륙 쟁탈에 합류했을 때 남은 곳은 빼앗을 보물이 없는 북미뿐이었다. 영국은 이곳에서도 남미에서 검증된 착취적 제도를 시행하려고 하였으나 번번이 실패했고 초기 정착민들은 겨울을 못 넘기고 사망하기 일쑤였다. 결국 영국 정부는 식민지 개척민들에게 토지 소유권과 참정권을 일부 보장해 자발적으로 일할 유인을 부여할 수밖에 없었다. 즉 착취적 경제제도가 아닌 '포용적 경제제도'가 자리 잡게 됐다. 미국의 13개주 식민지에서는 총독 외에 정착민 대표로 구성된 의회를 보유해 상대적으로 민주주의에 가까운 정치체계를 갖추었다. 이는 훗날 영국에서 독립해 미합중국이 성립되는 배경이 됐다.

또한 미국은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과 특허제도의 영향을 받아 새로운 아이디어로 사업체를 만들어 부자가 되겠다는 기업가적 창의력을 자극하는 공간이었는데, 발명왕이자 GE 창업자인 에디슨이 창의적 기업가의 대표적 사례다. 반면 멕시코 등 남미 지역에서 산업은 주로 농산물과 천연자원의 판매에 집중될 뿐 제조업이 발달하지 못했고 빈부 격차 문제 역시 해결되지 못한 채로 현재에 이르고 있다. 한번 자리 잡은 제도가 현재의 경제 상황에 지속해서 영향을 미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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