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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 15일 일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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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선 불공평하면 어떤가…나는 나의 길을 달린다

사진설명[사진 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육상 경기에서 운동장 한 바퀴에 해당하는 400m 달리기의 트랙을 보면 선수들마다 출발점이 제각각인 것을 알 수 있다. 1번 레인에서 바깥 쪽으로 갈수록 차이가 벌어져 마지막 8번 레인은 한참을 앞서 있게 된다. 곡선 바깥 주로의 손해를 보정해주기 위한 조치라는 점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크게 억울할 만하다. 인생에서도 승자와 패자가 갈리는 경쟁에서 처음부터 출발점이 다르다면 그 누가 이를 흔쾌히 받아들일 수 있을까.

언젠가,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난 어느 고위 공직 후보자가 재산이 너무 많다고 해서 논란이 된 적이 있었다. 이에 대해 당사자는 "평범한 사람들 입장에선 못마땅해 보이겠지만 애초부터 출발점이 다르다는 것을 이해해달라"는 취지의 말을 했던 것으로 기억이 난다. 짐작건대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한다'는 냉정하지만 엄연한 현실에 대해 비난만 퍼붓는 일반인들로부터 아무쪼록 양해를 받고 싶었을 것이다. 물론 이 발언은 다수의 일반인들한테는 '왕후장상에 어찌 씨가 있는가(王侯將相 寧有種乎)'라며 불만을 가중시켰다. 애초부터 출발점이 다르다며 무심코 내뱉은 공직자의 발언은 현대 사회에 특정 계급이 있다는 뜻으로 비쳐 민심을 더 자극했던 것이다.

그 공직자는 좋은 환경을 가진 것 때문에 정작 그동안 성취해온 것에 대한 자신의 능력이 폄하될 수 있다는 점에서 불만을 가졌을지 모른다. 반면 일반인들에게는 열심히 노력해도 성공하고 부자가 되는 사람이 왜 늘 소수인가를 떠올리면서 역시나 태어난 환경이 중요하다며 또 한 번 불만을 품었을 것이다.

 


앞서 했던 육상 트랙 얘기로 다시 돌아와보자. 선수들이 달려야 할 거리는 꼴찌를 할 선수나 일등을 할 선수 모두에게 똑같이 주어진다. 반칙을 하지 않는 한 남을 크게 앞질러갈 방법도 없다. 물론 선수 개개인의 키와 몸무게, 팔다리 길이, 호흡량 등은 모두 다르다. 운동화도 제각각일 수 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그걸 가지고 다른 선수와 비교하지도, 불평하지도 않는다. 설령 그것이 경기 결과에 영향을 미친다고 해도 조건이 불평등하다며 남을 비난할 수는 없다. 그걸 문제 삼으면 그 사람은 물론이고 내 존재 자체도 부정하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세상에 태어나면서 각자의 출발점을 떠나 나름의 인생 행로를 따라 달린다. 트랙 출발점이 그렇듯 골인 지점도 모두에게 정해져 있다. 물론 나보다 뛰어난 신체 조건에 더 좋은 신발을 신은 사람이 다리가 짧고 맨발인 나보다 유리할 것은 분명하다. 더구나 내 위치가 불리한 바깥 주로에 있다고 해서 일일이 보정받기를 기대할 수도 없다.

어쩌면 남에게 이기고 지는 것은 부차적일지 모른다. 중요한 건 내가 어떻게 달렸느냐의 문제일 것이다. 골인 시점에서 남는 것은 짧은 다리나 싸구려 운동화 얘기가 아닐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각자 얼마나 최선을 다해 달렸는지 같은 보다 진중한 얘기들로 채워질 것이다.

아 참, 단거리와 달리 육상 장거리 경기에서는 선수들이 출발점에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는다. 몇 m 앞서 있어봐야 별게 아니기 때문이다. 인생은 한 편의 마라톤이다. 나중에 애꿎은 신발을 탓하지 않으려면 이를 깨물고 무조건 달려야 한다. 에티오피아의 마라톤 선수인 아베베 비킬라(Abebe Bikila)는 맨발로도 세계신기록을 세우지 않았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