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승민 원광아동상담센터 상담사
입력 2026-07-06 09:10teen.mk.co.kr
2026년 07월 11일 토요일
무작정 친구만 따라가다 나를 잃을 수도

류승민 원광아동상담센터 상담사
입력 2026-07-06 09:10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어느 날 상담실에서 만난 한 학생의 어머니가 답답하다는 표정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몇 번이나 머리 자르라고 했을 땐 꿈쩍도 안 하더니 친구가 같이 자르자고 하니까 바로 미용실에 가더라고요."
여러분도 비슷한 경험이 있나요? 부모님이 말씀하실 땐 괜히 하기 싫었는데 친구가 한마디하자마자 바로 행동한 적 말이에요.
부모님의 말은 잔소리처럼 들려서 듣기 싫다가도 친구가 "우리 같이 머리 자를까?" "함께 도서관 갈래?"라고 말하면 왠지 더 솔깃하게 들릴 때가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어쩌면 여러분은 지금 '내가 결정하고 싶다'는 마음이 커지고 있는 중인지도 모릅니다. 청소년기는 부모님이 정해 주는 대로 따르기보다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하고 싶은 시기입니다. 그래서 같은 내용이라도 부모님의 말은 간섭이나 지시처럼 느껴지고 친구의 제안은 나의 선택처럼 느껴지는 것이죠.
그런데 여기엔 또 다른 이유도 있습니다. 청소년기엔 친구가 점점 더 중요한 존재가 되는 겁니다. 친구들과 잘 어울리고 싶고, 이상하게 보이고 싶지 않으며, 혼자 남고 싶지 않은 마음이 커지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런데 이런 마음이 커질수록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상황에 맞는 모습을 만들어 가게 됩니다.
심리학자 카를 융은 이를 '페르소나'라고 불렀습니다. 이는 원래 고대 연극 배우들이 쓰던 가면을 뜻하는 말입니다. 친구들과 있을 때의 나, 가족과 있을 때의 나, 선생님 앞의 나는 조금씩 다를 것입니다. 가면을 바꿔 쓰듯 상황에 맞게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사람들과 잘 지내기 위한 건강한 사회적 능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만 그 모습이 내 마음을 숨기는 가면이 되기 시작하면 문제가 생깁니다. 특히 친구들에게 좋은 모습만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커질수록 가면은 점점 두꺼워질 수 있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좋은 친구처럼 보여야 해"라거나 "싫어도 참아야 해"란 생각에 갇히면 주객이 전도됩니다. 내키지 않는 일인데도 친구를 따라가고, 거절하고 싶은 제안도 쉽게 거절하지 못한 채 내 마음을 숨기게 되는 것이죠.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이런 질문이 생깁니다. "잠깐, 내가 진짜 원해서 한 일이었나?"
이는 친구의 기대와 내 마음이 뒤섞여 버렸기 때문입니다. 이때 필요한 것이 바로 '건강한 경계'입니다. 경계란 "나는 나, 너는 너"란 사실을 분명히 아는 힘입니다. 친구가 부탁했다고 해서 반드시 들어줘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친구가 화가 났다고 해서 그 감정이 모두 내 책임인 것도 아닙니다. 친구의 생각과 내 생각은 얼마든지 다를 수 있습니다.
좋은 친구 관계는 모든 것을 억지로 맞춰 주는 관계가 아닙니다. 오히려 "나는 이건 좀 그래"라거나 "나는 다르게 생각해"라고 편하게 말할 수 있으면서도 서로를 존중하는 관계가 더 건강한 관계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진짜 내 모습으로 친구를 사귈 수 있을까요? 하고 싶은 말은 다 하고, 싫은 것은 모두 거절하라는 뜻이 절대 아닙니다. 핵심은 내 마음을 먼저 알아차리는 연습을 하는 것입니다.
친구가 "우리 같이 하자!"라고 말했을 때 잠시 멈춰 서서 스스로에게 물어보세요. "나는 정말 이걸 하고 싶은 걸까? 친구가 하자고 하니까 억지로 맞추고 있는 건 아닐까?"
만약 정말 하고 싶다면 즐겁게 하면 됩니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이 왠지 모르게 찜찜하고 불편하다면 그 마음의 신호를 무시하지 마세요.
처음에는 거절하는 것이 어색할 수 있습니다. 친구가 떠날까 봐 무서울 수도 있어요. 하지만 갈등이 전혀 없는 관계가 좋은 관계는 아닙니다. 서로 다른 생각과 취향을 가졌음을 인정하고 그것을 존중해 줄 때 관계는 더욱 단단해집니다.
만약 여러분이 계속 눈치를 보며 맞춰 줘야만 관계가 유지된다면 그 친구는 여러분 자체보다 여러분이 보여주는 '가면'에 익숙해진 것일지도 모릅니다. 좋은 친구는 여러분이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조금씩 알아 가며 관계를 만들어 가는 사람입니다.
친구들과 잘 지내고 싶은 마음은 소중합니다. 하지만 친구를 잃지 않기 위해 나 자신을 잃어버릴 필요는 없습니다. 가끔은 친구들의 목소리보다 내 마음에 먼저 귀 기울여 보세요. 여러분이 찾고 있는 '진짜 나'는 어쩌면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여러분 마음속에서 조용히 자신을 알아봐 주기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원광아동상담센터 선임상담연구원
정답: 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