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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14일 화요일

기고·인터뷰 전문가 기고

1조 벌어들인 '구마몬' 조용히 잊힌 '해치'… 무슨 차이?

끌리는 '곳'의 비밀, 장소브랜딩 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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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구마모토현의 상징 구마몬.


지난 3월 한국고용정보원은 전국 지방자치단체 중 절반에 해당하는 113곳을 소멸위험지역으로 지정했다. 이곳은 저출산·고령화 지역으로 인구 유입 등 다른 변수가 없으면 약 30년 뒤에는 없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도시들은 저마다 젊은 세대의 인구 유출을 막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고 있지만, 통계청이 발표한 지난해 우리나라 출산율은 0.82명으로 세계 최저 수준이다.

일자리와 대학, 관광단지 등 대도시에 버금가는 인프라스트럭처로 이른바 '인구댐'을 만들고 출산장려금을 비롯해 각종 세제 지원과 함께 정부가 '지방소멸대응기금'을 조성해 지역을 살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진 못한다. 이런 상황에서 선행되어야 할 것이 바로 '정체성 찾기'다.

마케팅 용어로 '최초상기도(Top of Mind)'라는 말이 있다. 특정 카테고리에서 소비자가 가장 먼저 연상되는 브랜드나 상품을 의미하는 용어다. 가령 '스마트폰'이라고 하면 삼성이나 애플이 떠오르고, '축구의 나라'로는 브라질이 떠오르는 것이다. 이렇게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바로 떠오르는 곳이 되기 위해서는 지역 고유의 정체성이 있어야 한다. 정체성은 해당 지역과 다른 지역을 구분하는 출발점이자 지속가능한 자생력을 가진 지역으로 성장하기 위한 기반이다.

지역을 하나의 브랜드로 인식시키는 정체성을 만드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크게 하드웨어적 요소와 소프트웨어적 요소로 구분된다. 하드웨어는 지역의 대표 건축물 만들기, 도시재생 사업 등이 있고 소프트웨어는 캐릭터, 사투리 등 지역문화, 특산물, 지역 출신 유명인, 지역축제, 컨벤션 행사 등 지역이 기존에 보유하거나 새롭게 만들어낸 유·무형 자원을 활용하는 것이다. 도시를 브랜딩한다고 하면 가장 먼저 시도되는 것이 심벌, 로고, 슬로건이고 그다음 순서가 건축물 짓기다. 성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눈에 보이는 유형의 건물이 필요한 것이 사실이지만 수백억 원 이상 예산을 들여 만들어지는 건물들이 도시 브랜딩 구축에 별다른 도움을 주지 못하는 경우가 상당수다. 이러한 하드웨어를 개발하기 전에 선행되어야 할 일은 왜 만들어야 하는지, 사람들에게 어떻게 인식될 것인지 그리고 하드웨어를 보다 의미 있게 만드는 핵심 요소 즉, 지역의 정체성이 담긴 상징과 스토리는 무엇인지가 먼저 계획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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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드웨어는 각 지역의 정체성을 잘 보여줄 수 있는 강력한 랜드마크가 되어야 한다. 랜드마크란 탐험가나 여행자가 특정 지역을 여행하는 중에 원래 있던 장소로 돌아올 수 있도록 표식을 해둔 것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그러나 현재는 그 뜻이 넓어져 어떤 곳을 상징적으로 대표하는 의미가 될 때 부르는 용어가 되었다. 특정 하드웨어가 랜드마크가 되기 위해서는 거대적 요소, 기적적 요소, 의미적 요소를 뚜렷하게 갖고 있어야 하는데, 거대적 요소에는 뉴욕의 자유의 여신상이나 파리의 에펠탑, 인도 아그라의 타지마할처럼 역사성과 함께 거대함과 웅장함을 갖고 있는 건축물이 속한다. 기적적 요소에는 서울의 롯데월드타워나 두바이의 부르즈 칼리파 빌딩처럼 인간의 최첨단 기술에 바탕을 둔 기적적인 랜드마크가 속한다.

눈에 보이는 놀랄 만한 것이 없더라도 의미를 주면서 감동을 전할 수 있는 것을 만들면 그것이 지역을 상징하는 랜드마크가 될 수 있다. 아니 어쩌면 의미적 요소를 가진 랜드마크가 거대하고 기적적인 랜드마크보다 더 강력할 수 있다. 대표적인 의미적 요소가 문화와 예술이다. 통영시는 승전무, 통영 오광대, 남해안 별신굿과 같은 민속문화유산에 작곡가 윤이상을 길러낸 음악적 자산이 유네스코의 '음악 창의도시'로 선정되고 도시를 대표하는 이미지로 적지 않은 효용과 가치를 만들었다. 여기에 더해 동피랑마을이 국내 대표 벽화마을로 유명세를 타면서 완벽한 문화관광 도시로 알려지고 있다.

과거에는 하드웨어적인 랜드마크가 장소 브랜딩의 대세였다면 점차 소프트웨어적인 성격, 특히 문화와 예술적 특성이 뚜렷한 랜드마크가 매력적인 브랜딩 요소로 자리 잡았다. 의미적 요소를 가진 소프트웨어적 랜드마크는 눈길을 사로잡는 '한 방'은 없지만 거주민들이나 방문객들과 지속적으로 관계를 맺고 좋은 인상을 심어주기 때문에 차별화의 강력한 도구가 될 수 있다. 이러한 랜드마크들이 상호 작용하면서 한 장소를, 한 도시를 브랜드로 인식하게 한다. 한 가지 랜드마크만으로 브랜딩된 도시도 있고 여러 가지 유형의 랜드마크가 복합적으로 결합되어 브랜딩된 도시도 많다. 중요한 것은 브랜딩의 성공을 위해서 이러한 랜드마크에 반드시 상징과 스토리가 맞물려 돌아가야 한다는 점이다. 지역의 정체성이 만들어졌다면 심벌, 로고, 슬로건, 캐릭터, 스토리 등 모든 콘텐츠가 일관성을 갖고 통합적으로 커뮤니케이션해야 사람들에게 고유의 장소성을 인식시킬 확률이 높아진다.

지자체 브랜딩의 성공 사례로 단골손님처럼 등장하는 일본 구마모토현은 캐릭터와 스토리를 활용한 일관된 커뮤니케이션이 적중했다. 구마몬은 '구마(곰)'와 사람을 의미하는 현지 사투리 '몬'을 합친 이름이다. 지역 홍보를 위해 2011년 고속철도 개통을 앞두고 탄생했는데 구마몬이 등장한 후 구마모토의 인지도는 일본 전국 47개 중 하위권인 32위에서 18위로 껑충 뛰었다. 구마모토를 찾는 관광객은 2배로 늘었고, 2012년 293억엔이었던 구마몬 상품 매출은 2015년 1007억엔으로 급증했다.

캐릭터는 제품이나 기업 그리고 도시와 같은 지역에서도 상징물이자 커뮤니케이션 전파자로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다. 캐릭터는 디자인의 독특한 특성과 함께 이름, 성격, 행동, 목소리까지 개성을 통해서 상품화에 유리한 측면이 있다. 최근에는 인공지능과 메타버스의 기술에 힘입어 더욱 현실감 있게 다가오고 있다. 특히 인간의 감정을 닮은 특성 때문에 친근감을 주고, 시장 확대 효과도 있으며 상품 유지 및 판매 증대 효과를 가져오게 된다. 그러나 개성과 탄탄한 스토리가 없이 대중과 관계 맺기에 실패한 사례도 무수히 많기 때문에 맹목적인 성공 사례 따라 하기는 금물이다.

마케팅의 시대에서 브랜딩의 시대로 변했다. 즉, 판매자가 제품과 서비스를 어필하는 시대에서 소비자가 제품과 서비스를 먼저 인식하고 소비 경험을 인증하는 시대로 바뀐 것이다. 이처럼 '곳'을 둘러싼 라이프 트렌드 속에서 결국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정체성이다. 그리고 하드웨어든, 소프트웨어든 한번 만들어진 정체성은 가능한 한 오랫동안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것이 좋다. 2008년 오세훈 서울시장 시절 만든 '해치'가 활용도 제대로 못하고 사라졌고 시민 공모로 탄생한 서울의 브랜드 슬로건 'I.SEOUL.U'의 대체 브랜드 개발이 올 12월 완료된다. 얼마 전에는 3명의 시장 임기를 거쳐 국내 최장 도시 브랜드로 자리를 굳힌 '컬러풀 대구'가 시정 슬로건 '파워풀 대구'로 통합되었다. 꼭 슬로건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45년째 'I♥NY'로 사랑받는 뉴욕을 비롯해 해외 사례를 적극 참조할 필요가 있다. 결국 정치적 이유가 아닌 객관적 평가로 다른 지역과 차별화된 정체성으로 지속가능한 장소가 될 것인지는 전적으로 해당 지자체의 의지에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