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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01월 20일 월요일
˝수카바티 안양!˝… 축구로 하나된 도시
꼭 멀리 가야 여행이 아니다. 익숙한 우리 동네도 시선을 달리 하면 여행지가 될 수 있다. 나는 때때로 동네 여행을 한다.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모르는 모습이 너무나 많다. 그럴 땐 늘 다니던 골목마저도 다 새롭다. 이 가을 나는 경기도 안양시의 여행자다.
원래 서울에 살던 나는 2020년부터 안양으로 이사 와 살고 있는데, 5년 만에 안양 사람이 다 됐다. 안양에는 구도심인 만안구와 신도심인 동안구가 있다. 나는 구도심 특유의 아날로그적인 감성이 좋아 만안구에 자리 잡았지만 걸어서 15분 거리인 동안구에도 자주 놀러간다.
집 앞을 나서자마자 안양천이 펼쳐진다. 봄엔 벚꽃과 개나리가, 가을엔 코스모스가 아름다운 산책로를 따라 걷다 보면 잉어와 오리들이 평화롭게 물에서 노닐고, 하늘엔 연날리기가 한창이다. 그 풍경들을 지나 안양예술공원까지 걷는다. 안양예술공원 초입의 김중업 건축박물관이 먼저 반겨준다. 20세기 한국 현대건축을 대표하는 위대한 이 건축가의 예술혼과 만날 수 있는 박물관에서 "건축이란 희열을, 삶에의 찬가를, 노래와 춤과 시와 로망을 던져주는 것…살고 싶어져야 하잖은가. 꿈이 있고 시가 있고 사람들이 옹기종기 정답게 모여 살고 싶어져야 하잖은가"라는 육필 원고를 보며 마음이 뭉클해진다.
안양예술공원은 예전엔 안양유원지로 불렸다. 한때 낙후되기도 했지만 지속적인 정비사업으로 지금은 안양 시민들이 가장 즐겨 찾는 휴식 공간이 됐다. 관악산과 삼성산에서 내려오는 깨끗한 계곡물을 따라 숲과 산책로가 정비돼 있고, 음식점과 카페가 즐비하다. 예술공원답게 국내외 예술가들의 조각과 건축 등 설치미술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고, 버스킹 공연도 심심찮게 열린다.
안양예술공원에서 관악산 둘레길을 따라 망해암까지 오를 수 있다. 완만한 경사의 숲길을 30분 정도만 걸으면 된다. 신라 문무왕 때인 655년에 원효대사가 창건한 사찰인 망해암은 일몰 명소로 잘 알려져 있다. 해가 뉘엿뉘엿한 무렵 망해암에서 일몰을 감상한 후 번화가로 가는 건 내 단골 코스다. 안양에는 두 곳의 큰 상업지구가 있다. 만안구의 안양일번가와 동안구의 평촌일번가문화의거리다. 안양을 양분하는 대형 상권이자 젊음의 거리로 쇼핑, 외식, 문화생활을 모두 즐길 수 있다.
세련되고 화려한 핫플레이스보다 재래시장에 마음이 기울어진다면 만안구의 안양중앙시장이나 동안구의 평촌농수산물시장을 찾으면 된다. 나는 안양중앙시장에서 떡볶이와 김밥, 호떡, 순대국밥을 즐겨 먹는다. 노포들이 즐비한 순대볶음거리는 늘 손님으로 북적거린다.
안양에 오면 지역 명물인 콩비지감자탕을 먹어봐야 한다. 콩비지가 듬뿍 들어가 담백하면서도 고소한 그 국물 맛은 영혼을 위로해준다. 병목안시민공원 부근의 '두루터'에서 먹는 만두전골, 중앙시장 '장내동육칼'의 도가니전골, '맛돋을터'로 이름을 바꾼 옛 '저잣거리'의 갈비탕, '정호식당'의 해물탕, 안양예고 앞 '할아버지장작구이' 통닭, 안양종합운동장 근처 '관악관'의 평양냉면, '운봉산장'의 양갈비수육도 늘 그리운 메뉴들이다. 주머니 가벼운 학생들의 성지인 분식집 '모이세'와 옛날 세탁소를 카페로 바꾼 '삼일커피', 비빔국수를 시키면 잔치국수를 서비스로 주는 '잔치집 가나', 추억의 경양식집 '명가돈까스', 서민들을 위해 수십 년째 2800원짜리 한우해장국을 파는 '남부식당'도 빼놓을 수 없다.
인구 55만의 도시지만 프로 스포츠 구단이 세 팀이나 있을 정도로 지역민들의 스포츠 사랑이 뜨겁다. 안양에는 농구의 정관장 레드부스터스, 아이스하키의 안양한라 아이스하키단, 축구의 FC안양이 있다. 이 중 FC안양은 감동적인 서사를 가진 팀이다. 안양에는 과거 안양LG 치타스가 있었지만 2004년 팬들을 버리고 서울로 연고지를 옮겼다. 그 후 무려 9년 동안이나 안양에는 프로축구팀이 없었다. 하지만 2013년, 안양 축구를 사랑하는 시민들의 간절한 염원이 결실을 맺어 시민구단인 FC안양이 창단됐고, 마침내 2024년 11월, FC안양은 K리그2 우승을 확정하며 꿈에 그리던 K리그1에 승격하게 됐다. 승격이 확정되자 안양시 전체가 들썩였다. 지난 11월 9일 승격을 축하하는 거리행진이 열려 시 차원에서 도로를 통제하고 선수단과 서포터스, 시민들, 최대호 안양시장이 함께 "수카바티 안양!"을 외치며 부둥켜안은 채 기쁨을 나눴다. '수카바티'는 산스크리트어로 '극락'을 뜻한다. 안양(安養)은 괴로움이 없고 지극히 안락한 불교의 '안양정토(安養淨土)'에서 온 지명이다. 곧 첫눈이 내리면 수리산 병목안시민공원의 차고 맑은 설경이 아름다울 것이다. 나는 괴로움도 고민도 없이 눈 위로 안락한 발자국을 남겨야겠다. 두 뺨이 얼얼한 겨울날엔 역시 콩비지감자탕을 먹어야겠고.
정답: 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