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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01월 14일 화요일

기고·인터뷰

기고·인터뷰 이슈 따라잡기

시대의 비극적 아픔, 야구·문학으로 이겨냈다

광주기아챔피언스필드.

광주기아챔피언스필드.

 

지난달 예기치 않게 3박4일 동안 광주에 고립(?)됐다. 인생은 늘 알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간다는 걸 새삼 생각했다. 온라인 커뮤니티 화법을 빌리자면 "야구 보러 갔다가 광주 3박4일 여행한 썰 푼다"라고나 할까. 발단은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1차전 직관을 하면서부터다. KIA 타이거즈 팬인 나는 한국시리즈를 보기 위해 그 치열하다는 '피케팅(피가 터질 듯 치열한 티케팅)'을 뚫고 1차전 티켓을 구했다. 경기가 끝난 후 인근 숙박업소에서 자고 다음 날 아침에 올라올 생각이었다. 문제는 날씨였다.

월·화요일 이틀 동안 광주에 비 예보가 있었다. 10월 21일 월요일 오후부터 빗방울이 떨어질 듯 말 듯하더니 경기 시간이 되자 약하게 흩뿌리기 시작했다. 이미 매진을 이룬 광주기아챔피언스필드는 인산인해였다. 한국시리즈가 치러질 야구장은 콜로세움을 연상시키는 웅장한 외관을 뽐내고, KIA 타이거즈와 삼성 라이온즈 두 팀의 유니폼을 입은 관중들은 모두 들뜬 얼굴로 긴 줄을 서 있었다. 프로야구의 가장 큰 잔치이므로 비가 오더라도 경기는 개최될 듯했다. 경기를 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는 애매한 강수량은 그라운드에 방수포를 깔았다가 걷었다가를 반복하게 했다. 그러다 마침내 1시간이 지연된 저녁 7시 30분, 플레이볼이 선언됐다.

6회초 삼성 라이온즈가 1대0으로 앞선 무사 1, 2루 상황에서 더 이상 경기를 진행할 수 없을 만큼 굵은 빗줄기가 쏟아져 서스펜디드(suspended) 경기가 선언됐다. 중단된 시점부터 나머지 경기를 다음 날에 치르는 야구 규정이다. 비에 흠뻑 젖은 채 광주 운암동에서부터 농성동까지 터덜터덜 걸었다. 이미 늦은 시간이라 저녁을 먹기도 마땅치 않아 편의점 도시락으로 때웠다.

 

이튿날엔 비가 더 많이 내렸다. 이날 열릴 예정이던 1차전 중단 경기와 2차전이 모두 다음 날인 23일로 연기됐다. 마침 중간고사 기간이라 수업이 없어 다행이었다. 1박에 2만4000원 뛰어난 가성비 숙소인 농성동 드라마모텔에서 하루 더 묵기로 했다. 점심에 화정동의 현지인 노포 맛집 '김서방국밥'에 가 든든하게 속을 채웠다. 거리에서도, 국밥집에서도, 시내버스에서도 어딜 가나 야구 이야기가 들렸다. 드라마모텔 투숙객들도 대부분 한국시리즈를 보러 다른 지역에서 온 야구팬들이었다.

그날 저녁엔 시내버스를 타고 충장로에 갔다. 하차하기 전 버스에서 "이번 정류장은 문화전당역, 5·18 민주화운동 최후 항쟁지입니다"란 안내 방송이 나왔다. 등줄기가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얼마 전 한강 작가가 노벨 문학상을 받았는데, 광주 곳곳에 수상을 축하하는 현수막이 보였다.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는 5·18 광주 민주화항쟁을 소재로 한 소설이다. 최근 KIA 타이거즈의 김도영 선수가 그 책을 읽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빗방울이 어딘지 음울해 보였지만 일기예보를 보니 23일은 쾌청할 예정이었다. 충장로 맛집으로 알려진 '광주보쌈'에서 돼지고기 수육과 보쌈김치를 맛있게 먹었다.

수요일이 밝았다. 1차전 잔여 경기만 보고 서울로 올라가려니 아쉬웠다. 2차전까지 보자는 생각에 취소표를 찾았는데 운 좋게 구할 수 있었다. 드라마모텔에 1박을 더 연장하고는 오전부터 광주기아챔피언스필드에 갔다. 경기 시작 시간은 오후 4시지만 야구장 명소 '인크커피'에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광주에 야구를 보러 오면 꼭 먹어봐야 한다는 야구공빵과 함께 아이스커피를 주문했다. 상대팀이지만 KIA와 삼성 관중들이 서로 살갑게 대하는 게 참 보기 좋았다. 이렇게 하다 보면 케케묵은 지역감정도 언젠가는 사라지지 않을까 생각했다. 시간 여유가 있는 김에 KIA 타이거즈 팀스토어에도 들렀다. 개장 1시간 전인데도 굿즈를 사려는 팬들이 길게 줄을 섰다. 일찍 줄을 선 덕분에 그동안 갖고 싶었던 김도영 선수의 유니폼을 구입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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