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en.mk.co.kr
2025년 01월 20일 월요일
제주가 지겨운 당신은 아직 제주를 모른다
제주
우리나라에서 제주도만큼 독특한 지역은 또 없을 것이다. 국토의 최남단에 위치한 광활한 화산섬으로 온대와 아열대 중간쯤 되는 사철 따뜻한 기후가 종려나무를 곳곳에 키워 이국 정취를 발산한다. 에메랄드빛 바다와 한라산, 울창한 자연림, 용암동굴 등 다채로운 자연환경이 한데 어우러져 그런 걸 좀처럼 보기 힘든 서양 관광객들에게도 매우 개성 있는 여행지로 각광받고 있다. 북한 주민들이 가장 가보고 싶어하는 곳도 제주도라고 하니 이 섬의 매력에 대해서는 더 길게 말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나 역시 제주도를 좋아한다. 해 질 무렵 애월 해안도로에서 석양이 자맥질하는 걸 바라보고 있노라면 콧등이 시큰해진다. 한라산 1100고지와 윗세오름, 산굼부리를 걸으면 온갖 상념이 다 사라진다. 배를 타고 관탈도나 사수도, 가파도, 마라도 인근 해역으로 나가 방어, 부시리, 참돔, 대삼치, 한치, 무늬오징어, 긴꼬리벵에돔, 벤자리 등을 낚시로 잡는 것은 내가 가장 사랑하는 취미다. 멜조림, 각재기국, 몸국, 돔베고기, 고기국수, 고사리해장국, 오메기떡, 방어회, 자리돔물회, 갈치국, 전복뚝배기, 말고기 등 향토 음식들은 또 어떤가. 낚시 좋아하고 술 좋아하고 바람과 별과 물 좋아하는 나 같은 낭만주의자(다른 말로는 한량)에게 제주도는 꼭 한 번 살아보고 싶은 섬이다.
그런 제주도가 최근 오명을 뒤집어쓰고 있다. 관광객들을 상대로 '바가지' 장사를 한다는 것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소셜미디어(SNS)에서 소문난 유명 식당과 카페는 물론 숙박업소와 렌터카, 심지어 해녀들이 갯바위에서 바로 썰어주는 해산물까지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할 만큼 가격이 비합리적이다. 그러다 보니 제주도를 찾는 여행객들이 감소하는 추세다. 같은 비용이면 차라리 일본이나 동남아로 가겠다는 것이다. 나는 제주에 아무런 연고도 없지만, 제주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안타깝다. 바가지 상술은 근절되어야 하고 제주 관광업계도 반성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관광객들도 조금만 발품을 팔면 합리적인 비용으로 제주의 진짜 매력과 만날 수 있다. 조금만 더 찾아봐도 SNS의 화려한 이미지로 떡칠하지 않은, 수수한 제주의 맨얼굴과 마주볼 수 있다.
겨울날 제주시 오일등식당에서 유리문 바깥으로 눈 내리는 풍경을 보며 먹는 동태찌개의 맛은 어떻게 설명이 안 된다. 한 자리를 오래 지키느라 허름해진 돈물국수 나무 의자에 앉아 꿩메밀칼국수를 먹으면 수수한 맛과 함께 소박한 세월이 몸속으로 함께 들어온다. 어느새 제주를 대표하는 음식이 된 고기국수의 경우 건물까지 세우고 분점을 거느린 식당에서 대기표 받고 오래 기다릴 필요가 없다. 제주시의 골막식당이나 함덕에 있는 예소담이 맛도, 양도, 서비스도 월등하다. 제주시 파도식당과 표선 춘자살롱의 멸치국수는 고기국수보다 산뜻하면서도 깊은 맛을 낸다. 참, 제주시 닥그네할망의 접짝뼈국과 표선 가시식당의 두루치기도 빼놓을 수 없다. 생각나는 집들이 너무 많아서 글이 점점 두서없이 뒤죽박죽이다. 두서없는 뒤죽박죽의 방식으로 제주 식도락 여행을 가보라.
조천에 있는 '시인의 집'에서 무화과바게트를 곁들여 커피를 마셔보라. 시인이 운영하는 책방이기도 한 이 카페에서는 작가들의 친필 사인본을 판매하는데 이번에 노벨문학상을 받은 한강 작가의 모든 책들을 소장하고 있다. 조천에 간 김에 선흘방주할머니식당에 들러 땅에서 난 것들을 재료로 한 곰취만두, 검정콩국수, 고사리비빔밥을 먹으면 제주 내륙을 먹은 것이다. 바다 먹거리도 비싸게 먹을 이유가 없다. 사계 춘미향식당의 열기조림과 모슬포 돈지식당의 자리돔정식, 돈방석식당의 방어정식, 보목포구 돌하르방식당의 한치물회, 서귀포 올래시장 회센터의 벤자리, 긴꼬리벵에돔, 구문쟁이, 따치 회를 먹는다면 제주에 대한 편견은 이미 사라졌을 것이다.
함덕 서우봉의 노을 속을 걷는 일, 사계 박수기정을 오래 바라보며 절벽의 주름을 세는 일, 한라산 1100고지의 산지습지를 트레킹하다가 내친김에 존자암지까지 오르며 한라산의 초록을 삼키는 일, 돈내코 원앙폭포의 사파이어빛 계곡물에서 헤엄치며 온몸을 파랑으로 물들이는 일, 대정읍 추사 유배지에서 400년 전 선비의 외로움을 헤아려보는 일, 위미리 동백군락지를 지나 해안도로를 걷다가 영화 '건축학개론'의 촬영지인 카페 서연의 집 통유리창으로 아득한 수평선을 바라보는 일, 해안동 GS 편의점 야외 테라스에 앉아 밤바다를 수놓은 백 개의 달을 보는 일, 편의점 바로 옆 LP바 언플러그에 앉아 친구와 함께 음악을 듣는 일….
아직 우리가 모르는 제주가 너무나 많다. 진짜 제주는 겉으로 화려하지 않고 함부로 자신을 내세우지도 않는다. 그저 그 자리에 늘 같은 모습으로 있을 뿐이다. 그 제주가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육지에서부터 남쪽으로 가장 멀리 떨어진 섬이지만 비행기로 40분이면 닿을 수 있어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제일 선호하는 여행지로 꼽힌다. 우리 국민뿐만 아니라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 국가의 여행자들에게도 '환상의 섬'으로 일컬어진다.
정답: 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