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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01월 20일 월요일
한번쯤은 … 가을 섬진강을 거닐어봐야 한다
사람들은 이 고장을 오컬트 호러무비의 배경으로 기억한다. "뭣이 중헌디?"라는 대사가 유행했는데, 진짜 중요한 것은 이곳이 아름답고 인심 넉넉한 고장이라는 사실이다. 영화와는 달리 한없이 평화롭고 환한 곳, 바로 전남 곡성이다.
광주와 나주, 담양, 남원 등에 비해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신비로운 이야기들을 싣고 굽이굽이 흐르는 섬진강과 도림사 계곡, 압록유원지, 동악산 등 아름다운 자연 경관은 물론 기차마을, 장미축제, 섬진강 천문대, 조태일문학관 등 테마 관광지와 명소가 즐비하다. 빼어난 음식 맛은 덤이다.
이른 봄에는 매화와 산수유가 겨울의 무채색을 벗기고 화려한 색을 입힌다. 봄이 더 무르익으면 섬진강변을 따라 끝없는 벚꽃이 강물처럼 흐르고, 늦봄에서 초여름엔 철쭉이 장관이다. 늦여름에는 자줏빛 배롱나무꽃이 빽빽한 녹음 사이에서 보석처럼 빛나고, 가을엔 메타세쿼이아와 단풍의 고즈넉한 풍광이 첼로 협주곡처럼 너르게 퍼져나간다. 얼어붙은 섬진강 위로 눈이 쌓이면 하얀 침묵 속에서 얼음장 아래의 고요한 물소리를 듣는 기쁨도 있다.
심리학자인 폴 퀸네트는 '인생의 어느 순간에는 반드시 낚시를 해야 할 때가 온다'는 책을 썼다. 자살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인 폴 퀸네트는 절망과 우울감으로 고통받는 이들에게 낚시를 치료법으로 제시한다. 어릴 적부터 아버지를 따라 낚시터에서 자란 나는 30년 넘게 낚시를 하고 있는데, '낚 ; 詩 - 물속에서 건진 말들'이라는 낚시 산문집도 썼다. 그 책 머리말에 이렇게 썼다. "낚시를 하면 복잡한 삶이 단순해지고 풍요로워진다. 좋아하는 일과 해야 하는 일이 서로 균형을 맞추면서 삶 전체를 발전시켜나간다. 원고 마감에 쫓길 때는 '빨리 원고 완성해서 낚시 가야지' 하는 생각이 마감의 동력이 되고, 낚시를 하다 보면 일상으로 복귀해야 할 부담감을 느낀다. 그렇게 낚시가 삶을 이끌고 간다. 낚시를 위해 열심히 살고, 낚시를 하다 보면 또 삶이 절박해지는 것이다"라고.
늦여름에서 늦가을까지는 섬진강 쏘가리와 꺽지 낚시의 최적기다. 뙤약볕이 수그러들고, 뜨겁던 강물도 좀 식으면 쏘가리와 꺽지들이 동면을 앞두고 활발하게 먹이활동을 시작한다. 우리 고유의 민물고기들로 강물에 몸을 담그고 인조미끼를 쓰는 루어낚시로 잡는다. 낚시에 걸린 쏘가리가 몸을 뒤채며 내 앞에 오는 순간, 쏘가리의 어체와 햇빛이 부딪치며 강물이 온통 금빛으로 번쩍이는 광경을 보면 온몸이 나른해진다.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다는 게 루어낚시의 장점이다. 자연 속에서 신선이 되어보고 싶다면 섬진강에서 루어낚시를 해보라. 폴 퀸네트 박사의 처방대로 낚시에는 치유의 힘이 있어 낚시를 통해 우리는 잠시라도 힘겨운 세상살이를 잊을 수 있다.
강물에 몸을 담그고 낚시를 하다 보면 금방 허기가 진다. 곡성은 식도락의 숨은 명소다. 섬진강이 내어주는 쏘가리, 은어, 다슬기, 참게, 재첩 밥상이 입맛을 돋운다. 곡성 신기리의 '순자강 민물매운탕'은 민물 매운탕과 참게탕, 참게장, 다슬기 수제비를 잘하는 집이다. 압록유원지 근처 '청솔가든'은 은어조림과 튀김, 참게 매운탕이 주력인데 인기 메뉴는 따로 있다. 참게를 절구에 빻아 살만 골라낸 것을 채소와 함께 얼큰하게 끓여낸 참게 수제비다.
물에서 나는 것 못지않게 땅에서 나는 것도 풍성하다. 곡성을 대표하는 특산물로 흑돼지와 토란을 들 수 있다. 흑돼지의 경우 고추장 양념을 발라 숯불에 굽는 석쇠구이 맛이 끝내주는데, 가장 유명한 집이 '석곡식당'이다. 이 집이 맛에서는 독보적인데, 가격이 비싸다. 석곡식당 문 앞에서 발길을 돌린 사람들이 찾는 곳이 '돌실숯불회관'과 '우리식당'이다. 훨씬 합리적인 가격으로 석쇠구이를 넉넉히 먹을 수 있다. 여름엔 도림사 계곡에서 물놀이를 하고, 계곡 평상에 앉아 백숙을 시켜 먹으면 별천지다. 여름에서 가을로 계절이 바뀌는 지금은 압록유원지가 더 놀기에 좋다. 풍광이 수려한 섬진강변에 팩을 박을 수 있는 사이트부터 매점, 화장실, 식당 등 무료 노지캠핑을 위한 시설이 완벽하게 갖추어져 있다. 캠핑을 하다가 어두워지면 곡성 섬진강천문대에 가 별을 관측하는 것도 큰 즐거움이다. 곡성 출신으로 한국 현대 서정시의 독자적인 한 길을 개척한 조태일 시인의 자취를 찾아 조태일문학관에 가거나 마천목 장군과 도깨비살의 신비한 설화가 있는 도깨비마을에 가보는 것 또한 곡성 여행을 즐기는 방법이다.
서울로 올라가기 전 곡성 읍내 '소머리국밥'에서 국밥 한 그릇으로 속을 채워보라. 가게 이름도 따로 없이 상호가 그냥 '소머리국밥'이다. 남원, 대강, 신기리 쪽에서 곡성읍으로 가는 길에는 가을에 특히 멋진 메타세쿼이아 길이 있다. 그 길 느릿느릿 지나 이 집 국밥까지 먹으면 가을 곡성 여행은 비로소 완성된다.
정답: 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