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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0월 03일 목요일

기고·인터뷰 이슈 따라잡기

삐딱이가 그린 K-괴생명체, OTT를 점령하다

연상호 감독 '기생수'
넷플릭스 전세계 시청 1위
스마트폰 대중화 이후
첨예한 IT 알고리즘이
취향 커뮤니티 만들어내
소수 덕후도 주류로 우뚝
사진설명
'기생수: 더 그레이'의 한 장면. 넷플릭스

지금은 넷플릭스에 K드라마가 공개되면 글로벌 톱10에 등극하는 것이 더 이상 놀랍지 않은 2024년이다. 팬데믹이 장기화되며 넷플릭스나 디즈니플러스 같은 'OTT 스트리밍'이라 불리는 서비스가 전성기를 누렸고 덕분에 전 세계의 재앙이었던 팬데믹이 아이러니하게도 K드라마의 르네상스를 연 것이다. 지난주, 연상호 감독의 신작 드라마 '기생수: 더 그레이'가 넷플릭스의 영어·비영어 부문 전체를 통틀어 1위에 올라섰다. 관련하여 모 매체에서 연상호 감독과 진행한 인터뷰 내용 중 인상적이었던 부분을 공유한다.

"저는 마이너한 성향을 가진 사람이다. 그게 지금 이 시대에 메이저가 돼 있다는 게 신기하다. 그런 장르(마이너한 감성의 콘텐츠)의 위치가 달라져 버린 이 현상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고민이다. 영원히 상업영화 감독으로 데뷔 못할 줄 알았다." 소위 천만 영화라고 불리는 '부산행'을 시작으로 '지옥' '반도' 등 수많은 글로벌 흥행작을 탄생시킨 스타 감독의 의외의 답변이다.

그간 인류의 역사를 발전시켜 온 원동력은 소수가 누리던 사치품들이 대중의 필수품으로 자리 잡아가는 지난한 과정이었다. 18세기 고전파 시대의 곡들이나 조선 중기 황진이의 음률도 당시에는 귀족 계층만이 향유하던 콘텐츠였으니 말이다. 이런 고급 콘텐츠가 스마트폰 대중화와 통신·디바이스의 고도화로 일상화된 지 오래다. 흥미로운 건 그다음부터 전개된 흐름이다. 무엇인가 모두에게 '일상화'되면 이는 필연적으로 '개인화'로 이어지는 흐름을 탄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개인의 취향과 기호가 파편화돼 가는 트렌드를 따른다. 실례로 실리콘밸리의 창조물이자 정보기술(IT) 알고리즘의 끝판왕인 넷플릭스와 유튜브가 스마트폰을 등에 업고 전 세계를 지배하게 되자 우리는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를 제대로 알게 되었다. 평생을 모르던 내 취향을 거대한 IT 서비스를 통해 더 깊고 정확하게 알게 된 것이다.


이렇게 별게 아니던 개인의 사사로운 취향들이 수면 위로 드러나며 비슷한 성향과 공감대를 갖고 있는 무리들이 뭉치고 이것이 디지털 세상에서 발현된 것이 바로 '(디지털) 커뮤니티'다. 소수의 취향 무리들, 덕후들, 날카로운 취향의 소유자들이 '커뮤니티'라는 나름의 규모화를 통해 취향 영향력을 행사하는 시대가 됐다. 흔히 사회관계망서비스로 일컬어지는 SNS가 이러한 취향들의 인지와 결집, 확산을 효율적으로 만들어준 것은 물론이다. 팬데믹 이후 범람한 디지털 플랫폼 시대에 커뮤니티에서 출발한 상품들을 기반으로 대중의 언어로 소통한 자들이 주류로 올라선 셈이다. 주류가 되었다는 것은 문화가 되어 트렌드를 이끈다는 것이다.

결국 '모든 사람을 연결한다'는 마크 저커버그(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운영사 '메타'의 CEO )의 소셜 비전이, 어느새 관심사가 비슷한 이들의 커뮤니티 연결로 작용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미 발 빠른 기업과 브랜드는 디지털에서 응집된 취향 커뮤니티를 공략하여 그들의 관심을 얻고, 아날로그 공간에서 고유한 경험을 선사하는 마케팅 방식을 취한다.

날카로운 커뮤니티 전략으로 'Something(상품)'을 알리고 오프라인에서 지속 가능한 비즈니스로 연결하는 방향이다. 이를 메가 트렌드로 포장하면 사사로운 개인의 취향들이 끼리끼리의 커뮤니티로 응집되고 이것이 소셜이라는 시장의 검증을 받아 주류로 올라섰음을 말한다. 삐딱이들의 취향이 메이저가 되는 시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