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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15일 수요일

기고·인터뷰 이슈 따라잡기

기술 경쟁은 그만 …'기획자의 시대' 준비하라

깜짝 놀랄 수준의 영상
글자 몇마디만 '툭' 치면
누구나 만들 수 있게 돼
단순 노동의 시대는 끝
인문학적 사고 기를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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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AI가 공개한 인공지능모델 소라(Sora)를 통해 만든 동영상 장면들.

최근 애니메이션 특화 고등학교에서 강연이 열렸다. 고등학교에 갓 입학한 신입생을 대상으로 했기에 필자와 청중 모두 설레는 자리였다. 때마침 챗GPT 운영사 오픈AI에서 생성형 인공지능(AI) 영상 서비스 '소라(Sora)'를 발표한 지 2주쯤 지난 시기여서 AI가 초래할 노동생산성의 변화를 꽤 길게 설명했다. 강연이 끝나고 질의응답 시간이 이어졌는데 첫 질문에 울컥했던 순간이 생생하다.

"작가님, 그럼 저희는 뭐 하고 살아요?'

초등·중학교 시절 내내 만화가 좋아서, 그림 그리는 게 마냥 행복해서 웹툰 작가와 애니메이터라는 꿈을 안고 애니메이션 고등학교에 입학한 신입생이다. 그런데 글자 몇 마디만 '툭' 치면 할리우드 스튜디오를 뺨칠 만한 영상이 자동 생성되는 AI 서비스가 나온다고 하니 이런저런 생각이 복잡했던 모양이다. 말 그대로 '텍스트 투 비디오(Text To video)' 시대로 자동 전환이 이뤄진 것이다. 그래도 상용화까지 꽤 시간이 걸리겠지 했건만, 얼마 전 미라 무라티 오픈AI 최고기술책임자는 월스트리트저널(WSJ) 인터뷰에서 "연내 소라를 이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바야흐로 AI 그리고 AI 융합 시대가 급진적으로 다가오고 있다.

10초 내외 영상을 만들어주는 생성형 AI 서비스는 이미 개발돼 있었다. 그러나 소라는 영화 '듄'을 뺨칠 정도로 퀄리티가 압도적이며 최장 1분짜리 영상을 제작할 수 있다.


AI 기술 진화의 가속도를 감안하면 영상 길이는 점차, 아니 급진적으로 늘어날 것이다. 몇 문장의 명령어 입력만으로 고도화된 기술이 요구되는 실사 영화와 애니메이션이 탄생하는 것이다.

이미 웹툰이나 애니메이션 산업은 기존에 가장 극강의 노동집약성이 필요하던 그림 그리기 작업에서 자유로워지고 있다. 창작자는 책상에 엉덩이를 붙이고 그림 그리기에 오랜 시간을 들일 필요가 없어졌다. 이들은 궁극적으로 물리적 시간에서 자유로워질 것이다.

어떤 일자리부터 타격을 받기 시작할 것인가. 영상 산업 일자리는 모두 없어지는 것인가. 업계 전문가들은 길이가 짧은 광고 시장이 가장 먼저 위협받을 것이라고 분석한다. 단순 작업을 반복해 처리하던 비숙련 촬영·편집 인력부터 일자리가 감소할 수 있다.

2000년대 검색 포털에 데이터가 급속도로 쌓이면서 누구나 시간과 집중력만 투자하면 특정 분야의 전문가가 될 수 있는 시대가 왔다. 이는 곧 지식과 정보의 평준화가 시작됐음을 의미한다.


생성형 AI 서비스가 등장한 2020년대가 데자뷔처럼 느껴진다. 단순 반복 작업, 노동집약성이 요구되던 일은 이제 AI로 넘어가고 있다. 실리콘밸리가 개발해낸 포털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생성형 AI 서비스는 시공간 제약에서 벗어나 인류에게 더 많은 자유를 허용할 것이다. AI는 기술과 지식 영역을 벗어나 훨씬 더 지능적인 영역으로까지 침투할 것이다.

오픈AI는 서비스명을 일본어로 '하늘'을 뜻하는 '소라'라고 지은 이유에 대해 '하늘처럼 끝이 없는 인간의 창의성'을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강한 섬뜩함을 주는 대목이다.

지금 학생들은 어떤 역량을 키워야 할 것인가. 기획 능력을 키워야 한다. 정보기술(IT) 전반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한 서비스 기획력과 인간에게 무엇이 필요한 것인지 사고하는 훈련이다. 훈련이 반복되면 좋은 습관이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AI 융합 시대에 가장 필요한 것은 인문학적 사고다. 지금 인류는 AI 덕분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슈퍼 생산성 혁명을 거치고 있다.

인간보다 모든 것을 더 빨리, 더 정확히 습득하는 AI와 지식·기술 경쟁을 하지 말자. 자격증을 기반으로 한 직업이 상당수 사라질 시대에 고정된 지식과 기술을 습득하는 일은 비효율적이다. 내가 잘할 수 있는 분야를 정하고 그 커뮤니티에서 어떤 기획이 인류의 삶을 즐겁고 풍요롭게 할 것인지 항상 고민하는 습관을 키우자. 기획자의 시대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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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가영 콘텐츠미디어 산업 전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