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en.mk.co.kr

2024년 11월 02일 토요일

기고·인터뷰 이슈 따라잡기

시든 떡잎에 생기가… 반려식물병원 오세요

"회생 가능성은 있나요?"

"그럼요. 이 친구가 치료를 견딜 수 있으면요."


지난 18일 서울 서초구 내곡동에 위치한 반려식물병원 진료실에서 들린 대화입니다. 높이 50㎝를 훌쩍 넘는 화분을 들고 온 손님이 있는가 하면 '73일 된 아기 로즈마리'를 품에 안고 온 손님도 있었습니다. 잎 대부분이 시들어버린 '금전수'를 들고 병원을 찾은 최대규 씨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금전수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최씨는 5년 전 사무실을 개업할 때 친한 친구가 보내줬던 금전수를 살리기 위해 반려식물병원을 찾았습니다. 금전수는 힘없이 고개를 떨구고 있었습니다. '반려식물계의 명의' 주재천 반려식물병원장은 금전수가 '과습 상태'임을 한눈에 알아차렸습니다. 금전수처럼 물을 싫어하는 식물은 물 관리가 가장 중요합니다. 금전수의 썩은 뿌리를 잘라내기 위해 병원 내 치료실로 올라가 분갈이를 진행했습니다.


시들시들 식물 환자 … 입원해서 치료받고 살아났어요

 

서울시 농업기술센터에

반려식물 병원 문 열어

화분갈이·약제 치료 병행  

서울 4곳에 식물 클리닉

 

 

치료실은 햇빛과 바람이 잘 드는 비닐하우스에 마련돼 있습니다. 금전수를 화분에서 빼내자 흙과 함께 스티로폼 덩어리가 수십 개 쏟아져 나왔습니다. 주 원장은 "스티로폼 덕에 화분 내 공기가 많아서 금전수가 여태껏 살 수 있었다"고 설명했습니다. 스티로폼이 없었다면 그 자리가 물로 가득 차 있어 지금 상태도 유지하기 어려웠을 것이란 설명입니다. 금전수는 물이 잘 빠지는 흙과 함께 새로운 화분으로 옮겨갔습니다.

주 원장은 "금전수 줄기가 야들야들해서 분갈이할 때 수술을 집도하는 기분이었다"고 웃으며 금전수 치료를 마무리했습니다.

이날 야윈 금전수를 들고 찾아온 최씨는 "반려동물이 아니라 반려식물을 치료해주는 병원이 있을 줄은 몰랐다"며 "반려동물처럼 식물도 애정을 갖고 키우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습니다.


반려동물처럼 이제는 식물에도 '반려'라는 단어가 붙는 게 어색하지 않습니다. 반려식물을 키우는 트렌드에 맞춰 서울시는 지난달 10일부터 서울시 농업기술센터 내에 반려식물병원을 개원했습니다. 이는 반려식물 관리에 어려움을 느끼는 시민들의 부담을 줄이고 건강한 취미생활을 지원하기 위한 사업으로 서울 시민을 대상으로 진행됩니다. 반려식물의 생육 상태를 살펴 치료를 돕는 식물 종합병원인 셈이죠.

서울시 공공서비스 예약시스템 홈페이지에서 예약한 후 반려식물과 함께 병원을 방문하면 식물 상태를 정밀 진단받을 수 있습니다. 이후 식물 상태에 맞춰 분갈이, 약제 방제 등 치료를 진행합니다. 심각한 경우 병원 내 입원·치료실에서 집중 치료가 이뤄집니다. 입원실은 식물이 잘 자랄 수 있도록 온습도를 조절할 수 있는 온실에 조성돼 있고, 최소 7일부터 최대 3개월간 입원 치료를 받을 수 있습니다. 모든 식물 케어는 무료로 진행됩니다. 아울러 거리가 멀어 반려식물병원을 찾기 어려운 시민을 위해 서울 동대문구·종로구·양천구·은평구 등 4곳에서도 반려식물 클리닉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치료실에서 주재천 반려식물병원장이 금전수를 화분갈이하고 있다.

 

반려식물병원은 평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30분 간격으로 예약을 받고 있습니다. 방문 진료 외에도 전화 상담, 영상 진료를 통해 치료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주 원장은 "하루 평균 10~13명의 손님이 '식물 환자'를 들고 병원을 찾는다"며 "처음 반려식물병원을 개원했을 때는 많은 분이 찾아오시지 않을까 봐 많이 걱정했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걱정과 달리 지난 15일까지 총 35일 동안 300개 넘는 식물 환자가 병원을 찾았습니다. 고령층이 식물병원을 많이 찾을 것으로 예상했지만 뜻밖에도 청년 손님이 많았습니다. 지난 4월 한 달간 병원을 방문한 고객 중 절반 이상(56%)이 20·30대였습니다.

반려식물에 대한 관심은 코로나19를 기점으로 높아졌습니다. 코로나19로 바깥 활동에 제약이 생기면서 집에서 느끼는 우울함을 식물로 치유했던 것이죠. 이때부터 가정에서 식물을 키우며 즐거움을 찾는 '식집사'(식물+집사, 식물에 애정을 쏟아 기르는 사람)라는 신조어도 생겨났죠.

이제 가족의 한 구성원이 된 반려동물처럼 반려식물에도 저마다 이름을 붙이고 정성스럽게 가꾸며 정서적 위안을 받고 있는 것이죠.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국민 1인당 연간 화훼 소비액은 증가세입니다. 2021년 국민 1인당 화훼 소비액은 1만2386원으로 2020년 대비 6.1% 상승했습니다.

반려식물의 성장 다이어리를 작성하고 식집사끼리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앱)도 출시되고 있습니다. '그루우' 앱에 반려식물을 등록하면 물 주는 주기부터 분갈이 시기까지 최적의 관리 스케줄을 알려줍니다. 인공지능(AI) 식물 진단 기능을 통해 잎 사진을 찍으면 AI가 식물의 건강 상태를 파악해 해결책을 제시해주기도 합니다.

 

[이현정 경제경영연구소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