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연수 인턴기자
입력 2026-05-04 09:02teen.mk.co.kr
2026년 05월 11일 월요일
중동 산유국이 왜 한국에 석유를 맡길까

박연수 인턴기자
입력 2026-05-04 09:02

석유비축시설 (출처: 한국석유공사 제공)
정부의 전화기가 잠잠해질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나라 석유 비축기지를 사용하게 해달라는 중동 산유국들의 전화가 끊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석유를 직접 채굴해 이미 전 세계로 공급하고 있는데, 왜 우리나라에 저장 공간을 빌려 달라는 것일까요?
우리나라는 자체적으로 매장된 석유가 거의 없어 위기 상황에 대비해 평소 일정 수준의 석유를 '석유비축기지'에 저장합니다. 이 시설에는 외국 기업의 석유도 함께 보관되죠. 마치 해외 기업이 배송 시간을 줄이기 위해 현지에 물류센터를 두는 것과 유사한 방식입니다. 이처럼 외국 기업의 석유를 국내 비축기지에 저장하는 사업을 '국제공동비축사업'이라고 합니다.
최근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되며 전 세계 석유의 중요한 길목이 막히자 아랍에미리트(UAE) 등 산유국들은 이를 안정적으로 보관할 새로운 거점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호르무즈 해협에 의존하던 기존 구조가 리스크로 작용했고, 추후 유사한 상황에 대비해야 할 필요성이 더욱 커졌기 때문이에요. 양기욱 산업통상부 산업자원안보실장은 지난달 14일 브리핑을 통해 "우리나라 석유비축기지를 사용하고 싶어하는 나라가 많아지고 있다"며 "특히 중동 쪽에서 동북아시아 비축기지 활용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고 발표해 한국이 강력한 후보로 떠올랐음을 제시했습니다.
중동 산유국들의 경제는 원유 수출에 크게 의존하기 때문에 이를 세계 각지로 빠르고 원활하게 공급할 수 있는 환경이 중요합니다. 즉, 특정 경로에 문제가 생기지 않을 수 있는 지정학적 안정성과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대체 수송이 가능한 물류 인프라스트럭처가 핵심 조건으로 작용합니다.
이를 충족하는 대표적인 지역이 바로 한국입니다. 김인욱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한국은 중국, 일본과 지리적으로 가까워 석유 비축기지로서 매력이 높은 국가"라고 언급하며 "중동 국가와의 에너지 협력 경험이 상당한 점과 한국·중동의 경제 협력에 방해가 될 만한 민감한 정치적 이슈가 적다는 것이 강점"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실제로 지난 3월 UAE와 체결한 국제공동비축사업의 일환으로 원유 200만배럴이 여수 비축기지에 입고된 점은 협력 관계가 현실에서도 입증된 사례입니다. 더불어 그는 "세계적 수준의 정유 시설을 뒷받침하는 에너지 산업 인프라를 보유한 것 또한 차별점"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이처럼 한국은 단순 경유지를 넘어 전략적 거점으로 기능하고 있습니다.
한국 입장에서도 이 같은 사례가 지닌 의미가 작지 않습니다. 다양한 이점을 제공해주기 때문입니다. 먼저 우리나라는 국제공동비축사업을 통해 임대료 수익을 확보해 정부 예산만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유지·관리 비용을 충당할 수 있습니다. 또한 보관된 석유를 우선적으로 구매할 수 있는 우선구매권을 통해 위기 발생 시 국내 에너지 수급을 안정시킬 수 있고, 이를 바탕으로 외교적 협상력도 강화할 수 있습니다. 양 실장 역시 "비록 우리 비축량으로 잡혀 있지는 않지만, 그들 물건이라도 우리 마당에 들어와 있고 국내 정유사들이 그 수요를 가지고 있어 실질적으로 국내 비축량이 확대되는 효과가 있다"고 설명하며 그 효과를 강조했습니다.
현재 한국의 비축기지 용량은 총 1억4597만배럴로, 이 중 90%가 사용되고 있어요. 증가하는 수요를 수용하고 동북아 석유 물류 거점으로서 역할을 강화하기 위해 정부는 약 2000만배럴 규모의 추가 증설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이 같은 확충이 이뤄진다면 에너지 안보 역시 한층 강화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박연수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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