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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14일 화요일

기고·인터뷰 이슈 따라잡기

[김영주 원장의 세계사로 배우는 시사]고착화된 확증편향 … 정치는 뭘 해야하나

日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놓고
다시 둘로 갈라져 싸우는 사회
믿고 싶은 것만 믿는 확증편향
동서고금 막론하고 항상 있어
민심을 어루만져 주는게 정치
"당신들과 함께 간다" 확신주고
"불안에 떨 필요없다" 읍소해야
 
게티이미지뱅크
 
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으로 일어난 쓰나미가 후쿠시마 제1 원자력발전소를 무력화시켰다. 10년째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하던 일본은 2021년 4월 히타치에서 만든 최신 다핵종제거설비(ALPS)로 방사성 동위원소는 걸러내고, 삼중수소 등 기타 핵종은 묽게 해서 2051년까지 바다에 오염수를 방류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한국 정부는 그동안 막혀 있던 현해탄을 열고자 지난 3월 한일정상회담을 추진했다. 이후 우리나라 국민은 갑자기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를 이해해야만 하는 시국이 펼쳐졌다. 일본 정부는 파상적으로 여러 경로를 통해 우리 정부에 일본산 수산물 수입 금지 조치 철폐를 요구했다. 삼중수소 논란 속에 여름이 갔고, 일본은 8월 24일 방류를 시작했다.

정리를 위한 먼 길

독일 니더작센주 볼펜뷔텔 남동쪽에는 완만한 구릉들이 늘어선 아세 산지가 있다. 아세의 소금광산들은 19세기 말부터 개발됐고 1964년 채산성을 이유로 모두 폐광됐다. 당시 원자력발전소에서 나오던 핵폐기물 저장소 선정으로 골머리를 앓던 서독 정부는 '아세 수직갱구역(Schachtanlage) Ⅱ'의 소금갱 중에서 깊이 725m에서 551m 사이에 있는 13곳에 핵폐기물을 저장하기로 결정했다. 1967년부터 1978년까지 약 4만7000㎥(약 12만6000배럴)의 저준위·중준위 방사성 폐기물이 이전 광산실에 저장됐다.

그러다가 2008년 지하수가 저장소에 흘러들어간다는 보도가 나왔다. 사실 1980년대 말부터 유입수 문제가 알려졌고 전문가들은 일부 방이 이미 불안정하고 천장이 무너져 있어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추가 붕괴를 방지하기 위해 1995년부터 이전 광산의 남쪽 측면에 있는 갱도들을 비축 소금으로 채우기도 했다. 그러나 여전히 하루에 1만2000ℓ의 오염수가 아세 핵폐기물장에서 흘러나온다.
 
독일도 연방방사선방호국(BfS)에서 연방최종저장협회(BGE)로 관리를 이전하면서 관리 구조를 개편했다. 정작 독일 정부가 내놓은 해법은 47억유로(약 6조6700억원)를 들여 2033년 핵폐기물 회수를 위한 준비를 한다는 것이 전부이고, 2060년대나 가야 어느 정도 정리될 것으로 전망된다. 후쿠시마 1원전이 연간 방류할 삼중수소 총량은 22테라베크렐(T㏃)로 알려져 있는데 아세의 2022년 12월 31일 현재 방사능 측정치는 200T㏃이다. 우리나라엔 아세 인근의 고어레벤 지역에 마련된 중간 저장시설이 모범 사례인 것처럼 알려져 있지만 오염수는 여전히 엘베강으로 흘러들고 있다. 하류에는 브라운슈바이크, 볼프스부르크, 함부르크 같은 도시들이 있다.

확증편향은 죄가 아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모든 정권과 국민은 사실과 소문, 홍보와 선동 사이에서 길을 잃곤 했다. 돌이켜보면 소문과 선동을 구별하기 쉽지만 막상 당대를 살아가는 당사자 입장에서는 자신을 둘러싼 정보 속에서 그것을 구별하기가 어렵다. 그 각각의 혼란 속에서 개인들은 자아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자신도 모르게 믿고 싶은 것만 믿는 확증편향을 갖게 된다.

각각의 정치 진영이 갖고 있는 확증편향은 당연히 다르다. 교육이나 계몽은 확증편향이나 고정관념을 꽤 희석해주지만 가끔 마주하게 되는 증거들이 자꾸 그 타당성을 믿게 만들곤 한다. 그래서 야당 대표가 범죄자라고 믿는 사람과 어쨌든 삼중수소가 찝찝하다고 믿는 사람은 각각의 주제로 토론이 불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확증편향을 좋다 나쁘다의 이분법적 잣대로 평가할 순 없다. 어쨌든 인간은 정작 중요한 시점에서 논리를 따르지 않는 경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정치의 영역에서는 사실관계나 상관관계, 심지어는 인과관계조차 생각만큼 중요하지 않다. 고등학교 1학년 사회 교과서에 언급되는 데이비드 이스턴의 정책 결정 모델처럼 국민에게서 올라오는 터무니없는 환류(feedback)를 납득할 만한 '하나'로 모으는 것이 정치이고 정치인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한 배를 타고 있는가

안민(安民)은 민심을 어루만진다는 의미다. 중세의 기우제가 구성원들에게 상황을 받아들이게 만드는 시간을 제공하기 위함이었듯이 정치는 시간을 들여 민심을 어루만지는 것이다. 광우병이나 코로나19, 삼중수소의 과학적 위험성보다는 언제나 그렇듯 불안한 민심을 다루는 것이 중요한 일이다.

일본 히타치와 도쿄전력의 기술 수준이 미국과 프랑스보다 낮다고 생각할 수 없고, 동일본 해역에 방류되는 오염수의 오염도가 동중국해와 북해에 방류되는 처리수보다 낮다고 생각할 수 없다. 하지만 국민은 불안하다. 국민이 정치인들에게 바라는 것은 우리가 과연 한 배를 탔느냐는 물음에 대한 확답이고, 불안을 누그러뜨릴 수 있는 읍소다.

보조금을 주는 포퓰리즘 정책을 내세워 회피기동했던 수많은 정권이 있었다. 한 배를 탔다는 유대감이나 정치적 읍소가 아닌 우는 아이 떡 하나 더 주는 방식의 정책들이었다. 중세 농경국가의 신민이든, 현대 자본주의 국가의 국민이든, 그들이 원하는 것은 과연 고관대작들이나 정치인들도 우리와 함께 갈 수 있냐는 확답이다.

국민은 위험한지 아닌지보다 지금 자신이 불안한데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것을 요구한다. '과정이 목표다(Der Weg ist das Ziel)'라는 독일 속담처럼 시간이 필요한 그 지리한 불안의 잠식까지 같이 가는 과정 그 자체를 원하는 것이다.
 
[김영주 프랑크푸르트 헤센 한국학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