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주 프랑크푸르트 헤센한국학원장
등록 2023-06-28 16:25teen.mk.co.kr
2025년 03월 28일 금요일
당신 지금 행복한가요? 1초 안에 답해보세요
김영주 프랑크푸르트 헤센한국학원장
등록 2023-06-28 16:25게티이미지뱅크
지난 4월 20일 '국제 행복의 날'을 맞아 유엔 지속가능발전해법네트워크는 '세계행복보고서(World Happiness Report) 2023'을 발간했다. 국민이 스스로 삶의 질을 평가해 측정한 행복지수에서 한국은 10점 만점에 5.951점을 기록해 조사 대상 137개국 중 57위에 머물렀다. 이는 선진국 클럽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중 35위로 최하위권을 기록한 것이다.
이번 2023년 보고서에서도 행복도 1위는 6년 연속 핀란드(7.804점)가 차지했다. 상위권에는 덴마크, 아이슬란드, 스웨덴, 노르웨이 등 북유럽 국가가 많았다.
핀란드, 덴마크, 아이슬란드, 스웨덴, 노르웨이 5개국의 인구는 중국 상하이와 비슷하고, 이들 나라 전체의 국내총생산(GDP)은 우리와 비슷하다. 만일 우리나라도 저런 소국들처럼 아직도 왕이 있고, 극심한 소득 격차 때문에 내 집 마련이 불가능하고, 빈약하고 비싼 대중교통 때문에 자전거가 일상이 되면 행복지수가 올라갈까. 아마 그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단지 등 따습고 배부르면 행복하다고 여기는 서양인들에 비해 우리는 너무 많은 의미를 '행복'이라는 단어에 투영하기 때문이다.
성경 고린도전서에 사랑에 대해 늘어놓는 장광설을 접하면 서양에서 사랑이 왜 전지전능한 만병통치약처럼 인식되는지 알 수 있다. 동아시아에서 사랑은 아끼다는 의미로 단지 7가지 감정의 하나였던 것에 비하면 이러한 문화적 차이를 실생활에서 극복하는 것은 쉽지 않다. 서양인들의 사랑은 하늘 아래 모든 숭고한 가치의 총체라고 한다면, 우리의 사랑은 단지 아끼고 좋아하는 것 정도일 뿐이기 때문이다.
서양이 셈족으로부터 차용한 유일신 사상은 선과 악, 천국과 지옥, 천사와 악마, 행복과 불행 등 특유의 이분법을 갖고 있다. 독일인들이 안부를 물을 때 그저 그렇다는 뜻으로 '에스 게트(Es geht)'라고 대답하면 그들은 항상 까닭을 묻는다. 아마도 그들은 매 순간 행복한지 불행한지 가려내는 데 익숙한지 몰라도 지금 내가 행복한지 불행한지 1초 만에 대답할 수 있는 동아시아인은 없다.
사실 우리는 기독교보다 더 오래된 무신론적인 지적 전통을 갖고 있다. 그래서 동아시아 문화권의 인생관은 서양 특유의 이분법 없이 단지 새옹지마였다. 시간의 연속성 속에서 기쁨이 슬픔의 까닭이 되기도 하고, 다시 슬픔이 기쁨의 까닭이 되기도 하는 행복과 불행을 굳이 가려낼 필요 없는 지적 전통 아래 살아왔다. 우리가 중세 국어로 '행복'의 표기를 모르는 까닭은 그런 개념 자체가 두드러질 정도로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22억명의 동아시아인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유교와 불교로 대표되는 사상 체계이다. 동아시아의 지적 전통은 삶의 기본형을 고통과 슬픔, 그리고 불완전함으로 보아왔다. 그리고 그러한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수양이나 기복신앙, 그리고 교육을 강조해왔다. 그러나 서양은 인간이 신에 의해 모든 것을 부여받고 태어나고 허물을 벗듯이 성장한다고 여기기 때문에 교육관이나 세계관이 전혀 다른 것이다.
순우리말 비나리는 산세풀이, 액풀이, 원풀이, 과거풀이, 성주풀이, 농사풀이처럼 그저 바람을 비는 가락이다. 걸립패가 대문 앞에서 비나리를 불러주기 직전에 돈이나 곡식을 주고 있는 그 집주인은 불행했던가. 단지 삶이 이어질 뿐이지, 행복이나 불행이라는 인위적인 단어로 그 상황을 기리거나 잡아둬야만 하는가. 그래서 우리 전통에서 행복은 차라리 무의미한 감정적 현학에 가까웠다고 볼 수 있다.
현대 한국인이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단지 우리가 행복이라는 단어에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엄밀하게 말한다면 북유럽 기준의 행복은 우리도 이미 누리고 있다. 갑자기 내린 초여름의 소나기에 피할 곳을 찾았고, 다시 드러난 햇살 아래 차를 마실 수 있고, 집에 돌아가서 씻고 쉴 수 있다면 말이다. 유럽인들은 비록 석회수로 샤워하면서 열악하게 살지만 그들은 그것조차 행복이라고 느낀다. 단지 이렇게 극단적인 북유럽식 행복을 우리 사회가 받아들이기는 어려울 뿐이다.
정답: 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