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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01월 15일 수요일
[즐거운 책읽기 2]
주말 오전부터 전화벨이 울렸다. 무슨 일인가 싶어 받았더니 친구가 다짜고짜 "짜증나 죽겠어"라는 말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듣자 하니 남몰래 살펴보던 사회망서비스(SNS)에 실수로 '좋아요 ' 를 눌러버렸다는 거다. 짜증이라고 표현했던 친구의 감정은 자세히 들여다보면 당혹과 수치였다.
당혹과 수치의 감정을 짜증으로 표현한 친구 모습에서 기시감을 느꼈다. 나 또한 미묘한 감정을 익숙하고 쉬운 표현으로 곧잘 정리하곤 했기 때문이다. 어디 나와 내 친구뿐일까. 익숙하고 쉬운 표현으로 다채로운 감정을 매몰시킨 경험을 떠올리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예컨대 시험에서 100점을 맞아도, 0점을 맞아도 '대박'이라는 단어 하나로 표현하는 식이다.
그게 무슨 문제냐고 질문할 수도 있다. 빈약한 어휘력을 과연 '문제'라고 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해 일찍부터 작가, 철학자들은 저마다의 이야기를 해왔다.
"생각이 언어를 타락시킨다면, 언어 또한 생각을 타락시킬 수 있다."
-조지 오웰, 「나는 왜 쓰는가」, 한겨레출판
"나의 언어의 한계들은 나의 세계의 한계들을 의미한다. 우리가 생각할 수 없는 것을 우리는 생각할 수 없다. 따라서 우리는 또한 우리가 생각할 수 없는 것을 말할 수도 없다."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논리-철학 논고」, 책세상
물론 맥락적인 이해가 필요한 이야기들이지만 언어가 우리의 사고와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는 뜻임에는 변함없다. 외국어를 공부하다 보면 '외국어 자아'가 생긴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예컨대 한국어를 사용할 때는 조용하고 차분하던 사람이 영어를 사용하면 쾌활한 사람이 되는 것인데, 사용하는 언어에 따라 사고에 변화가 생긴다는 측면에서 이 역시 같은 맥락이다.
즉 언어를 표현하는 수단인 어휘는 사고의 밑거름이고 어휘의 총량은 내 세계의 크기라 할 수 있다. 풍부한 어휘는 보다 정교하고 깊은 사고를 가능하게 하고 이는 나의 정체성으로 이어진다. 알고 표현할 수 있는 만큼 보고 느낄 수 있다. 그러므로 어휘에 대한 학습은 국어 능력이나 교양의 차원일뿐 아니라 내 세계를 확립해 나가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유유출판사에서 출간된 '우리말 어휘력 사전'은 사고의 확장을 도와주는 책이다. 비슷한 단어들의 어원을 파헤쳐 뉘앙스 차이를 알려주는 방식으로 문맥에 맞는 단어를 찾는 것을 도와준다. 어원을 통해 미묘한 차이를 이해하고 적재적소에 쓸 어휘를 골라 쓸 수 있게끔 한다. 책을 읽고 나면 '가엾다'를 써야 할 때와 '불쌍하다'를 써야 할 때, '대강'이라고 표현해야 할 때와 '대충'이라고 표현해야 할 때의 차이가 보이기 시작한다.
다양하고도 적절한 어휘 사용은 문장과 대화를 바꾸고, 더 나아가 인간관계와 삶을 바꿀 것이라는 책의 소개글처럼 다채로워지는 어휘만큼 내 세계는 풍성해질 것이다.
정답: 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