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철 시인
입력 2025-04-14 09:12teen.mk.co.kr
2025년 12월 06일 토요일
도시를 떠나 시골 돌집으로 가실래요?

이병철 시인
입력 2025-04-14 09:12돌집에서 사랑하며 살기
눈 아래가 검어졌고 머리카락이 빠졌다
일처리가 능숙해질수록
시간이 왜 이리 빨리 가는가?
거대한 톱니바퀴 속에서
내가 빠지면 기계가 멈출까?
하는 식상한 질문이 코끝을 울렸다
얻는 것보다 잃어가는 게 확연했고
열정은 조용히 사그라들고 있었다
어느새 팔 년이 지나 있었다
승용차 들어갈 만큼만 짐을 싣고 섬으로 왔다
책 몇 권, 옷가지 계절마다 서너 벌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난 사람들과
농장의 귤을 따서 팔았다
일당 칠만 원에 당근 양파를 뽑았다
일하기 싫으면 나가지 않았고
하루 내내 음악을 듣고 여행자들과 놀았다
누군가 "이렇게 사는 게 재밌니?" 물었지만
웃어넘길 여유는 잃지 않았다
그런 날은 혼자서 무섭기도 했지만
창을 열면 마중 나온 바다가 옆을 지켜 주었다
상추밭과 동백나무가 있는 조그만 돌집을 얻었다
마늘과 양파를 심었고 여전히 귤을 땄다
동네 청년들과 해변 쓰레기를 치웠다
어르신들을 모아놓고 환경 영화제를 열었다
서울 생활이 생각날 때면
하루 한두 쪽씩 영국 소설을 숙제처럼 번역했다
가끔 글을 썼으며
외로운 여행자의 보루 삼아 책을 엮었다
―김유석, '사랑, 사랑, 사랑' 부분
(시집 <이주여행자> 천년의시작 2021)

'이주 여행자' 시집 표지. (출처: yes24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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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화의 핵심 과제는 전근대와의 단절과 분리라고 할 수 있어요. 오늘날 도시는 농경사회의 공동체 문화를 산업 발전을 저해하는 구시대의 유산으로, 전통 풍속들을 도시 미관을 해치는 야만적인 문화로 치부하면서 그것들을 멸실시킨 폐허 위에 세워졌지요. 물질적 번영을 속하는 가까운 미래만이 의미와 가치를 지니는 시간으로 상정되면서, 오직 '미래'를 지향한 산업화 시대는 한국 사회의 욕망 구조를 바벨탑처럼 수직으로 세워놓았어요. 이러한 수직적 욕망은 21세기 신자유주의 시대에 더욱 심화되어 계층 간의 간극을 벌리고는 계층 이동의 사다리를 아예 없애버렸죠. 한국 사회의 극심한 양극화 현상은 낮은 곳에서 더불어 잘사는 대신 높은 곳에서 혼자 잘살기만을 추구하는 '상승-단절'이 사람들에게 내면화된 결과예요.
전쟁같은 도시의 삶
위 시의 화자는 '전쟁터'로서의 도시를 더욱 자세히 증언하고 있어요. 도시에서 그는 "눈 아래가 검어졌고 머리카락이 빠졌"어요. 영화 '모던타임즈'에 묘사된 것처럼 "거대한 톱니바퀴 속"에서 인간이 한낱 소모품으로 전락하는 상품주의에 몸과 마음을 다친 것이죠.
"얻는 것보다 잃어가는 게 확연"한 생활 속에서 화자는 마치 더듬이 잘린 곤충처럼 인생의 방향감각을 상실했어요. 도대체 무엇을 위해 매일 아침마다 '지옥철'에 끼여 출근을 해야 하는지, 누구를 위해 건강을 잃어야 하는지, 성공에 대한 강박과 실패에 대한 불안으로 왜 밤잠을 설쳐야 하는지, 입만 열면 불평불만을 토해내는 직장생활을 계속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사는 게 왜 즐겁지가 않은지···.
제주도로의 자발적 유배
도시에서 보낸 8년 동안의 답답한 삶은 결국 자발적 유배로 이어져 그는 "승용차 들어갈 만큼만 짐을 싣고 섬으로 왔"어요. 도시의 속도와 미친 경쟁과 자본 논리가 작동하지 않는 제주도에서 "책 몇 권, 옷가지 계절마다 서너 벌"로 자족하면서 "일당 칠만 원에 당근 양파를 뽑"고 "일하기 싫으면" "하루 내내 음악을 듣고 여행자들과 노"는 삶을 시작했지요."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난 사람들과/ 농장의 귤을 따서 파"는 공동체 생활을 회복하면서 마침내 평화를 얻게 됐어요.
화자는 "상추밭과 동백나무가 있는 조그만 돌집을 얻었"어요. '돌집'은 돌로 쌓아 만든 친환경주택이지요. 높이가 낮고 투박한 '돌집'에서의 생활을 구체적으로 보여줌으로써 시인은 타자와의 교류 가능성을 제거한 채 계층과 등급을 나누어 타인 위에 군림하려는 현대인들의 '높이' 집착에 경종을 울려요. 브랜드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이 공공임대아파트에 사는 아이들을 '거지'라고 부르는 도시 사회의 수직적 욕망을 부끄럽게 만들어요.
청년에게 보내는 위로와 용기

제주도 돌집. (출처: 매경DB)
한편 시인이 살고 있는 '돌집'에는 또 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바로 '무용함의 유용함'이라는 역설적 진실이지요. 함부로 나뒹굴던 돌들이 틈새를 메꾸며 튼튼한 벽을 이루는 것이 돌집의 건축 원리예요. 존재하는 모든 것에는 반드시 존재의 이유와 가치가 있다고 시인은 우리에게 말해요.
좀처럼 열리지 않는 취업의 문 앞에서, 수저계급론의 감옥 안에서 도시의 젊은 세대는 사회구조와 기득권을 원망하면서 희망과 의지를 스스로 꺾어요. 끊임없이 인정투쟁을 시도하지만 투쟁의 대상이 아예 사라진 현실 앞에 학습된 무기력과 자기모멸, 냉소로 치달으며 급기야 목숨마저 내버려요.
시인은 무용해 보이는 돌멩이가 틈새를 찾아 집을 이룬 '돌집'을 노래하면서 청년 세대에게 위로와 용기를 건네요. 자본주의가 강요하는 쓸모에 집착하며 자기존재를 소모하지 말라고, 도망치듯 도시를 떠나온 이주도 결코 패배가 아니라고 그가 말할 때, 돌집들이 나란한 제주도는 "동네 청년들과 해변 쓰레기를 치우"고, "어르신들을 모아놓고 환경영화제를 여"는 더불어 삶의 아름다운 기점이 되어요.
철학자 조르조 아감벤은 "영리함이 일정한 한계를 넘어서면 어리석음을 필요로 한다"고 했는데, 도시적 욕망이 임계점을 넘어선 시대에 우리는 어리석게 보일 만큼 단조로운 삶으로 회귀할 필요가 있어요. 시인은 그 사실을 우리에게 일깨워주고요.
정답: 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