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철 시인
입력 2025-03-17 09:12teen.mk.co.kr
2025년 12월 06일 토요일
목이 길어진 기린, 이런 이유도 있었을까

이병철 시인
입력 2025-03-17 09:12기린의 목엔 광채 나는 목소리가 없지만, 세상 모든 것을 감아올릴 수가 있지 그러나 강한 것은 너무 쉽게 부러지므로 따뜻한 피와 살이 필요하지
기린의 목은 뿔 달린 머리통을 높은 데로만 길어 올리는 사다리야 그리하여 공중에 떠 있는 것들을 쉽게 잡아챌 수도 있지만
사실 기린의 목은 공중으로부터 도망을 치는 중이야 쓸데없는 곡선의 힘으로 뭉쳐진 기린의 목은 일찍이 빛났던 뿔로 새벽을 긁는 거야
그때 태연한 나무들의 잎눈은 새벽의 신성한 상처와 피를 응시하지
아주 깊게 눈을 감으면 아프리카 고원이,실눈을 뜨면 멀리서 덫과 올가미의 하루가 속삭이고 있지
저만치 무릎의 그림자를 꿇고 물을 벌컥벌컥 마시는 기린의 목과 목울대 속으로 타들어가는 갈증의 숨을 주시할 때
기린의 목은 갈데없이 유연하고 믿음직스럽게 아름답지 힘줄 캄캄한 모가지 꺾는 법을 모르고 있으니까
―이병일, '기린의 목은 갈데없이'
(시집 '아흔아홉 개의 빛을 가진', 창비 펴냄,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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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생명을 창조하고 진화시키는 '로고스'
종교나 과학에서는 창조와 진화를 대립쌍이라고 하는데, 사실 이 둘은 상호 보완하는 게 아닐까요? 신이 창조한 생명들이 각각의 모습대로 진화해 세상에 적응했다고 믿는 것은 꽤나 합리적이고 또 낭만적이거든요.
시인의 상상력이 펼쳐 보이는 저 새로운 진화론에는 창조론도 함께 빛나고 있어요. 모든 시인은 창조자이기 때문이지요. 구약성경에 따르면 태초에 말씀이 있었어요. 생명보다 말씀이 먼저 있었어요. 말씀을 통해 생명이 창조되었고, 창조된 생명들은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진화를 거듭했지요. 태초는 언어가 원관념이고 대상이 보조관념인 세계였습니다.
말씀이 부여한 기질에 따라 생명들은 세상에서 살아나갔습니다. 그래서 이 '말씀'을 로고스(logos), 원리와 법칙이라고 불러요. 이는 만물의 탄생과 습성을 결정짓는 강력한 힘이지요. 그러나 언어의 에너지가 가장 충만했던 태초 이래로 인간은 조금씩 '말씀'의 힘을 잃어가기 시작했어요.
말씀의 자리에는 자본의 논리가 들어앉게 되었고, 언어는 상품사회의 보조적 수단이거나 획일화된 욕망의 기호로 한없이 가벼워졌어요.
그런데 시인의 시는 여전히 '말씀'이네요. 위의 시를 읽으면 우리는 언어가 지녔던 태초의 힘, 충만한 생명력이 회복되는 것을 목격하게 됩니다. 시가 생명을 창조하고 진화시키는 '로고스'이기 때문이에요.
"세상 모든 것을 감아올"리는 기린
시인의 상상력에 따르면 기린의 목이 길어진 것은 "세상 모든 것을 감아올"리기 때문입니다. "뿔 달린 머리통을 높은 데로만 길어 올리는 사다리"가 되기 위해서지요. 또 "일찍이 빛났던 뿔로 새벽을 긁"기 위함이기도 하고요.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이제 기린은 사다리가 되었습니다. 새벽을 긁는 뿔이 되었습니다. 이 낯선 상상력은 신이 세상을 창조하던 바로 그 태초의 말씀입니다. 시인은 기린에게 '사다리'라는 새로운 유전을, "뿔로 새벽을 긁는" 엉뚱한 습성을 부여했어요. 사다리가 되어 뿔로 새벽을 긁는 기린의 목은 "공중으로부터 도망을 치는 중"입니다.
사실 기린의 목은 공중과 친해야만 하지요. "공중에 떠 있는 것들을 쉽게 잡아챌 수" 있도록 진화되었기 때문에요. 그런데 왜 공중으로부터 도망을 치는 것일까요? 아마 기린은 '공중'이 진화의 목적지이자 종착점이 되기를 거부하는 듯합니다.
이 '공중'은 먹이활동과 생존의 문제로서 '먹고사는 일'에 해당하지요. 먹고사는 일을 잘 해내려면 기린은 목을 직선으로 뻗어 올려야 합니다. 하지만 이 시에서 기린의 목은 "쓸데없는 곡선의 힘"으로 뭉쳐져 '세상 모든 것 감아올리기' '사다리가 되기' '뿔로 새벽 긁기' 같은 무용한 일들을 할 뿐입니다.
그 결과 "목울대 속"에는 "타들어가는 갈증의 숨"이 발생해요. 유용한 것 대신 무용한 것을 택한 대가로 궁핍과 고통을 얻은 것이지요.
무용함으로 기울어지는 정반대의 진화론
"나무들의 잎눈" 대신 "신성한 상처와 피"를 얻은 기린은 "아주 깊게 눈을 감"아요. "실눈을 뜨"고 "아프리카 고원"을 바라봐요. 육안으로 대번 파악되는 세계가 아닌, 눈을 감으면 보이는 심안의 세계, 실눈으로 멀리 보아야 보이는 작고 아름다운 세계를 바라보는 것이지요.
이 또한 무용한 일이라 할 수 있어요. 그러나 시인의 눈에는 이 "갈데없이 유연"한 기린의 목이 "믿음직스럽"고 "아름답"게 보입니다.
그것은 아마도 현대사회에 적응하기 위한 일률적 진화를 거부한 채 물질문명이라는 공중으로부터 도망치는 중인 시인 자신의 모습과 닮아서일 거예요.
진화는 언제나 무용함을 버리고 유용함만을 택해왔습니다. 그러나 시인은 기린을 통해 유용함 대신 무용함으로 기울어지는 정반대의 진화론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목울대가 타들어가도 뿔로 새벽을 긁는 것에 힘쓰는, 육체보다는 정신의 풍요를 추구하는 시인의 유전이 "믿음직스럽게 아름답"기만 합니다.
정답: 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