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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2월 06일 토요일

비천한 평민들도 챙겼던 화랑도

조인 강남대성학원 강사·전 이화여고 역사교사

입력 2025-03-24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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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지랑(화랑)이 득오(낭도)의 어머니에게 말하길,

“당신 아들이 나랏일로 멀리 갔으니 마땅히 내가 가서 대접하겠소”라고 하고, 137명의 무리와 함께 찾아갔다.

···죽지랑이 득오가 일하던 밭으로 가서 가져간 술과 떡으로 대접하고,

그곳의 관리에게 득오의 휴가를 청하였다.' (삼국유사)

신라의 화랑(죽지랑)은 왜 평민 낭도(득오)를 위해 먼 곳까지 갔을까?

신라의 화랑도 조직은 어떻게 구성되고 어떤 역할을 했을까?

 

정창섭 ‘화랑도의 수련.' 매경DB

정창섭 '화랑도의 수련'. (출처: 매경DB)

 

 

Q. 화랑도는 어떤 조직인가요?

 

A. 신라의 ‘화랑도'는 귀족이었던 화랑과 그를 따르는 낭도(귀족 또는 평민)로 구성된 청소년 집단입니다. 이들은 같이 공부하고 노래하며 전국의 산과 물을 찾아 군사 훈련을 했습니다. 화랑 1명이 1,000여 명의 낭도를 이끌었다고 추정됩니다. 당대의 지식인이라고 할 수 있는 불교 승려가 화랑도의 스승이 되어 교육을 담당했습니다. 화랑에게 세속5계를 가르쳐 유명한 ‘원광'이 대표적입니다.

 

원래 화랑도는 한반도 남부의 청소년 조직에서 기원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넓은 영토 확장을 추진한 신라의 진흥왕은 ‘화랑도'를 국가적 조직으로 개편합니다. 전쟁이 일어나면 화랑은 장군이 되어 낭도로 이루어진 병사들을 이끌고 전쟁터로 나가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이후 삼국통일전쟁에서 화랑도는 수많은 전투를 거치며 많은 장군과 관리를 배출했습니다.

 

대표적인 화랑으로는 대가야 정벌에 나선 사다함, 삼국통일을 이룬 김유신, 황산벌전투로 유명한 관창, 향가의 주인공이 되었던 죽지랑과 기파랑, 효녀 지은 이야기의 효종랑 등이 있습니다. 화랑은 신라시대를 통틀어 약 200여 명이나 있었다고 합니다.

 

 

 

Q. 군사적인 역할 이외에 화랑도는 어떤 기능을 했나요?

 

A. 화랑도는 신분제 사회에서 보기 힘든 ‘귀족과 평민이 함께 활동하는 조직'이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신분제 사회에서 귀족은 권력을 독점하며 자신들만의 조직, 활동을 고집하며 다른 신분의 참여를 거부합니다.

 

하지만 화랑도는 기본적으로 귀족 화랑을 따르는 평민 낭도가 많았습니다. 또한 화랑 역시 평민 낭도와 소통하고 챙겨주며 귀족과 평민의 갈등을 최소화하였습니다.

 

‘모죽지랑가'로 유명한 화랑 죽지랑은 훈련에 불참한 ‘득오'의 집까지 찾아가 상황을 파악하고, 더 나아가 멀리 부역을 나간 득오를 직접 찾아가 위로하고 그를 위해 여러 노력까지 합니다. 나중에 죽지랑이 죽었을 때, 득오(평민)가 슬퍼하며 죽지랑(귀족)을 추모하는 향가 ‘모죽지랑가'를 짓는 것은 그 때문입니다. 눈먼 어머니를 홀로 봉양하는 ‘효녀 지은' 이야기에서도 화랑 효종랑은 어려운 상황의 지은 모녀에게 옷과 곡식을 보내줍니다.

 

이 역시 화랑도 조직이 당시 어려운 백성들을 챙기고 적극 후원하여 지배층의 모범을 보여주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화랑도는 폐쇄적인 신분제 사회에서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신분 간 갈등을 완화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입니다.

 

 

 

Q. 화랑도는 어떻게 쇠퇴하나요?

 

A. 화랑도는 신라의 영토 확장 전쟁에 필요한 인재를 배출하며 크게 성장하였습니다. 반대로 삼국통일 전쟁이 끝나고 강력한 왕권을 확립한 신라의 왕은 귀족 세력과 관련이 깊은 화랑도의 확대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삼국통일을 이룬 문무왕의 아들 신문왕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마침 귀족의 대표 상대등 김흠돌이 ‘김흠돌의 난'을 일으키자 신문왕은 철저하게 그들을 처벌하였습니다. 신문왕이 거센 파도를 잠재우는 피리, ‘만파식적'을 얻는 이야기는 당시 귀족 세력을 누른 강력한 왕권의 확립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때부터 진골 귀족 세력은 크게 약화되었고 그들의 아들 화랑 역시 위축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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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속5계

원광이 화랑에게 가르친 5가지 계율.

사군이충(충성으로 임금을 섬김), 교우이신(믿음으로 벗을 사귐), 임전무퇴(싸움에 물러남이 없음) 등이 있다.

 

관창

황산벌에서 백제의 계백장군에게 여러 번 사로잡혔으나 끝까지 싸우다 죽은 화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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