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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14일 화요일

교양·진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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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운 '그들만의 리그'서 사는 남극 물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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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북극(왼쪽)과 남극의 지형학적 차이.

 

이 글은 극지방 물고기 가운데서도 특별히 남극 물고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당연히 극지방이라고 하면 북극과 남극을 일컬으며, 남극뿐만 아니라 북극의 차가운 수온에 적응해 살아가는 대구나 넙치 등과 같은 물고기도 있다. 그런데 왜 오로지 남극 물고기만을 콕 집어 다루고 있는지 궁금해하는 독자들이 있을 수 있다. 어쩌면 조만간 '북극 물고기, 좀 더 특별한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또 다른 연재가 나오는 거 아닌지 기대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럴 일은 없을 것 같다.

북극의 혹독한 환경과 차가운 수온에서 사는 물고기도 특별하지만 남극 물고기에 집중하는 이유는 그들이 '더 오랜 시간의 산물이자, 완벽한 고립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그렇다면 남극 물고기를 북극 물고기보다 더 특별하게 만든 시간과 고립이 어떤 의미인지 남극 바다의 역사와 지형에 대한 탐구를 통해 알아보자.

남극과 북극은 지형적 차이가 명확하다. 북극은 여러 대륙에 둘러싸인 바다가 언 것이고, 남극은 대양으로 둘러싸인 대륙 위에 눈이 쌓여 언 것이다. 언뜻 보기에 북극의 바다는 여러 대륙에 막혀 있는 반면에 남극의 바다는 드넓은 대양으로 뻥 뚫려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단순히 겉보기만으로 판단하기엔 이르다. 사실 북극해는 알래스카와 러시아 사이의 척치해를 통해 큰 물길이 열려 있으며, 그린란드와 북유럽 사이로 이어지는 북대서양과도 연결된다. 이는 북극해를 때로 북대서양의 일부로 보는 견해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 구조적 차이는 두 극지방의 해양 생태계에도 극적인 영향을 미친다.

사진설명
남극해의 형성 원인이 된 남극순환류.

 

사방이 뚫려 있는 남극 바다는 어떤가. 남극 대륙의 역사를 깊게 들여다보면, 약 5500만년 전 남아메리카 대륙으로부터 떨어져 나가기 시작해 약 3000만년이 지나 완전히 분리되었다. 이 분리 과정에서 드레이크 해협(Drake Passage)이 형성되고, 남극 대륙을 휘감고 도는 남극순환류(Antarctic Circumpolar Currents)가 만들어졌다. 이 남극순환류의 형성은 남극해의 수온을 지속적으로 낮아지게 했고, 현재에 이르러서는 연중 1.5도에서 영하 1.9도로 매우 좁은 범위의 온도를 유지하게 만들었다.

 

이 남극순환류의 강력함은 그 자체로도 놀랍다. 이 해류는 초당 1억3000만㎥ 속도로 빠르게 순환하는데 이는 전 세계 모든 강의 흐름을 합친 것보다도 수백 배 많은 양이다. 남극의 바다가 만들어지기 전에는 많은 종의 해양 물고기들이 남극 대륙 연안을 자유롭게 드나들며 살아왔다. 그러나 극순환류의 생성과 더불어 남극 물고기는 남극 대륙 연안은 물론, 남극해로의 접근이 완벽하게 차단되었다. 반대로 안쪽에 머물던 물고기들도 그 엄청난 빠르기와 양의 물기둥을 뚫고 따뜻한 대양으로 나가는 것이 완벽히 불가능해졌다. 이것이 바로 남극 물고기들이 수백만 년 동안 그들만의 독특한 생태계에서 살아온 주된 이유다.

오늘날 우리는 국경 없는 글로벌 교류의 시대에 살고 있다. 국제 스포츠 리그는 세계 각지의 유능한 선수들을 영입하고 엔터테인먼트 산업도 한 나라 안에서 국지적 성공을 노리는 것이 아니라 전 세계 팬들을 상대로 음악, 영화 등을 판매한다. 전 세계적으로 교류가 활발해지는 것과 대조적으로 남극 바다의 물고기들은 오래전부터, 그리고 앞으로도 그들만의 리그, 즉 차갑고 고립된 '프리저리그'에서 살아가며, 이 독특한 환경에서 생존경쟁을 이어갈 것이다.

이제 왜 북극보다는 남극 물고기 연구에 더 집중하고자 하는지 알게되었으리라 믿는다. 이제부터 지구상에서 가장 독특하고 고립된 생태계 중 하나인 남극 바다에 살고 있는 남극 물고기들이 왜 그토록 특별한지에 대한 조금 더 자세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남극 물고기의 이야기는 단지 한 종류의 생물에 관한 것이 아니다. 이는 지구상에서 가장 극단적인 환경 중 하나에서 생명이 어떻게 생존하고, 적응할 수 있는지에 대한 광범위한 탐구가 될 것이다.

 

[김진형 극지연구소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