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엽 한국원자력연구원 진흥정책연구실 실장
입력 2023-09-14 10:52teen.mk.co.kr
2026년 04월 16일 목요일
'원자폭탄의 아버지' 오펜하이머의 삶과 고뇌

박근엽 한국원자력연구원 진흥정책연구실 실장
입력 2023-09-14 10:52
영화 '오펜하이머' 포스터
"나는 죽음이요, 세상의 파괴자가 됐다."
영화 '오펜하이머'에서 원자폭탄의 아버지로 불리는 로버트 오펜하이머의 대사다. 인류에게 핵을 가져다준 오펜하이머는 제2차 세계대전을 끝냈지만 또 다른 핵 전쟁의 위험을 보여줬다. 그는 소용돌이치는 역사의 흐름 속에서 뛰어난 과학자로서 국가적 책임을 다하며 위대한 업적을 이뤄냈지만 이로 인해 변해버린 세상을 온전히 혼자 감내해야 했다. 무엇이 그를 위대한 과학자로 만들었고, 또 무엇이 그를 고뇌하는 인간으로 만들었을까.
수줍은 성격에 탁월한 능력 간직
오펜하이머는 유대계 미국인으로 1904년에 태어나 역사적 혼란의 시기를 보내고 1967년 세상을 떠났다. 그는 미국 이론물리학자이자 20세기 가장 저명한 과학자 중 한 사람으로, 최초로 원자폭탄을 개발한 '맨해튼 프로젝트'를 주도했다. 세상을 바꿀 거대한 프로젝트를 이끈 인물이었지만 오펜하이머의 어린 시절은 사뭇 달랐다. 어린 나이의 오펜하이머는 붙임성이 좋거나 남들과 잘 어울리는 소위 '인싸(인사이더)' 기질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었다. 혼자 있기를 좋아하는 외톨이었다. 하지만 호기심이 많아 과학과 문학 영역에서 뛰어난 기질을 보였다. 어린 나이에 산스크리트어로 작성된 힌두교 원전을 영어로 번역할 정도로 언어 능력도 뛰어났다. 하지만 그가 두각을 나타냈던 분야는 단연 물리학과 화학이었다.
뛰어난 과학자들과 교류하며 성장
1925년 미국 하버드대 화학과를 졸업한 오펜하이머는 영국 케임브리지대로 넘어가 물리학연구소에서 대학원 과정을 공부했다. 하지만 실험 위주의 연구와 맞지 않아 2년 만에 영국을 떠나 독일 괴팅겐대로 자리를 옮겼다. 그는 이론물리학의 중심이었던 괴팅겐대에서 많은 젊은 과학자와 학문적으로 교류하며 뛰어난 과학자로 성장했다. 오펜하이머의 노력과 타고난 두뇌가 바탕이 됐지만 당대 훌륭한 지도자의 올바른 가르침과 뛰어난 동료들과의 교류도 한몫했다.
이 시기 물리학계는 원자물리학이 왕성하게 발전하고 '양자역학'이라는 새로운 학문도 등장했다. 영국 물리학자 어니스트 러더퍼드는 원자 가운데 존재하는 원자핵을 발견했고, 원자가 쪼개질 수 있다는 사실을 세계 최초로 제시했다. 오펜하이머의 스승인 덴마크 물리학자 닐스 보어는 원자 모형을 개발하고 양자역학의 기초를 다졌다. 영국 물리학자 제임스 채드윅은 원자핵을 구성하는 중성자를 발견했는데 이는 원자물리학을 부흥시키는 계기가 됐다. 이후 오스트리아 과학자 리제 마이트너와 독일 과학자 오토 한은 우라늄이 중성자를 흡수해 핵분열을 일으키고 핵분열로 인해 잃어버린 질량만큼 에너지가 방출된다는 것을 처음 발견했다. 이것은 원자의 핵분열을 통해 엄청난 양의 에너지를 얻을 수 있고, 에너지를 무기화할 수 있음을 알린 최초의 사건이었다. 이러한 물리학계의 커다란 발견은 곧 혼란한 시대와 마주했고 오펜하이머의 삶도 이전과 달라지게 된다.
맨해튼 프로젝트:역사의 전환점
괴팅겐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오펜하이머는 미국으로 돌아와 칼텍(캘리포니아공과대학)과 버클리대에서 강의를 시작했다. 오펜하이머는 이미 학계에서 뛰어난 이론물리학자로 명성을 날렸다. 그러던 중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 전쟁으로 수많은 사람이 희생됐고, 세계는 전쟁의 공포로 위협받았다.
미국 정부는 강력한 무기 개발만이 이 전쟁을 단번에 끝낼 수 있다고 여겼다. 곧 핵무기를 개발하는 '맨해튼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오펜하이머가 프로젝트의 적임자로 추천됐다. 전쟁이라는 위협으로부터 인류를 구해낼 수 있는 위대한 작업 앞에 선 그는 전례 없는 추진력과 카리스마를 갖춘 지도자로 탈바꿈했다. 그는 이 일을 통해 인류 역사에 전환점을 마련하고 전쟁의 본질을 영원히 사라지게 할 수 있다는 믿음을 키웠을 것이다. 그는 성공적으로 임무를 완수해 전쟁을 종결시켰다. 하지만 세상은 그가 이룬 과학적 성과로 인해 또 다른 위협에 직면했다.
빛과 그림자, 위대한 업적과 책임
일본에 원자폭탄을 투하하며 엄청난 살상능력을 확인한 인류는 그동안 볼 수 없었던 두려움을 경험했다. 과학의 발전은 인류를 윤택하고 풍요롭게 만들었지만 평화적 활용이 전제돼야 했다. 오펜하이머는 이후 과학이 무기가 아닌 평화적으로 활용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가 어릴 적부터 크게 관심을 뒀던 힌두 경전에 따르면 트리무르티(삼주신)라는 신은 세 가지 모습(창조, 유지, 파괴)을 가지고 있지만 결국 그 본질은 하나의 신이다. 이처럼 그는 자신이 이룬 위대한 과학적 도약과 함께 그 결과에 대한 성찰과 책임을 마주해야 했다.
오펜하이머의 업적과 고뇌는 도전과 기회가 가득한 우리 세상에서 열정과 책임감을 조화롭게 가지고 자신의 목표에 접근해야 함을 알려준다. 우리의 작은 행동이 더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항상 생각해야 한다. 오펜하이머처럼 개인의 지식과 역할은 역사의 흐름을 바꿀 수 있는 엄청난 힘을 가지지만 거기에는 막중한 책임과 의무가 따른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정답: 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