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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6월 24일 월요일

교양·진학

교양·진학 인문

아름다움과 추함을 눈으로 판별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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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카 와일드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행복한 왕자'
방종과 타락 일삼았던 도리언
아름다웠던 초상화가 흉측하게
변한 그림대로 비참한 죽음
모든 걸 남에 내어준 왕자 동상
남루하게 변해가지만 영생 얻어
사진설명
영화 '도리안 그레이'의 한 장면. 매경DB

캔버스에 담긴 아름다운 청년의 모습, 그리고 금칠이 벗겨지고 보석으로 치장된 두 눈이 떼어진 왕자 동상. 두 대상에 대해 아름다움과 추함을 논하자면 보이는 바대로 전자를 아름다움에, 후자를 추함에 해당한다고 누구나 쉽게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이 각각 오스카 와일드의 작품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그리고 '행복한 왕자'의 주인공들이라면, 그 추측은 너무나 단편적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아름다운 그림 속 청년과 흉측한 왕자의 동상 앞에서 아름다움의 의미에 대해 재고해봐야 할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먼저 아름다운 그림 속 청년이 누구인지 따라가 보자. 그의 이름은 도리언 그레이. 너무나 아름다운 이목구비를 지녀 누구라도 한번 그를 보면 감탄을 자아내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인물이다. 그의 아름다움에 경도된 어느 화가는 이 청년의 젊음을 화폭에 옮긴다. 그렇게 도리언 그레이는 자신의 초상화를 손에 넣게 된다.

한편, 살아 있는 동안 걱정이나 근심을 도무지 알 수 없는 상수시(sans-souci, 프랑스어로 '걱정 없는'을 의미) 궁전 속에서 오롯이 행복의 나날만을 보낸 왕자가 있다. 사후 그를 기리는 동상이 도시 한가운데 세워지게 되며 왕자는 생전에는 결코 몰랐던 궁 밖 시민들의 삶을 생생히 목격하게 된다. 반짝이는 두 개의 사파이어 눈과 멋진 검을 한층 더 빛내주는 루비 장식, 그리고 몸 전체가 순금으로 뒤덮인 왕자 동상을 바라보며 시민들은 생각한다. '꼭 천사 같아.'



사진설명
오스카 와일드의 '행복한 왕자' 표지. 매경DB

여기까지 보면 도리언 그레이도, 왕자도 모두 아름답고 화려하다. 타인의 시선을 강하게 사로잡으며 그 아름다움을 천천히 감상하게 한다. 하지만 도리언 그레이와 왕자의 행보는 이내 엇갈린다. 도리언 그레이는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그 아름다움이 변하지 않는 신비로움이 되어 빛을 발하고, 왕자의 동상은 시간이 흐를수록 초라하고 비루한 모습으로 전락한다. 급기야 왕자의 조각상은 끌어내려지며 예술을 가르치는 교수로부터 "이제 아름답지 않으니 쓸모도 없네"라는 말을 듣는다. 하지만 이들에게는 각기 속사정이 있다. 아름다운 도리언 그레이는 하루가 다르게 흉측하게 변해가는 자신의 초상화로 인해 전전긍긍한다. 왕자 동상은 마을 곳곳의 어려운 형편으로 곤궁에 처한 이들을 바라보며 안타까움에 잠을 이루지 못한다.

사실 도리언 그레이는 방종과 타락의 길을 걸은 지 오래다. 그의 오랜 방탕에도 불구하고 그의 용모는 변함없이 수려하고 세월의 흔적 역시 남지 않아 불가사의한 경탄을 자아낸다. 하지만 그의 초상화는 날마다 변해간다. 사실상 그의 초상화는 그의 삶과 실존을 반영하는 것이다. 주름이 깊이 패고 추악한 인상으로 점점 달라지는 그 초상화를 도리언은 아무도 볼 수 없게 집 안 깊숙이 감추고 그 누구도 접근할 수 없게 한다.

한편 왕자 동상은 날씨가 추워질수록 자신의 아름다움을 서서히 잃어간다. 가장 먼저, 오렌지를 먹고 싶어 하는 가난한 집의 아픈 아이를 위해 자신의 검을 장식하고 있는 루비를 떼어내 전한다. 사파이어로 된 한쪽 눈은 춥고 배고픈 청년을 위해서, 나머지 한쪽 눈은 맨발의 성냥팔이 소녀를 위해서 내어놓는다. 마지막으로 온몸을 감싼 금박 장식은 어두운 골목길의 굶주린 아이들을 위해서 모두 벗겨 내어준다. 이 모든 과정은 추위를 피해 따뜻한 남쪽 나라로 날아가야 하는 제비의 희생이 더해져 이루어진다. 귀여운 모습으로 처음 등장했던 제비는 그로 인해 추운 겨울을 넘기지 못하고 초라한 몰골로 왕자의 동상 밑에 떨어져 죽고 만다.


다시 도리언 그레이, 그는 결국 파멸을 선택한다. 숨진 채 사람들에게 발견된 그의 모습은 더 이상 아름다운 도리언이 아니다. 사람들의 눈에, 도리언에 의해 찢어진 채 발견된 초상화는 처음 그려진 당시 모습 그대로 아름다웠지만, 타락과 퇴폐에 자신을 내맡긴 채 결국 죽음을 맞이하는 도리언의 모습은 주름투성이에 모든 추악과 혐오의 집약으로 묘사된다. 사람들은 그의 반지를 확인하고 난 뒤에야 그인 줄 알게 된다. 결국 아름답고 화려했던 두 인물, 도리언 그레이와 왕자의 아름다움은 모두 사라지게 된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도리언 그레이의 최후에 더 이상의 반전은 없다. 반면, 작품의 저자 오스카 와일드는 행복한 왕자에게 다른 반전을 허용한다. 도시에서 가장 귀한 것 두 가지를 가져오라는 신의 명령에 납 심장과 죽은 새를 바치는 천사의 등장이 바로 그것이다. 신은 결국 제비와 왕자에게 영원한 생명을 허락한다.

우리는 눈을 통해 많은 것을 본다. 그리고 아름답고, 추한 것을 구분하고 구별한다. 하지만 우리가 아름답다고 판단하는 것이 진정 아름다운 것인지, 추하다고 평가하는 것이 정말 그런지는 눈으로 판별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닐지도 모른다.

도리언 그레이와 행복한 왕자의 결말이 그것을 잘 보여준다. 우리는 아름다움과 추함을 어떻게 제대로 알아볼 수 있는 것일까?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과 '행복한 왕자'를 차근차근 읽어볼 일이다. 진정한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안목을 갖추게끔 우리를 안내하는 오스카 와일드의 목소리가 저 멀리 들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