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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 15일 일요일

교양·진학

교양·진학 인문

겉으로 보이지 않기에…마음의 눈으로 '본질'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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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텍쥐페리 '어린 왕자'
먼 행성 속 꽃 한 송이 덕분에
하늘만 봐도 행복한 어린왕자
보이지 않아도 중요한 건 본질
외적인 조건·시선에서 벗어나
내면의 눈으로 대상 인식해야
 
사진설명
게티이미지뱅크
 
하늘을 나는 직업을 가진 사람의 눈에 보이는 이 세계는 땅 위를 걷는 우리들이 보는 세상과 과연 다를까? 비행기 조종대를 붙잡고 내려다본 지구 곳곳의 다양한 풍광과 시대의 풍경에서 생텍쥐페리는 무엇을 본 걸까? 그의 빛나는 두 눈동자가 향하는 시선은 어느새 황금빛 머리칼을 바람에 나부끼며 꿀의 빛깔을 띤 사막의 모래 위에 서 있는 어린 왕자의 눈길과 하나가 된다. 느닷없이 나타난 어린 왕자는 다짜고짜 요청한다.

"양 한 마리를 그려줘!"

비행기 조종사이자 작가였던 생텍쥐페리가 쓴 '어린 왕자'는 '성경' 다음으로 가장 많은 사람에게 읽히고 지금도 여전히 전 세계 독자의 각별한 사랑을 받는 작품이다. 사하라 사막에 비행기 고장으로 불시착한 조종사인 '내'가 '어린 왕자'를 만나 겪게 되는 이야기로, 작품은 6년 전 이별한 '어린 왕자'를 아프리카 사막에서 독자가 혹시라도 만나게 된다면 그의 '복귀'를 화자인 '나'에게 꼭 알려달라고 신신당부하며 끝맺는다.

몇 발자국 움직이면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고 마는 작은 소행성에서 어린 왕자는 까탈스럽고 변덕스럽기 그지없는 장미꽃을 돌본다.
 
또 다 자라면 별을 파괴할 만큼 커 버리는 바오밥나무의 새싹을 부지런히 뽑고, 두 개의 활화산과 한 개의 꺼진 화산을 청소하는 어린 왕자는 어느 날 철새의 이동을 이용해 자신의 별을 떠나 6개의 소행성을 여행하고 마지막으로 지구에 도착한다.

어린 왕자는 우연히 마주친 '여우'와의 만남을 통해 변화를 겪게 되고, 비행기 조종사인 '나'는 어린 왕자와의 만남을 통해 변화를 겪는다. 이 변화는 '마음으로 보는 것' '내면의 눈으로 대상을 바라보는 것'이고, 또한 '관계 맺음의 진정한 의미를 아는 것'이다.

그렇게 '어린 왕자'는 끊임없이 독자에게 사물과 존재를 제대로 바라보는 방법으로 이미 우리에게 익숙한 판단과 인식의 잣대를 내려놓고 마음의 눈으로 그 진정한 가치의 본질을 볼 것을 다독인다.

결국 그렇게 외적인 조건과 사회의 세태가 이끄는 시선에서 벗어나 존재의 본질을 천천히 바라본다면 두 사람 사이에 맺게 되는 관계는 특별하고 가치를 지닐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여우는 어린 왕자와 헤어지면서 다음의 말들을 건넨다.

"잘 가, 비밀을 말해줄게. 아주 간단한 거야. 마음으로만 볼 수 있다는 건데.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는 잘 보이지 않는다는 거야."
 
"너의 장미를 그토록 소중하게 만든 건, 바로 그 장미를 위해 네가 쓴 그 시간이야."

"사람들은 이 진리를 잊었어. 그러나 넌 이걸 잊으면 안 돼. 네가 길들인 것에 대해 영원히 책임을 져야 하는 거야. 너는 네가 길들인 너의 장미에 책임이 있어."

이제 어린 왕자는 마음으로 상대를 바라보며 그와 맺게 되는 관계의 신비를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비행기 조종사인 '나'에게 그 비밀을 전해준다.
 
"별들이 아름다운 건 보이지 않는 꽃 한 송이 때문이에요."

"눈으로는 보지 못하니까, 꼭 마음으로 찾아야 해요."

"만약에 아저씨가 어느 별에 있는 꽃 한 송이를 사랑한다면 밤하늘을 올려다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일이 될 거예요."

"아저씨가 밤에 하늘을 바라볼 때면, 나는 그 별 중 하나에 살며 웃고 있을 거예요. 그러니까 아저씨에게는 모든 별이 웃는 것처럼 보이겠죠. 아저씨는 웃을 줄 아는 별을 갖게 되는 거예요!"

한편 작품 초반에는 그 유명한 '속이 보이는 보아뱀'과 '속이 보이지 않는 보아뱀' 그림이 등장한다. 비행기 조종사인 '내'가 어릴 적 그렸던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 그림으로, 하나는 그 내부가 투명하게 보이는 반면에 다른 하나는 보이지 않아 얼핏 모자처럼 보인다. 이른바 '보이는 대로 보는' 사람들은 그것을 모자로 여기며 지나친다. 하지만 보아뱀의 내부를 볼 줄 아는 '마음으로 보는' 사람은 작품에 따르면 단 한 사람도 등장하지 않았다. 조종사인 '내'가 느끼는 외로움과 고독함은 바로 여기에서 시작됐을 것이다.

더 이상 그림 따위는 그리지 않는 어른이 된 비행기 조종사의 앞에 '어린 왕자'가 나타나 난데없이 양 한 마리를 그려달라고 요청한다. 신비롭게도 어린 왕자의 이 요청은 순수했던 어린 시절의 조종사가 잃어버린 '시선'을 되찾게 해주는 '잃어버린 자아'와 '잊고 있던 본질'을 회복하게 하는 시작이 된다.

생텍쥐페리는 마치 어린 왕자가 그랬던 것처럼 홀연히 비행 중에 사라졌다. 그리고 오늘, 우리는 그가 남긴 이야기를 따라간다. 여기 빈 상자가 있다. 이 안에 무엇이 보이는가? 어린 왕자가 그토록 마음에 들어하던 그 건강한 어린 양이 나의 눈에도 과연 보이는가? 어쩌면 생텍쥐페리가 우리에게 너무나 던지고 싶었던 질문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