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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15일 수요일

교양·진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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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지닌 모든 존재에 사랑 흘려보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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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노래한 프랑스 시인 폴 엘뤼아르

 

게티이미지뱅크

 

사랑과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는 날들로 분주하다. 어른들은 아이들의 기쁨을 위해, 또 아이들은 어른들을 향한 감사를 전달하기 위해 서로가 기꺼이 시간을 내고 이를 기념한다. 일상을 잠시 멈추고 서로에게 집중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따뜻한 애정으로 과연 눈이 부시는 계절이다. 마치 온 세계가 인류의 다정한 관계를 바라보며 미소 짓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한편 세계가 바라보는 또 다른 종(種)을 떠올려본다. 엄연히 세계를 구성하는 개체이자 인류와 무수한 세월을 함께한 동물들 말이다. 그들은 거칠고 광활한 자연에서, 또 인간의 따뜻한 울타리 안에서, 누군가의 품 안에서, 동물원에서, 또 거리에서, 터전을 잃은 참담한 환경 속에서, 그리고 뉴스 속에서 발견된다.

최근 뉴스 속에 등장하는 동물들의 상황은 우리들의 눈부신 계절과는 무관한 것 같다. 유기되고, 학대받고, 잊히고, 비극적인 죽음이 아무렇지 않게 용납된다. 우리와 그들의 관계는 왜 이렇게 악화됐을까? 동물의 책임일까? 아니면 사람의 탓인 걸까? 우리는 동물의 존재를 올바르게 인식하고 대우하고 있는 걸까? 그들은 생명일까? 아니면 소비의 대상일까?

프랑스의 시인 폴 엘뤼아르(1895~1952)의 시 두 편을 읽으며 사람과 동물의 관계를 다시금 생각해보려 한다.

폴 엘뤼아르(1895~1952)

 

세상이 웃는다,
세상은 행복하고, 만족스럽고 즐겁다.
입술이 열리고, 제 날개를 펼치고는 다시 착륙한다.
젊은 입술들이 다시 착륙한다,
늙은 입술들이 다시 착륙한다.
동물 한 마리도 웃는다,

찡그린 얼굴로부터 기쁨을 펼치면서.
지상의 모든 장소에서
털이 흔들리고, 양털이 춤을 추고
새들은 제 깃털을 떨군다.
동물 한 마리도 웃으며
저 자신으로부터 멀리 달아난다.
세상이 웃는다,
동물 한 마리도 웃는다,
동물 한 마리가 달아난다

'동물이 웃는다'  - 폴 엘뤼아르

 

시인의 노래 속, 세계가 웃자 곧이어 동물 한 마리도 웃는다. 세상은 크고, 동물 한 마리는 너무나 작게 느껴진다. 그들의 웃음은 교차되며 반복된다.

 

사실 세상의 순조로움과 그 개별 구성 개체들의 안정된 상황은 시인이 노래하는 것처럼 무관하지 않다. 오히려 긴밀하게 끊임없이 연결돼 있다. 온 세상이 행복하고 원활한 상태에 머문다는 것은 세상을 이루는 모든 생명, 즉 종과 개체들이 평화롭게 화합하고 연합하며 존재할 때만 가능해진다. 시인은 그 사실을 잘 알고 있고, 그래서 시의 제목을 '세상이 웃는다'가 아닌 '동물이 웃는다'로 소개한다.

그런데 한 가지 궁금증이 생겨난다. 저 한 마리의 동물은 왜 달아나고 있는 걸까?

무언가를 향해 달리는 것일까, 아니면 어떤 것으로부터 도망치는 것일까? 창공과 대양, 언덕과 밀림 속 온갖 새와 물고기를 비롯한 동물들은 그들의 움직임에 따라 출렁이는 털과 비늘을 반짝이며 어디를 향해가고 있는 걸까?

그들의 삶의 터전에서 도약하며 존재의 기쁨을 한껏 표출하는 것일까? 아니면 살 곳을 잃은 채 공포의 대상으로부터 멀리 달아나기 위해 있는 힘껏 달음박질하는 것일까?

그들로 하여금 태초의 장엄한 비상과 질주를 가능하게 하는 것도, 초라하고 비루한 모습으로 쉴 틈 없이 달아나게 만드는 것도 결국 인간의 손에 달린 일이라면, 우리는 자연과 동물을 바라보는 기존의 인식과 방식을 전환해야 할 것이다.

나는 앞을 바라보았지
군중 속에서 너를 보았고
밀밭 사이에서 너를 보았고
나무 아래서 너를 보았지
내 모든 여행의 끝에서

내 모든 고통의 심연에서
물과 불에서 솟아난
모든 웃음의 소용돌이 속에서
여름 겨울 너를 보았지
내 집에서 너를 보았고
내 두 팔 사이에서 너를 보았고
내 꿈속에서 너를 보았지
나 다시는 너와 헤어지지 않으리
'발랄한 노래' - 폴 엘뤼아르

시인의 노래에 등장하는 '너'는 누구든지, 그 어떤 것이라도 그 대상이 될 수 있다. 각별한 애정을 갖고 다시는 이별을 허락하지 않을, 화자의 시선이 닿는 모든 곳에서 떠올릴 수 있는 상대라면 모두 '너'가 될 수 있다. 그리고 나는 이 시에서 어느 대중가요 가사의 일부를 떠올린다.

'유난히 추워진 오늘 밤/검은 개 한 마리 나를 바라보네/도망치듯 사라진 계단 위로/부는 칼바람보다/더 내가 두려웠는지도 몰라/어디서 잠이 든 건지/기다려도 보이지 않는 너/혼자 울고 있지 말고/같이 울자/우리 집으로 오너라/혼자 울고 있지 말고/같이 울자 우리 집에서/나랑 같이 울자 나란히 앉아서/같이 울자/우리 집으로 오너라'

'검은 개' - 루시드폴

6월의 햇살은 겨울밤의 서늘함이 아득하게 느껴지게 할 만큼 강력하다. 이 계절에 사람과 사람 사이의 따뜻한 애정을 생명을 지닌 모든 대상에게로 흘려보내야 한다. 그렇게 할 때, 우리 본연의 모습이 회복되고, 자연이 회복될 것이다. 그때 우리는 세상의 진정한 미소를 보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