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en.mk.co.kr

2024년 05월 15일 수요일

교양·진학

교양·진학 인문

눈과 귀는 두 개씩인데 … 입은 왜 하나뿐일까

121

프랑스 시인 로베르 데스노스


많이 보고 많이 들을지라도
말은 아끼라는 의미 아닐까
함께 햇볕을 쬐고 있더라도
느끼는 감정은 모두가 달라
프랑스 초현실주의파 시인
평범한 일상 속 반짝임 포착
자신만의 언어로 희망 노래

 

무심코 거울을 보다 뜻밖의 발견에 엉뚱한 생각에 잠긴다. 눈도 두 개, 귀도 두 개, 콧구멍도 두 개, 입은 하나. 만약 입이 두 개였다면 어땠을까? 눈도, 귀도, 콧구멍도 한 개였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그러고 보니 대개 두 개로 존재하는 감각기관들은 주로 외부의 자극을 수용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바깥을 보고, 외부의 소리를 감지하고, 주변의 냄새를 알 수 있게 해주는 눈과 귀와 콧구멍은 두 개다. 더 잘 보고, 더 잘 듣고, 더 잘 냄새를 맡을 수 있게 하기 위함일까? 반면 말을 하고 먹고 마실 수 있게 해주는 입은 단 하나다. 말을 아끼고 먹고 마시는 것을 절제할 필요가 있기에 두 개가 아닌 하나로 존재하는 것일까?

상상력을 발휘해본다. 눈과 귀와 콧구멍은 한 개지만, 입은 두 개인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상을. 일단 그 감각기관들을 어디에 위치시켜야 할지 고민이 된다. 그리고 상상의 순간, 미학적인 균형과 조화로움에 균열이 생긴다. 그것보다도 일방적으로 판단하고 자기 할 말만 끊임없이 재생하는 독선과 소음으로 혼란스럽다. 어쩌면 두 개의 눈, 귀, 콧구멍과 한 개의 입은 그 자체로 자신의 사용법을 암시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오늘 우리는 프랑스의 시인 로베르 데스노스(1900~1945)의 눈과 귀가 감지한 햇살과 목소리를 살펴보려 한다. 시인이 본 햇살과 그가 들은 목소리는 우리에게 어떤 울림을 줄까? 똑같이 두 개의 눈과 귀를 가진 우리도 그가 본 햇살과 그가 들은 목소리를 동일한 방식으로 발견할 수 있을까?

로베르 데스노스 (1900~1945)

바뇰레 가의 햇살은

다른 거리들의 햇살이 아니라네.

개울가에서 물놀이를 하고,

양동이로 물길을 내고,



모든 게 다른 거리와 같다네,

다만, 내 두 어깨를 어루만질 때면,

다른 무엇도 아닌 바로 그 햇살이라네,

바뇰레 가의 햇살은

궁전의 성문이 아닌 다른 곳으로

지붕이 열리는 제 차를 몰고 간다네,

햇살, 아름답지도 못생기지도 않은 햇살,

아주 재미있고 몹시 기뻐하는 햇살,

바뇰레 가의 햇살,

겨울과 봄의 햇살,

바뇰레 가의 햇살,



다른 거리의 햇살과 같지 않다네.

-바뇰레 가의 노래



바뇰레 거리의 햇살이 다른 거리의 햇살과 다를 수 있을까? 태양에서 내리쬐는 햇살은 세상 어디에나 동일할 텐데, 시인은 단호히 다르다고 말한다. 특히 햇살이 자신의 두 어깨를 어루만질 때, 그것은 다른 장소와는 확실히 구별되는 바뇰레 거리의 햇살이라고, 즉, 특별하다고 언급한다. 또한 그 햇살은 아주 재미있고 몹시 기뻐하는 햇살이라고 노래한다. 왜일까? 이번에는 그의 귀가 감지한 목소리를 살펴보자.

목소리 하나, 저 멀리서 당도한 목소리 하나

귓가에 더 이상 울리지 않는다,

북소리 같은, 감추어진, 목소리 하나가,

그럼에도, 또렷이, 우리에게 도착한다.

그 목소리 무덤에서 나온 듯해도

그 목소리 오로지 여름과 봄을 이야기할 뿐이다.

그 목소리 기쁨으로 육신을 가득 채워 주고,



그 목소리 입술에 미소의 불을 밝혀 놓는다.

그 목소리 나는 듣는다. 오로지 그것은 저 요란한

삶과 전쟁터를, 부서지는 천둥소리와 속닥거리는 수다를

가로질러 당도한 인간의 목소리이리라.

당신은? 이 목소리가 당신에게 들리지 않나요?

목소리는 말한다 "고통은 짧게 지나갈 겁니다"

목소리는 말한다 "아름다운 시절이 머지않았습니다."

이 목소리가 당신에게 들리지 않나요?

-목소리



시인의 두 귀가 포착한 목소리는 멀리서, 삶과 전쟁터를 가로질러 도착한 감추어진 작은 목소리로 무덤에서 나온 듯한데 예상과 달리 기쁨과 미소를 불러일으킨다. 그 목소리는 분명 전쟁과 같은 어두운 시간을 통과한 게 틀림없는데 '고통은 지날 갈 것이고 아름다운 때가 곧 올 것'이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다.

로베르 데스노스는 초현실주의 시인으로 자동기술법을 통해 최면의 상태에서 다양한 무의식의 언어를 탐구하며 독창적이고도 실험적인 작품들을 남겼다. 시인은 레지스탕스 운동에 참가하다 결국 강제수용소에 수감되어 마흔 넷의 나이로 티푸스에 걸려 사망한다. 언어 유희가 돋보이는 그의 다수의 독창적인 작품들과는 다르게 위의 두 시는 비교적 평이하게 다가오며 시인이 포착한 햇살과 목소리에 서린 밝은 온기로 잔잔한 감동을 선사한다.

거울을 본다. 우리의 얼굴과 시인의 얼굴이 크게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우리도 햇살의 '특별함'과 작은 '목소리'의 비밀을 찾아낼 수 있지 않을까. 두 눈과 두 귀를 활짝 열고 세계를 잠잠히 좇는 모든 이들은 시인의 노래처럼 언젠가 자신만의 언어로, 특별한 노래를 부르게 될 날을 반드시 마주하게 될 것이다.

또한 그 노래는 세상의 가장 먼 곳까지 도달해 누군가의 지친 어깨와 절망한 마음에 따뜻한 햇살과 북돋는 목소리가 될 것이다. 그래서 "고통은 짧게 지나갈 겁니다" "아름다운 시절이 머지않았습니다"라고 말을 건넬 것이다.

 

[윤현정 대일외고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