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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16일 목요일

교양·진학

교양·진학 인문

봄은 짧다 … 오늘을 기뻐하고 노래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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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티나 로세티(1830~1894)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 속 등장인물 플뢰르 드 리스는 자신의 약혼자 페뷔스와 서로를 향한 사랑의 대화를 나누며 '나의 열네 해 봄날은 당신의 것'이라는 수줍은 고백을 남긴다. 19세기 프랑스를 배경으로 어린 연인의 이토록 사랑스러운 고백 속에도 어김없이 봄의 계절은 등장한다. 사랑하는 이에게 자신의 생애 동안 맞이한 모든 봄날을 모아 선사하는 것, 그 이상의 낭만적 고백이 또 있을까. 봄의 시간이 선사하는 따뜻함과 생명의 약동, 여리고 환한 빛깔을 띤 꽃들의 등장이 '봄'이라는 계절의 단어 속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 시간이 우리 곁에 돌아왔다. 옷깃을 여미고 한껏 움츠린 자세가 여유롭게 해제된다. 종종걸음으로 바쁘게 실내를 향하던 동선은 어느덧 실외로 이동한다. 한결 느린 걸음으로 주변을 천천히 돌아본다. 우리 눈의 감각을 즐겁게 깨워주는 풍경들이 속속 등장한다. 이뿐만이 아니라 후각과 청각을 부드럽고 향기롭게 안내하는 공기, 풀, 나무, 새와의 조우가 반갑다.

"생의 몇 번째 맞이하는 봄날인가? 나는 내 생의 그 모든 봄날을 누구에게 선물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그 대상을 떠올리기 머뭇거려진다면 단지 연인과의 사랑으로 한정 짓기에는 사랑 본연이 지닌 의미와 그 대상은 깊고도 넓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각자의 생에 지나온 모든 봄날에 담긴 그 따뜻한 온기로 자신의 내면을 가득 채우고 가까운 이들 혹은 그 온기가 필요한 이들에게 그 다정한 선물을 재차 건네준다면 앞으로 맞이할 우리의 봄은 더욱 화사하고 한결 생기로 가득할 것이다.

그리고 여기, 이 봄의 계절을 노래하는 어느 한 시인이 있다. 크리스티나 로세티(1830~1894). 그녀는 영국 빅토리아 시대에 런던에서 태어났다. 이탈리아에서 영국으로 정치적 망명을 한 시인인 아버지를 두고 이탈리아어와 영어를 사용하는 풍부한 문화 예술적 환경 속에서 자라난 그녀는 '라파엘전파(19세기 중엽 영국에서 일어난 예술 운동으로 이탈리아 르네상스 미술의 정수를 보여준 라파엘 이전으로 돌아갈 것을 주장하며 문학작품과 중세의 낭만적 소재를 회화의 주제로 즐겨 사용한 화가와 문인들의 모임)'의 일원인 오빠들을 비롯한 라파엘전파 작가 및 예술가들과 교류하며 시를 썼다. 1862년 첫 시집 '고블린 도깨비 시장'을 출간하며 큰 호응을 얻은 그녀는 엘리자베스 브라우닝의 뒤를 잇는 여류 시인이라는 찬사를 얻는다. 로세티는 초월적 종교의 세계와 관능적이고 감각적인 현실 세계를 세련된 언어와 아름다운 운율로 표현했다.

내가 만일 봄을 한 번 더 맞는다면,

나는 여름꽃들을 심고 기다리지 않을 거예요:

내 크로커스를 당장 가질 거예요,

잎이 없는 분홍 팥꽃나무꽃과

차가운 혈관을 가진 스노드롭과, 더 고르자면,



하얀색이나 하늘색 제비꽃도,

잎 속에 둥지 튼 앵초꽃도. 늦지 않게 당장

불 수 있는 어떤 꽃이라도.

내가 만일 봄을 한 번 더 맞는다면,

나는 대낮의 새들 노래를 들을 거예요.

자기 집 짓고 짝 찾아 날아다니며 노래하는 새들,

짝 없는 나이팅게일이 밤에 부르는 노래가 아니라;

나는 활기찬 양 떼 소릴 들을 거예요,

눈처럼 흰 새끼 양들을 데리고 있는 어미 양들을,

나는 불어오는 모든 바람과

우박 속에서 음악을 찾아낼 거예요.

만일 내가 봄을 한 번 더 맞는다면 ―



아, 내 모든 과거가 "만일"로 끝나버린

내 과거에 대한 따끔한 말을 할 거예요 ―

내가 만일 봄을 한 번 더 맞는다면,

나는 오늘 실컷 웃을 거예요, 오늘은 짧아요;

나는 아무것도 기다리지 않을 거예요:

지속할 수 없는 오늘을 다 쓸 거예요,

오늘을 기뻐하고 노래할 거예요.

「또 한 번의 봄」


로세티는 만약 봄을 한 번 더 맞이한다면 이전과는 다르게 행동할 자신의 모습에 대해 노래한다. 후일에 필 꽃을 심어 막연히 기다리기보다는 지금 당장 볼 수 있는 꽃들을 가질 것을, 밤에 외롭게 우는 새소리가 아닌 대낮에 지저귀는 새들의 노래와 양 떼들의 활기 넘치는 소리를 들을 것을, 바라기만 하고 실현 시키지 못해 가정법 문장만 맴돌게 한 과거의 행동에 대해 경고할 것을, 미래를 위해 지금 이 순간의 기쁨을 유예하기보다 오늘을 기뻐하고 실컷 웃을 것을 노래하는 것이다.


[···]

봄이 피어날 거예요 지금 얼음 언 곳에서,

장미는 가시덤불을 보기 좋게 할 거고요,

서두르는 태양은 밝게 빛날 것이고요,

바람이 가볍게 불어오고,

하여 내 정원은 온갖 향기로 가득할 거랍니다.

「아멘」


이제 우리의 차례다. 곁에 성큼 다가온 봄을 맞이하며 우리는 지금 당장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지금 당장 필요한 일은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하는 가운데 로세티의 또 다른 노래가 우리의 선택을 향해 환희의 응원을 던진다.

그녀의 응원처럼, 이 시간을 기뻐하고 노래하는 이들에게 저마다의 정원은 온갖 향기로 가득할 것이다. 봄은 그렇게 활짝 피어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