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en.mk.co.kr

2024년 05월 15일 수요일

교양·진학

교양·진학 인문

끝은 또 다른 시작이기에 … 저무는 모든 건 아름답다

사진설명

어느새 11월이다. 11월 7일은 겨울이 시작된다는 입동(立冬)이다. 농사를 짓던 우리의 선조들은 절기를 중요하게 여겼다. 그들은 하늘과 태양과 별의 움직임을 바라보며 24절기를 정했다. 각각의 여섯 절기는 봄, 여름, 가을, 겨울에 해당하는데 입동은 그중 19번째 절기로 겨울에 해당하는 절기 여섯 개 가운데 첫 번째로 등장한다. 입동이 지나면 얼음이 얼기 시작하는 소설(小雪), 큰 눈이 온다는 대설(大雪), 연중 밤이 가장 길다는 동지(冬至), '작은 추위'를 뜻하는 소한(小寒), 겨울 중 큰 추위의 때를 일컫는 대한(大寒)이 이어진다. 이렇게 겨울에 해당하는 여섯 절기가 지나면 추위에 까마득히 잊혔던 봄의 여섯 절기가 다시 온 세상의 공기를 따뜻하게 감싸 안으며 돌아와 대지를 포근히 깨울 것이다.

매일 아침 마주하는 어느 붉은 벽돌로 된 건물은 담쟁이넝쿨로 온통 뒤덮여 있다. 봄에는 넝쿨의 잎들이 연둣빛을 띤 고양이 혓바닥처럼 귀엽고 앙증맞다. 여름에는 짙푸른 너른 잎으로 더위를 온몸으로 맞서 그 어떤 시련에도 절대 지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보는 것만 같다. 가을에는 황홀한 붉은빛의 단풍들로 이루 말할 수 없는 감동을 선사한다. 자신의 마지막 빛깔을 아낌없이 불태우며 사람들의 눈과 마음에 아름다움을 선사하는 나뭇잎의 생애가 한없이 기특하고 대견해서 처연함마저 느껴진다. 절기가 돌아오듯, 지금 바람에 휘날려 떨어지는 낙엽들도 희망을 품어볼 수 있는 걸까? 그 순간 프랑스의 시인 레미 드 구르몽(1858~1915)의 널리 알려진 시, '낙엽'이 떠오른다.

사진설명

레미 드 구르몽은 프랑스의 문학 평론가이자 소설가 및 시인으로 한때 프랑스 국립도서관의 사서로 근무하기도 했다. 특히 프랑스 상징주의의 대표적인 비평가로 활동하며 문학 비평 및 미학 분야에 많은 업적을 남겼다. 수많은 비평가적 업적에도 지금까지 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 그의 이름을 떠올리게 하는 것은 가을의 시, '낙엽'이다.



시 속에 등장하는 이름, '시몬'은 여성의 이름이다. 사랑하는 여인의 이름인, 시몬을 연달아 부르며 낙엽 밟는 소리가 좋은지를 재차 묻는다. 가을날, 낙엽으로 온통 뒤덮인 숲속으로, 사랑하는 여인과 함께 들어가 낙엽의 빛깔과 소리와 모양을 관조하고 그 쓸쓸함을 인생의 저무는 때와 견주어 인간 존재의 본질적 유한성과 덧없음을 떠올리며 그 정서를 노래한다. 시인은 '우리도 언젠가는 땅에 떨어져 밟히는 낙엽처럼, 죽음을 환기하는 밤의 시간이 바람처럼 다가올 때 낙엽과 같이 흩어져 버릴 것'이라고 말한다.

그렇다. 우리 모두 언젠가는 낙엽처럼 인생의 마지막 시기를 통과하고 사라질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존재의 유한함과 인생의 무상함을 넘어서 초록의 봄, 연두색 나뭇잎으로 다시 순환하는 삶과 죽음, 죽음과 삶의 속성을 기억하며 현재의 시간을 풍요롭게 살아가는 선택을 할 수가 있다. 낙엽 밟는 소리를 들으며, 생의 유한함을 인식하고, 그렇기에 더욱더 뜨겁게 낙엽을 밟는 이 순간을, 그 소리가 귀에 들려오는 이 시간을 사랑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의 선조들은 농사를 지으며 하늘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계절과 때를 알아, 농사를 비롯한 이 땅에서 해야 할 일을 해나갔다. 그들은 계절의 변화와 식물과 동물의 생의 주기를 이해하며 자신들의 삶과 죽음을 바라봤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 중 일부는 시인이 돼 노래를 불렀을 것이다. 겨울이 오면 끝이 아닌 봄이 온다고, 낙엽이 지면 이듬해 싹이 돋아날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