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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16일 목요일

교양·진학

교양·진학 인문

소박한 것은 언제나 위대하다

바야흐로 속도의 시대다. 최고의 효율을 추구하고 권장하는 사회 속에서 그것은 마치 우리 시대 최고의 가치로 여겨지는 듯한 착각이 들기도 한다. 학생들은 깊이 사유하고 생각을 정리하며 타인들과의 교류 속에 의견을 나누기보다 정해진 시간 내 가장 빠르게 정답을 골라내는 일에 열중하고, 어른들은 정해진 기한에 맞춰 가장 신속하게 최대의 효율을 보여주는 성과에 몰두한다. 그래서 현대인은 언제나 바쁘다. 이런 가운데 시를 읽고 감상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를 지닐까? 그것은 과연 쓸모 있는 일일까?

2018년도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올가 토카르추크는 그림책 '잃어버린 영혼'에서 영혼을 잃어버린 어느 한 남자의 이야기를 통해 21세기를 살아가는 동시대인인 우리에게 우리의 영혼이 우리 안에 있는지, 우리와 함께하는지를 묻는다. 그녀는 책 속에서 "누군가 위에서 우리를 내려다본다면, 세상은 땀 흘리고 지치고 바쁘게 뛰어다니는 사람들로, 그리고 그들을 놓친 영혼들로 가득 차 보일 거예요. 영혼은 주인의 속도를 따라갈 수 없으니까요"라고 말한다.

20세기의 프랑스 작가 생텍쥐페리는 그의 작품 '어린 왕자'에서 한 알을 삼키면 매주 53분을 절약하게 해주는, 일주일간의 갈증을 달래주는 어느 알약을 소개하는 상인에게 어린 왕자의 목소리를 빌려 이렇게 질문한다. "53분을 아껴서 무엇을 할 건데요?"

 

아무거나 하고 싶은 걸 하면 된다는 상인의 대답에 이어지는 어린 왕자의 독백은 다음과 같다. "만일 나에게 53분이 주어진다면 나는 샘을 향해 천천히 걸어갈 텐데."

자신을 잃어버린 사실조차 모른 채, 자신의 영혼을 어디에 두고 온지도 모른 채 그토록 분주한 현대인들의 모습을 바라보자니 조용히 우리 자신, 그리고 우리가 하는 일의 본질을 응시하게 하는 19세기의 프랑스 시인 프랑시스 잠(1868~1938)의 시가 고요히 마음속에 떠오른다.

그는 한국의 시인 윤동주와 백석이 사랑한 시인이기도 하다. 프랑스 피레네산맥 근처 작은 마을 투르네에서 출생해 일생의 대부분을 꾸밈없는 자연 속에서 보낸 그는 아름다운 풍광과 동식물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며 겸손히 인간의 삶을 노래하는 시들을 남겼다. 깊은 가톨릭 신앙을 바탕으로 주변의 모든 생명을 신의 은총의 대상으로 바라보며 따뜻한 연민 어린 눈길로 인간의 슬픔과 고통을 가만히 어루만지고 기쁨과 사랑을 온유하게 노래하는 시들을 썼다.

시인은 이 시에서 인간의 위대한 일들에 대해 말한다. 그런데 왜 이토록 소박하고 일상적인 일들을 시인은 위대하다고 하는 것일까? '식당'이라는 제목의 또 다른 시에서 시인은 자신의 집 안 가족과 친구들이 함께 식사하는 공간인 '식당'에서 오래돼 빛이 바래 가는 '장롱'과 고장 난 '뻐꾹시계', 그리고 온갖 음식과 양초 냄새가 깊이 배어버린 '찬장'에 대해 '조그만 영혼들'이라 언급하며 사물에 영혼을 부여한다. 그 '장롱'은 시인의 아버지와 친척들의 목소리와 추억들을 간직하고 있고, 그 '뻐꾹시계'는 가족과 함께 긴 시간을 공유하며 그 부속품이 닳아 고장 난 것이다. 시인의 눈은 이렇게 인간이 생명과 삶을 소중히 가꾸고 이어 가기 위한 본질적인 목적으로 행하는 모든 일을 '위대하게', 소중한 이들과의 추억이 담긴 사물을 그들의 영혼을 기억하는 '영혼'으로 바라본다. 그렇다면 현대인의 눈은 어떠한 인간의 일을 '위대하게' 평가하고, 사물과 인간의 관계를 '무엇을 매개로' 바라보고 있을까? 우리는 바쁘다. 시를 읽고 감상하기에는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 그런데 속도의 시대에 무언가 본질을 놓친 것 같은 의심이 자꾸 든다면, 시인의 노래를 조용히 읊어보는 건 어떨까? 어쩌면 우리가 잃어버린 것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