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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15일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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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대회가 올림픽인가 … 작품 순위가 불편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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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한 가구에 두 명의 학생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 최선을 다해 그림을 그려 같은 미술대회에 출품했다. 설렘과 떨림을 안고 결과가 나왔다. 언니는 최우수를 받았고 동생은 장려상을 받았다. 주변인들로부터 축하도 많이 받았다. 하지만 둘 다 상을 받았음에도 장려상을 받은 동생에게 위로의 말을 준비해야 한다. 미술 교육 현장에서는 이런 상황이 비일비재하다. 너는 무슨 상 탔어? 내 그림이 이긴 거네? 서로 등수를 매기며 비교하기 바쁘다. 마치 기록으로 순위를 매기는 스포츠 시합처럼 말이다.

필자는 줄곧 학생들에게 말하곤 한다. '미술대회 수상을 기뻐하되 의기양양할 필요 없고 수상을 하지 못했더라도 주눅 들지 말라'고 말이다. 모두가 최선을 다했지만, 상을 받지 못했거나 낮은 상장을 받게 된다면 상대적 박탈감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금상, 은상…입선 등 뭔가 등급을 매기는 듯한 상의 이름과 선정 기준에서 불편함을 느낄 때가 있다.

하나의 그림을 떠올려 보자. 색상은 죄다 어두운 계통이며 왠지 모르게 화면에 드러나는 형상들이 왜곡되어 있다. 구도 역시 불안정해 보인다. 그림을 들여다봤을 때 좋은 느낌보다는 불편하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하지만 작품을 표현한 학생의 스토리를 들어본다면 생각이 달라진다. 평소 시력이 좋지 못한 학생이 학교에서 안경을 잃어버린 일이 발생했다. 온종일 어지럽고 위태로운 일상을 경험했다. 이는 마치 암흑 속에서 사는 모습 같았다. 실제 당시 경험을 반영해 그린 작품이었다. 자신의 시선으로 풀어낸 독창적인 표현이 담겼다. 작품을 본 사람들, 특히 유사한 경험이 있는 학생들은 적극적으로 공감을 표했다. 예술은 단지 손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예술가가 경험한 감정의 전달이라는 톨스토이의 말을 빌리자면 분명 좋은 작품이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미술대회에 낙선하고 말았다. 다른 대회에 그림을 제출한다고 하더라도 수상의 가능성이 매우 낮을 것이다. 왜 그럴까?

미술대회 역대 수상 작품들이 실려 있는 도록을 살펴본다면 바로 알 수 있다. 온통 푸른색과 녹색 등 맑은 느낌의 작품이 대부분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분명 어두운 색상보다는 밝은 색상의 범위를 폭넓게 사용하는 것을 지향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미술대회의 특성을 알게 된다면 이해할 수 있다. 대회의 심사는 많은 시간을 들여 개개인의 주관성을 들여다보기 어렵다. 다수의 그림을 비교 평가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한 판단 기준과 잣대가 있기 마련이다. 대체로 다채로운 색상 활용, 주요 이야기의 구도, 작품의 완성도, 인물 표현, 발달 단계에 맞는 표현력 등을 잘 구현했을 때 높은 평가를 받게 된다. 그래서 대회를 준비하는 대부분 교육기관에서는 평가 기준에 잘 들어맞는 그림을 유도하게 된다. 기준과 잣대에 맞추는 것은 답을 요구하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최소 5가지 이상의 색을 사용하게 하거나 잘 보이는 구도, 딱 떨어지는 마무리 등을 요구한다. 기왕 대회에 작품을 내는 것이니 성과에 대해서도 생각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미술대회에 참가하는 작품들은 선생님의 영향이 많이 미치게 되어 있다. 교사의 손이 많이 들어간 작품을 전문가들은 바로 구별할 수 있다. 하지만 간접적으로 개입했는지 온전히 아이가 주도해서 했는지 도통 알기 어렵다. 누군가의 개입이 있었다면 대회 수상은 온전한 나의 것이 되기 어렵고 성취감이나 자신감으로 이어지기도 어렵다. 결국, 미술대회는 학생의 생각과 표현을 침해하는, 아이 중심적이지 못한 이벤트가 된다.

그렇다면 대회의 장점을 유지하면서 개선하는 방법은 없을까? 가능성이 크지 않지만 몇 가지의 대안을 생각해 봤다. 먼저 출품 작품의 수를 제한하는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심사위원이 개개인의 이야기와 특성을 좀 더 들여다볼 수 있게 된다. 또 하나는 우열을 가늠할 수 없도록 상장 이름을 바꿔보는 것이다. 예를 든다면 우주 쓰레기를 처리하는 장치를 개발해 쓰레기에 대한 고민을 해결한 작품은 '창의적 문제 해결상', 북극 환경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개선책을 생각한 아이는 '환경 개선상', 호랑이로부터 도망치려는 초식동물들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내는 이야기꾼은 '스토리텔링상' 등 아이들의 다양성과 특성을 인정하고 참여한 모든 아이에게 상장을 부여하는 것이다.

학생들이 학습하는 과목 대부분은 답을 찾는 여정이다. 그것도 12년간의 대장정이다. "정답이 있는 교육을 받으니, 창의력이 없어진다." 교육학자 켄 로빈슨(Ken Robinson) 교수의 말처럼 답이 요구된다면 아이는 결코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없게 된다. 하지만 미술은 하나의 정답만 있는 것이 아니다. 푸른색과 녹색도 좋지만, 창작자의 의도가 분명하다면 시커먼 색도 좋을 수 있다. 즉 다양성을 인정해야 한다. 절대적 평가가 아닌 아이의 내재한 창의성을 발현할 수 있도록 개개인의 역량과 이야기를 이해하고 존중해야 한다. 기성세대가 경험하지 못한 환경이지만, 이 시대의 학생들은 달라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