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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16일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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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카소는 왜 모든 어린이를 예술가라고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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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1937년작 '게르니카'

 

"이야~! 피카소 뺨치는데?"

초등학교 시절 그림일기를 살펴보시던 아버지께서 종종 말씀하셨다. 아쉽게도 일기에서 표현된 그림이 화가처럼 잘 그려냈다는 뜻은 아니었다. 색종이를 구겨 놓은 것처럼 눈·코·입 위치가 제멋대로 붙어 있는 모습이 피카소의 입체파 그림과 사뭇 닮았기 때문이었다.

피카소라는 이름은 미술에 대해 특별히 관심이 없으신 아버지도 거론할 정도로 대중에게 친숙한 화가이다. 그는 큐비즘을 대표하는 미술가이며 회화, 조각, 도예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한 20세기 현대미술 최고의 거장으로 인정받고 있다. 피카소의 주관적인 해석의 펼쳐진 독특한 화풍은 당시 충격적이었지만, 현재까지 피카소를 창조 미술의 대명사로 불리는 것에 충분한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초기 피카소의 그림은 달랐다. 미술 영재에 대한 정확한 기준에는 애매모호함이 있지만, 피카소만큼은 미술 영재에 부합하는 인물이라 생각된다. 1896년 작품인 '첫 영성체'에서 보여주듯 15세에 이미 고전주의 화풍의 정점에 다다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이후로 피카소의 그림을 보면 전통적인 화풍에 얽매이지 않고 새롭고 다양한 영역으로 확장해 나갔다.

"라파엘로처럼 그리기 위해 4년이나 걸렸지만, 어린아이처럼 그리기 위해서는 평생을 바쳐야 했다."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영화처럼 피카소의 그림은 노년으로 갈수록 어린아이의 그것과 닮았다. 왜 피카소는 그토록 어린아이처럼 그리기를 원했을까? 그 이유는 피카소는 순수한 어린아이들 동경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아이들의 자유로운 창조성의 원동력은 무한한 호기심이다. 평범해 보이는 일상에서도 아이는 다양한 사물과 현상에 호기심을 갖고 있다. 자유롭고 순수한 시선을 통해 자신만의 해석과 새로운 의미를 부여해 나간다. 그리고 아직 확고한 의식이나 관념이 형성되지 않아 제약이 없다. 이는 예술가가 갖춰야 할 중요한 자질인 것과 동시에 기성 예술가와 차별화할 수 있는 요소이기도 하다. 그는 아이들의 독특한 창조성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고 자신만의 언어를 만들어 내고자 했다.

사진설명
파블로 피카소


"모든 어린이는 예술가이다. 문제는 이들이 커서도 예술가로 남을 수 있게 하느냐이다."

아이는 성장 과정에서 다양한 학습을 통해 지식을 채워나간다. 동시에 사회라는 시스템에 길들여진다. 이곳저곳 틀 밖으로 나가는 행위에 대해 제지를 받으면서 무한했던 호기심과 상상력은 점차 흐려진다. 성인이 된 이후에도 그룹 공간에서 확연하게 다른 생각을 주장한다면 너무 튈 수도 있다는 생각에 부담도 작지 않다. 그러므로 피카소가 말하는 '예술가로 남을 수 있게 하느냐'는 일부가 아닌 오늘을 살아가는 모든 이에게 의미가 있다.

더 이상 예술가가 아닌 성인은 잃어버린 것을 되찾고자 매일 똑같이 사용하던 생활방식을 다른 식으로 바꿔보기도 한다. 그리고 주변에서 발생하는 문제점들에 대해 다양한 시각으로 해결책을 찾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하고 있다. 하지만 새로움을 느끼는 기회가 많았던 어린 시기부터 환경이 이어져 왔었다면 훨씬 크고 자유로운 세계가 펼쳐질 수 있었을 것이다.


결국 피카소의 예술가 정신은 오늘날 화두로 떠오르는 창의성·혁신과 닮아 있다. 세상은 창의적 인재를 필요로 한다. 그리고 창의적 인재 육성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누구 하나 당당하게 나서서 "나는 그러한 자격을 갖췄습니다"라고 말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경험이 충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성장하는 과정에서 사회 시스템을 통해 생기게 되는 의식과 관념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아이들의 호기심과 자유로운 발상을 포용력을 가지고 허용해 줄 수 있는 환경이 열려 있다면 예술성을 이어갈 수 있게 된다. 더 나아가 절대적인 평가가 아닌 다양성과 개개인의 이야기를 존중해 줄 수 있는 사회적인 문화가 이뤄져야 한다. 그렇게 된다면 어린이들은 성인이 된 이후에도 창의적인 인재, 즉 예술가로 남을 수 있다. 우리는 피카소가 천진난만한 아이들을 동경한 것처럼 반짝이는 눈으로 엉뚱한 발상을 하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창의성의 가치를 기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