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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6월 24일 월요일

교양·진학

교양·진학 인문

그의 렌즈에선 낡은 물건들이 보석처럼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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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기록한 사진가 구본창
어린시절 물건 수집 취미
"희미한 것이 시선 붙들어"
비누·도자기·탈·꼭두 등
작은 물건들 향한 애틋함
사진으로 오래도록 간직

사진설명작가 구본창이 수집한 잡동사니를 소격동 국제갤러리 신관에서 선보였다. 매경DB

 

내 눈에 아름다워 보이는 걸 모으기 좋아하는 나는 내가 가진 어떤 물건을 소개할 때 두 가지 주제로 이야기한다. 첫 번째 주제는 물건 그 자체의 특성이다. 몇 년도에 만들었다거나 누가 디자인을 했고, 무슨 소재로 만들어졌는가 하는 내용이다. 두 번째 주제는 이 물건에 얽혀 있는 개인적인 사연이다. 이 물건이 어쩌다 나에게 들어왔고, 나는 이 물건에서 어떤 아름다움을 느끼는지를 말한다.

소설가 은희경의 에세이 '또 못 버린 물건들'에는 술잔, 감자 칼, 구둣주걱, 우산과 달력, 목걸이 등 그의 일상이 담긴 물건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그는 비싸거나 희귀하다고 해서 특별한 물건이 아니고 그것이 나의 부족했던 모습, 변하고 성장하며 통과한 추억을 담고 있기에 특별하며 이 물건들과 작별하는 데엔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쓸모는 없지만, 어쩌겠나. 나는 그런 물건들의 모양과 텍스처와 만듦새를 보고 있을 때에 느껴지는 일상적이지 않은 기분이 좋은걸. 무용한 것의 존재 증명이, 누구인지 모를 내 안의 다른 나를 발견하고 살아나게 하는데 말이다. (…) 물건들을 버릴 수 없게 만드는 데에는 거기 깃든 나의 시간도 한몫을 차지한다. 물건에는 그것을 살 때의 나, 그것을 쓸 때의 나, 그리고 그때 곁에 있었던 사람들의 기억이 담겨 있으며 나는 그 시간을 존중하고 싶은 것이다." -'또 못 버린 물건들' 중에서

물건에 깃든 '나의 시간'이 물건들을 버릴 수 없게 만든다는 구절을 읽다가 한 사람이 떠올랐다. 섬유업을 하던 아버지가 출장길에 사온 '1964년 도쿄 올림픽 카탈로그'를 아직도 가지고 있는 사람. 수많은 여행 중 호텔을 떠날 때마다 자신의 손에 닳아서 작아진 비누를 차마 버리지 못하고 하나둘 집으로 가져오는 사람. 사진작가 구본창이다.

어린 시절부터 말수도 적고 내향적이던 그는 밖에서 놀기보다 누나들이 바느질하는 걸 구경하는 걸 더 재미있어 했다. 그에게는 남들이 주목하지 않는 흔한 물건 가운데 자신만 혼자 아름답다고 여기는 것들을 모으는 취미가 있었다. 부모님께 서랍 속이 왜 쓸데없는 물건들로 꽉 차 있느냐고 핀잔도 많이 받았지만 버리지 않았다. 적산가옥에 살던 시절 정원 한쪽을 파면 일본인이 묻고 간 것들이 나왔는데 조가비를 실로 꿴 팔찌도 있었고, 백자도 나왔다. 모두 다 간직할 수는 없었다. 지금은 사라진 이런 것들이 아직도 그의 눈앞에 아른거린다. 그는 아마도 이런 애틋한 기억들을 기록하려다 보니 사진가가 된 것 같다고 말한다.

 

사진설명

사진작가 구본창. 매경DB

 

남들이 주목하지 않는 아름다움을 수집하는 남다른 아이였지만 그가 처음부터 사진작가의 길을 걸었던 건 아니다. 대학교 전공을 결정해야 하던 시기에 그는 예술가가 되어서는 먹고살기 어렵다는 부모님의 뜻에 따라 연세대 경영학과에 입학한다. 1975년 대학 졸업 후 대우실업에 들어갔지만, 곧 해외 주재원으로 나갈 수 있는 작은 회사로 옮겼다. 독일 주재원으로 나간 그는 회사 업무를 마치고 야간에 다닐 수 있는 디자인 학교에 들어가 일과 학습을 병행한다. 인생에서 두 번 다시 미술 공부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오지 않을 것 같다고 예감한 그는 회사를 그만두고 함부르크 조형미술대학에 입학한다. 이곳에서 남들이 하찮게 여기는 것을 눈여겨보는 태도가 자신의 장점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독일의 교수들은 그의 이러한 성향을 오히려 존중하고 칭찬해주었다.

교수들의 칭찬과 관심을 받으면서도 그에게는 갈증이 있었다. 자신의 사진에 무언가 비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무지 해답을 찾지 못하던 그때, 책방에서 우연히 안드레 겔프케의 사진집을 들춰보았다. 이 사람이라면 실마리를 제시해 줄 것 같다는 생각으로 전화번호부에서 안드레 겔프케 번호를 찾아내 무작정 전화를 걸어 자신의 작품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구본창의 작품을 본 겔프케는 "너는 한국 학생인데, 네 냄새가 안 난다. 그냥 유럽 작가가 찍은 사진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1985년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내게 사진 행위는 나 자신의 고유성을 찾는 내면의 탐구 여행"이라고 말하며 서울의 길거리를 찍은 스냅샷들의 연작 '긴 오후의 미행', 귀국 직후 경제적·심리적 불안으로 절망했던 작가의 우울한 내면을 보여주는 '열두 번의 한숨', 신체를 찍은 여러 장의 인화지를 실과 바늘을 이용해 이어붙여 만든 '태초에' 시리즈 등을 선보인다.

이후 탈과 꼭두 등을 찍으며 한국의 고유한 아름다움에 대한 관심을 키우던 구본창은 조선 백자 시리즈를 찍기 시작한다. 해외 벼룩시장에서 군인들의 견장을 담던 상자를 사모아 안을 비워내고 찍었을 때 그때 표현하고자 했던 비어 있음의 아름다움을 돌고 돌아 조선의 백자에서 찾은 것이다. 오사카 동양 도자 미술관, 교토 고려미술관, 파리 구립 기메 동양미술관, 런던 대영박물관, 국립중앙박물관 등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는 조선의 달항아리와 다양한 형태의 백자들을 카메라에 담았다.

구본창의 많은 전시 가운데서도 특히 소멸해가는 비누를 모아 연 전시는 참 그다운 전시였다. "사라져가거나 점점 희미해지는 것들은 언제나 내 시선을 붙들었다"는 구본창. 같은 물건이어도 누군가는 쓰레기통에 넣고, 누군가는 액자에 담는다. 설레지 않으면 버리는 미니멀리스트로서의 생활 양식도 존중하지만, 나 같은 맥시멀리스트에게는 '일상의 보석'들을 발견해 그 가치를 보여주거나 영감의 재료로 삼는 구본창의 생활 양식이 어쩐지 더 마음에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