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en.mk.co.kr

2024년 07월 20일 토요일

교양·진학

교양·진학 인문

˝살아있는 동안엔 모두가 청춘˝ 그에게 실패는 주춧돌이었다

124

'일본이 낳은 건축 거장' 안도 다다오
고졸에 프로복서 출신이었지만
'거장' 르코르뷔지에로부터 영감
도전정신 하나로 건축 독학
노출 콘크리트 스타일 개척하며
'건축계 노벨상' 프리츠커상 수상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빛의 교회'. 위키피디아

얼마 전 강원 원주의 산속에 감춰진 듯 자리한 '뮤지엄 산'에 갔다가 한참 잊고 있던 새뮤얼 울먼의 시 한 편을 발견했다. 이곳에서는 개관 10주년을 맞아 뮤지엄을 설계한 일본의 건축가 안도 다다오의 '청춘'이라는 전시가 진행되고 있었다. 전시장 한쪽에는 푸른 사과 오브제와 함께 울먼의 시 '청춘'이 기록돼 있었다.

"청춘이란 인생의 어떤 한 시기가 아니라 마음가짐을 뜻하나니."

군 시절 나는 '수양록' 한쪽에 이 시의 한 구절을 적어두었다. 나이로 치면 청춘의 초입에 있던 시절이었는데 그때 나는 무슨 생각으로 이 구절을 적어두었던 걸까? 잠시 그 시절을 떠올리다가 다시 안도 다다오의 전시에 집중했다.

안도 다다오는 푸른 사과를 통해 '아직 미숙하고 신맛도 나지만 내일의 희망이 가득한 푸른 사과의 정신'을 보여주고자 했다고 전한다. 1941년생으로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거장일 뿐만 아니라 노출 콘크리트 건축 등으로 일반인에게도 잘 알려진 건축계의 스타 안도 다다오. 익어도 한참은 전에 익었을 것 같은, 이미 완성된 삶을 살고 있을 것만 같은 이 팔순의 건축 거장은 왜 붉은 사과가 아니라 푸른 사과로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드러냈을까? 연전연패의 도전자 안도 다다오의 삶을 쫓아가 보자.

안도 다다오는 1941년 9월 오사카의 무역상 집안에서 쌍둥이로 태어났다. 외조부모 슬하로 들어가 쪽방이 즐비한 변두리에 살면서 인근 목공소나 철공소 장인을 보며 자랐다. 14세가 되던 해 거주하던 단층집을 이층집으로 바꾸기 위해 동네 목수에게 의뢰를 했는데 그때 만난 목수가 점심도 안 먹고 어떻게 하면 집을 더 잘 바꿀 수 있을지를 즐겁게 궁리하는 모습은 안도 다다오의 인상에 크게 남았다. 중학교를 졸업하면 목수 견습을 받을 생각이었지만 '고등학교는 나오라'는 할머니의 요청으로 공업고등학교에 진학했다. 고교 시절 그는 쌍둥이 동생의 영향으로 프로복서로 활동하며 파이트 머니를 벌었다. 경기에 출전하기 위해 태국까지 배를 타고 원정을 가기도 할 정도로 활발히 활동했지만 1년 반 정도 만에 프로복서의 길을 포기했다. 훗날 세계 챔피언이 된 파이팅 하라다와 훈련을 해보고는 타고난 체력이 처음부터 다르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는 고교 졸업 후 50㎡(약 15평)짜리 술집 인테리어를 맡으면서 일을 시작했다. 건축 공부는 책과 여행으로 대신했다. 헌책방에서 '르코르뷔지에 작품집'을 구입한 그는 그것을 베껴 그리며 건축 도면을 외우다시피 했다. 1965년 단게 겐조가 설계한 국립 요요기 경기장을 보고 크게 감동한 그는 건축은 설계와 시공 이후 운영을 통해 계속 성장해 나간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후 안도 다다오는 모았던 돈을 다 털어 해외로 떠난다.

요코하마에서 러시아로 그리고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모스크바에서 핀란드로 가 유럽을 돌면서 르코르뷔지에가 설계한 공동주택과 미켈란젤로 건축, 피카소의 그림을 현지에서 보았다. 마다가스카르에서 인도양을 건너 뭄바이로 가 밤하늘 가득한 별을 보고 오기도 했다. 인간이 남긴 다양한 역사와 자연의 신비를 눈으로 확인한 그가 7개월의 여행을 마치고 고베항에 도착했을 때 주머니에는 500엔 정도밖에 남지 않았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새로운 영감이 가득한 상태였다.

안도 다다오는 이 영감을 바탕으로 1969년 건축사무실을 차리고 본격적인 건축 인생을 시작한다. 알아주는 학력도, 내세울 만한 이력도 없는 그에게 일거리를 주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는 건축설계공모에 응모하기 시작했다. 일본에서 있었던 공모전에서 1등을 차지한 이후 온갖 국제공모전에 작품을 출품한다. 록펠러 센터, 시카고 트리뷴, 루브르 미술관, 퐁피두 센터,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 홍콩 상하이 은행. 결과는 '연전연패'. 그때의 낙선과 실패의 기록은 도쿄대 학생을 대상으로 한 '건축론' 강의록을 묶은 책 '연전연패'에 잘 드러난다. 그는 당시 수상자들의 설계를 통해 그 작품들에서 자신이 무엇을 새롭게 배웠는지를 설명한다.



실패에서 배움을 구하는 이러한 태도는 안도 다다오가 '연전연패'를 역설적이게도 '연전연승'의 발판으로 삼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는 공모전 연전연패 이후 기능적으로 불편한 공간을 통해 사람과 자연이 조우할 수 있도록 만든 '스미요시 주택', 벽을 십자가 형상으로 뚫은 '빛의 교회', 나오시마섬을 예술의 섬으로 재생시키는 프로젝트인 '나오시마 프로젝트' 등 건축사에 남을 만한 무수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건축계 거장으로 올라선다.

이후 그는 미국 철강왕 카네기를 롤모델로 삼아 자신이 건축으로 벌어들인 돈의 일부를 사회에 환원하기로 결정한다. 카네기가 미국 전역에 도서관 1000여 개를 지었듯 자신도 도서관을 짓고자 한 것이다. 그는 아이들이 훌륭한 어른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창조력과 자극이 필요하다며 일본 곳곳에 어린이 도서관을 지금도 짓고 있다.

몇 해 전 안도 다다오는 암 때문에 담관, 담낭, 십이지장, 췌장, 비장 등 5개 장기 절제술을 받았다. 인생을 놓고 봤을 때 또 한 번의 절망적인 순간이었지만 그답게 이걸 딛고 일어선다. 그리고 이번 '청춘' 전시를 통해 "장기를 절제해도, 또 나처럼 학력이 없어도 청춘을 유지하며 살아간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고 전한다.

평생 도전정신으로 살아온 안도 다다오 특유의 화법이 섞인 인터뷰를 읽다 보니 군 시절 수양록에 '청춘'이란 시의 한 구절을 옮겨 적던 나의 모습이 문득 떠올랐다. 그때의 나는 미래의 나를 두고 일종의 다짐 같은 걸 했던 것 같다. '부딪혀보자. 지금도. 나이가 들어도.' 평생을 청춘으로 살아가는 안도 다다오의 삶을 돌아보며 흐릿해가던 나의 도전정신을 다시금 흔들어 일깨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