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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7월 20일 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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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슬픔은 무슨색 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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色으로 감정을 그린 화가 '마크 로스코'

전통적 미술로는 감정 못담아

단순한 색덩어리로 그림 그려

앙리 마티스 '레드 스튜디오'

영향받아 색채에 더욱 몰두

"내 작품은 45㎝ 떨어져 보시오"

화가 시선에서 감상하길 권장

1955년 '붉은색 띠', 워싱턴 내셔널 갤러리 소장. 【매경DB】

 

"슬프다. 내가 사랑했던 모든 자리마다 모두 폐허다."

황지우 시인의 시 '뼈아픈 후회'를 처음 읽었을 때 나는 시의 첫 구절인 "슬프다"는 말에 숨이 턱 막혀버렸다. 어린아이도 쓸 수 있을 것 같은 단순한 말인데 이 말에 압도당해 다음 행으로 눈을 옮겨가지 못했다.

2015년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린 마크 로스코 전을 찾았을 때 큰 캔버스에 몇 가지 색이 형태 없이 칠해진 그림 앞에서 마음속으로 그 말을 내뱉었다. '슬프다' 그리고 그 그림들을 오래도록 쳐다보지 못했다. 왜 그랬을까.

로스코의 그림은 독특하다. 작품 속에서 구체적인 이미지를 발견하기 어렵다. 보통은 추상화를 그리더라도 무엇을 소재로 그린 것인지 정도는 알 만한데 무엇을 그린 것인지 알 길이 없다. 그저 선과 색의 경계가 모호한 덩어리 몇 개만 자리하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도 묘하게 울림을 가져다준다.

오늘은 거대한 화폭에 칠한 단순한 색덩어리만으로 우리에게 울림을 가져다주는 로스코의 작품 세계와 그의 그림이 우리에게 울림을 주는 이유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그리는 건 감정을 표현하는 일

로스코는 1903년 러시아의 유대인 부모 밑에서 태어났다. 당시 유럽 사회에서는 유대인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이 팽배해 있었다. 1913년 로스코는 그의 부모를 따라 미국 포틀랜드로 건너간다. 이민간 지 1년이 채 되기 전에 로스코의 아버지는 세상을 떠난다. 로스코는 학창 시절 노동자 인권과 여성 주권을 위해 사회 참여 활동을 펼친다. 1921년에는 예일대에 장학생으로 입학해 법학과 심리학 등을 배우지만 재학 중 장학금이 취소되는 사건을 계기로 대학 내 엘리트주의와 인종차별적인 학생들 태도에 반감을 느끼고 중퇴한다. 이후 뉴욕의 아트 스튜던트 리그(ASL)로 진학해 해부학과 연극을 공부하며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그림을 그리면서 로스코는 여러 화가 집단을 찾아간다. 그러던 중 같은 러시아 출신 화가이자 앙리 마티스에게 배우기도 했던 막스 웨버를 만나 표현주의와 초현실주의를 포함한 유럽 모더니즘의 화풍을 배운다. 웨버는 예술에서의 정신적·정서적 차원을 강조했다. 로스코는 그에게서 '작품을 만드는 일은 곧 감정을 표현하는 일'이라는 깨달음을 얻는다.



유럽 모더니즘의 다양한 화풍을 접하며 로스코는 자신만의 화풍을 고민한다. 그러면서 모호하고 거칠게 붓터치한 어두운 느낌의 작품들을 선보인다. 이 시기까지 로스코의 작품들은 정물, 초상화 등으로 그 형태를 충분히 알아볼 수 있었다. 1940년대에 접어들면서 로스코의 그림은 사회 속에서 사람들이 느끼는 차가운 감정을 담는다. 이 시기 그의 그림은 도시민, 사회의 문제 등을 초현실적으로 그려내는 화풍으로 발전한다.

화단에서 자리를 잡아가던 로스코는 전통적인 미술 양식으로 자신이 담고자 하는 감정을 표현해내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그에게는 새로운 언어가 필요했다. 그는 그 언어를 찾기 위해 '고대 신화'를 탐구한다. 특히 니체의 '비극의 탄생'에 심취했다. 니체는 이 책에서 고대 그리스의 비극들은 보는 이들을 죽음의 공포에서 구원했다고 주장했다. 비극이 가진 숭고함이 보는 이들의 감정의 골을 해소해준다는 것이었다. 로스코는 사람들이 예술을 통해 정신적 공허함을 해소한다는 대목에 동의했다.

 

마크 로스코 (1903~1970)

 

앙리 마티스와 운명적인 만남

1949년 그의 작품 세계를 정점에 올려다주는 결정적인 만남이 이뤄진다. 색채를 해방시킨 화가라고 평가받는 앙리 마티스의 1911년 작 '레드 스튜디오(Red studio)'와의 만남이다.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처음 이 작품을 보게 된 로스코는 이 작품의 색채가 가져다주는 몰입감에 빠져들어 한 달 동안 매일 박물관에 드나들며 이를 관찰하고 연구한다. 그는 훗날 이 작품을 두고 "당신은 그 색이 되고, 마치 음악에 심취하듯 흠뻑 빠져들 것"이라고 말했다. 그 그림 앞에서의 시간이 자신의 그림을 탄생시켰다고 말한 로스코는 이 작품을 통해 어떠한 형태와 이미지도 색과 면 이상의 표현을 할 수 없다는 걸 깨닫는다.

1946년 이후 '멀티폼'이라는 화풍으로 복잡하고 오묘한 추상적인 색면들로 캔버스를 채우던 로스코는 '레드 스튜디오'와의 만남 이후 더 간결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거대한 캔버스 위에 기껏해야 두세 개로 칠해진 색덩어리를 그렸다. 이 단순한 색덩어리는 슬픔을 비롯한 인간의 다양한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로스코는 이를 두고 "내 그림 앞에서 우는 사람은 내가 그것을 그릴 때 느낀 똑같은 종교적 경험을 하는 것"이라고 했다.

로스코는 자신의 그림을 감상할 때는 18인치(약 45㎝) 거리를 두고 바라볼 것을 권장한다. 그 이유는 보는 이로 하여금 화가로서의 로스코 자신이 느꼈던 감정을 느껴볼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2015년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전시가 열렸을 때 나는 그가 권장한 이 방법으로 그의 그림을 보지는 못했다. 언젠가 로스코가 마티스의 그림을 한 달 동안 들여다보면서 그 시간을 축복이라고 말한 것처럼 나도 로스코가 말한 그 방법으로 그의 그림을 들여다보면서 축복 같은 시간을 다시 한번 가질 수 있기를 바란다. 만약 그럴 수 있다면 '슬프다'는 감정의 다양한 변주들을 대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 그의 그림으로 내 마음을 이제는 오래 들여다볼 수도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