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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0월 23일 수요일

교양·진학 인문

죽음 앞두고 그린 칼로 그림서 영감 쇠락한 왕의 비탄 경쾌한 리듬에 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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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드플레이. 【워너뮤직】
 

2008년 영국 록밴드 콜드플레이가 '비바 라 비다(Viva La Vida)'라는 곡을 내놓았을 때 세상은 열광했다.

이 곡은 그해 미국 빌보드 핫 100과 영국 싱글 차트에서 모두 1위를 차지했고, 2009년 그래미 어워드 올해의 노래상을 수상했다.

이 곡은 권좌에서 내려온 쇠락한 왕의 시점에서 부르는 혁명의 노래로, 콜드플레이의 리더 크리스 마틴은 어느 날 불현듯 떠오른 "나는 한때 세상을 지배했었지(I used to rule the world)"라는 가사를 시작점으로 이 곡을 완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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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다 칼로의 마지막 그림 '비바 라 비다(Viva La Vida)'.

'Viva La Vida'의 앨범 커버에는 외젠 들라크루아의 그림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이 쓰였다. 1830년 7월 샤를 10세의 절대주의 체제에 반발해 파리 시민들이 일으킨 소요 사태 중 가장 격렬했던 7월 28일의 장면을 묘사한 그림이다. 이 그림은 크리스 마틴이 구현한 역동적인 사운드 그리고 혁명적인 가사와 조화를 이뤄 하나의 작품을 완성한다.



들라크루아의 그림이 직접적으로 앨범 커버에 드러나긴 하지만 이 곡에는 또 다른 그림에서 받은 영감이 녹아 있다. 그 그림은 바로 이 곡의 제목으로 따오기도 한 멕시코 초현실주의 화가 프리다 칼로(1907~1954)의 그림 '비바 라 비다(인생이여 만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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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다 칼로.

2007년 3월 멕시코 공연에 나선 콜드플레이는 공연을 마친 뒤 프리다 칼로가 대부분의 생을 보낸 멕시코시티의 코요아칸을 방문했다. 자연스레 프리다 칼로의 그림을 감상하는 일정이 이어졌고, 크리스 마틴은 여기서 프리다 칼로가 생을 마감하기 8일 전 남긴 그림인 '비바 라 비다'를 만났다.

멕시코 태생의 여성 화가인 프리다 칼로는 고통으로 점철된 삶을 살았다. 6세 때 소아마비를 얻고, 18세 때 온몸이 부서질 정도로 큰 교통사고를 당했으며, 그 후 33차례의 외과수술, 발가락 일부와 오른쪽 다리 절단 등 죽을 때까지 육체적 고통에 시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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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그림 가운데는 유난히 자화상이 많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사고로 실의에 빠져 있던 그녀를 위해 그녀의 아버지가 침대 위에 거울을 설치해주고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도구를 가져다주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매일 아침 눈을 뜨며 마주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며 자신의 정체성과 존재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했다.

평생 휠체어를 탈 것이라는 의사의 말과 달리 불굴의 의지로 걷기 시작한 칼로는 당시 멕시코의 국민화가이자 벽화 운동을 주도했던 디에고 리베라를 찾아간다. 둘은 사랑에 빠지지만 디에고의 외도와 그 사이 겪은 수차례의 유산 등에 따른 좌절은 그녀에게 육체적 고통에 버금가는 정신적 고통을 남긴다.

그리고 디에고의 작업실을 청소해주던 자신의 친동생이 그와 바람이 나는 사건을 목도하면서 그녀는 엄청난 충격과 실의에 빠지게 된다. 훗날 그녀는 디에고 때문에 생긴 고통을 이렇게 묘사하기도 했다. "사는 동안 두 번의 커다란 사고를 당했다. 하나는 전차와 충돌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디에고를 만난 것이다. 두 사고를 비교하면 디에고가 더 끔찍했다."

극심한 신체적·정신적 고통 속에서 살아가던 그녀는 죽음에 가까워지고 있을 때 설익은 수박부터 잘 익은 수박까지 일곱 가지 수박을 화폭에 가득 그렸다. 그리고 가운데 한 덩이엔 'Viva La Vida'라고 크게 적었다.

수박은 한여름의 상징이며 청춘을 은유하기도 한다. 과즙이 넘치는 붉은 수박과 커다랗게 박혀 있는 수박씨들, 단단한 초록 껍질에 싸여 속을 알 수 없는 수박과 도려내져 누렇게 변색된 수박까지. 그녀는 이 일곱 가지 수박을 통해 자신이 경험한 인생을 사람들에게 내보이고 싶었는지 모른다.

다가오는 죽음의 그림자 앞에서 고통으로 가득했던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며 아이러니하게 자신의 이름과 'Viva La Vida'를 새겨넣은 그녀. 가슴 먹먹해지지는 이 문장은 콜드플레이가 쇠락한 왕의 비탄을 아이러니하게도 너무나 혁명적이고 경쾌한 리듬 위에 실을 수 있게 한 영감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