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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01월 20일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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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카소가 질투한 예술가, 인간 숙명을 조각하다

경매에서 약 1200억원에 팔린 `걸어가는 사람`  [로이터 = 연합뉴스]
사진설명경매에서 약 1200억원에 팔린 `걸어가는 사람` [로이터 = 연합뉴스]

1차 세계대전 직후 유럽의 예술가들은 다짐한다. 절대로 인간의 이성을 믿지 않겠다고. 논리와 합리성으로 무장한 인간이 저지른 비극은 논리로 설명 불가능했다. 예술가들은 인간의 민낯을 들추어내려 했다. 그들은 하나둘 파리에 모여들었다. 프로이트의 책을 끼고 무의식, 꿈, 상상, 욕망을 탐구했다. 세상은 이 예술가들을 초현실주의자라고 불렀다. 이들을 하나로 묶어 조직화한 인물은 미술평론가 앙드레 브루통이다.

스위스 출신 알베르토 자코메티는 1922년 파리로 넘어왔다. 처음엔 그림을 그렸지만 금세 자신의 길이 아님을 깨달았다. 그는 장르를 조각으로 바꾼다.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상상 속 형상을 빚었다. 자코메티는 금세 브루통 눈 안에 들어왔다. 브루통과 그의 추종자들은 자코메티를 보고 확신했다. 이 남자야말로 초현실주의의 이상을 제대로 구현할 예술가라고. 자코메티도 초현실주의자들과 어울리며 그들에게 영향을 받는다. 하지만 자코메티는 오래 안주하지 않았다. 여동생을 비롯한 가까운 사람들이 예고 없이 세상을 떠났다. 자코메티는 낯선 감정에 사로잡힌다. 나약한 인간에 대해 깊게 고민했다. 그에겐 죽음이 가장 중요한 화두가 됐다. 당시 파리에는 자코메티처럼 인간의 본질이 무엇인지 탐구하고, 질문을 던지고, 토론하는 무리들이 있었다. 그들은 '실존주의자'라고 불렸다.

◆ 자코메티와 사르트르
 
1938년 파리의 한 카페에 앉아 있는 자코메티에게 한 남자가 다가왔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여기서 당신을 종종 보았습니다. 어쩌다 보니 돈이 하나도 없는데 제 술값 좀 대신 내주실 수 있습니까?" 자코메티는 이 남자의 술값을 대신 치렀다. 자코메티에게 다가온 남자는 장 폴 사르트르다. 자코메티는 우연히 20세기 지성계 거인을 만났고, 금세 친구가 됐다. 자코메티는 자연스레 사르트르의 실존주의 철학을 흡수한다.

2차 대전이 발발했다. 자코메티는 스위스로 피란을 떠난다. 파리에서 교류했던 사람들이 하나둘 목숨을 잃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자코메티의 편집증과 자기파괴적 성향이 짙어졌다. 죽음의 공포는 자코메티의 예술세계를 바꿔버린다. 2차 대전을 기점으로 자코메티는 앙상한 인간상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를 위대한 조각가로 만들어준 작품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2차 대전이 끝난 직후 자코메티는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남자'(1947)를 완성한다. 세로 길이가 1.8m에 달하는 인간 청동상이다. 이 남자는 전쟁포로처럼 삐쩍 말랐다. 고독한 인간을 대표하는 듯한 분위기를 풍긴다. 금방 무너질 것 같지만 나약해 보이지는 않는다. 어떤 확신과 결의에 차 있기 때문이다. 왼손으로 누군가를 부르며 오른손 검지로 어딘가를 가리킨다. '내가 어떤 길을 발견했으니 함께 걷자'고 웅변하는 포즈다. 2015년 이 작품은 경매에서 1550억원에 낙찰되며 가장 비싼 조각품이란 지위를 얻는다.

◆ "피카소는 그저 천재에 불과했네"

자코메티에게 반한 예술가 중에는 파블로 피카소도 있었다. 거만했던 피카소는 스무 살이나 어렸던 자코메티만큼은 인정했다. 그는 종종 자코메티를 찾아 자신의 작품을 비평해달라고 부탁했다. 피카소는 자신이 이룬 것들을 보란 듯이 누린 인물이었다. 금세 끓어오르고, 어느 순간 폭발할지 모르는 괴물 같은 마력을 지닌 예술가였다. 자코메티는 피카소와 전혀 다른 기질을 지닌 예술가였다. 그는 명성을 얻은 후에도 묵상하듯 초라한 작업실에서 창작에 매달렸다. 자코메티를 향한 피카소의 감정은 질투로 바뀐다. 피카소는 자코메티 앞에서 비아냥거리기 시작했다. 뒤에서도 험담을 늘어놨다. 끝내 둘의 교류는 끝난다. 자코메티는 피카소를 두고 이렇게 말했다. "예술가인 줄 알았는데 그저 천재에 불과했네."

◆ "나는 걸어야만 한다"

2017년 서울 예술의전당에 자코메티 작품 120여 점이 왔다. 이 작품들의 가치는 약 2조1000억원이었다. 그의 조각에 후한 값이 매겨진 배경엔 희소성이 큰 몫을 차지한다. 현존하는 자코메티 작품 수는 그가 활동한 기간에 견주면 매우 적다. 자코메티는 자신의 작품을 부숴버리기 일쑤였다. 실패작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는 불안, 고독, 소외, 고통이 인간의 본질이라고 여겼고, 자신이 본 것을 조각에 담으려 했다. 하지만 그는 실패할 것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인간을 완벽히 정의하는 건 우주의 신비를 풀었다는 말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자코메티에겐 나쁜 실패와 나은 실패만 있었을 뿐이었다.
1960년 완성된 '걸어가는 사람'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남자'와 함께 자코메티 대표작으로 꼽힌다. 바스스 무너질 것 같은 인간이 우뚝 서 있다. 이 불안한 존재는 큰 보폭을 그리면서 앞으로 발을 내딛는 중이다. 누군가는 전쟁이라는 비극을 겪고도 우뚝 일어나 앞으로 향하는 인간의 숭고함을 느꼈다. 반대로, 온몸이 풍화하는 고통에 부딪히면서도 꾸역꾸역 살아야 하는 고단한 인간을 본 사람도 있다.

자코메티는 이런 말을 남겼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그리고 그 끝이 어딘지 알 수는 없지만, 그러나 나는 걷는다. 그렇다. 나는 걸어야만 한다." 숭고한 인간이든, 고독한 인간이든 모두 걷는다. 이 세상에 내던져진 이상 누구나 걷고, 걸을 수밖에 없다. 종착점이 어떤 풍경일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래도 자코메티가 말한 대로 우리는 오늘도 한 발을 내딛는다.

[조성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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