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 바이러스로 종말을 맞고, 소수 인간만 살아남은 세상. 이른바 '좀비 아포칼립스'로 불리는 세계관은 대중문화 곳곳에 전염병처럼 퍼졌다. '레지던트 이블'(2002), '새벽의 저주'(2004), '나는 전설이다'(2007), '부산행'(2016), '창궐'(2018) 등 좀비 영화는 동서양 구분 없이 쏟아지는 중이다. 이 많은 콘텐츠에 등장하는 좀비는 모두 비슷하다. 이 좀비들은 모두 한 명의 손에서 탄생했기 때문이다. 좀비 조물주 이름은 조지 로메로다. 오늘날 우리가 아는 좀비는 모두 조지 로메로 감독의 영화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1968)에서 기어 나온 것들이다.
◆ 좀비는 노예였다
물론 영화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 이전에도 좀비는 있었다. 좀비는 아이티 민간신앙 부두교에서 유래했다. 하지만 부두교 좀비는 지금 좀비와 많이 다르다. 초기 좀비는 괴물보다는 노예에 가까웠다. 부두교 주술사들은 멀쩡한 사람에게 특수한 약물을 주입해 환각 상태로 만들었다. 영혼을 뺏긴 사람들은 농장주의 노예(좀비)가 됐다. 좀비는 의식 없이 기계처럼 일했다.
가련했던 좀비 이미지는 조지 로메로 데뷔작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에서 전복된다. 조지 로메로는 이 영화를 통해 좀비에 관한 다음과 같은 공식을 세웠다. 좀비는 무덤에서 기어 나온 시체다. 시체답게 느리고, 굼뜨다. 식욕이란 본능만 남아 살아있는 사람을 먹는다. 좀비에 물린 사람은 좀비가 된다. 이렇게 조지 로메로는 우리에게 익숙한 좀비 이미지의 원형을 만들었다.
◆ 정치적인 좀비 영화의 탄생
조지 로메로와 그의 영화가 전설이 된 건 좀비 이미지를 구축해서만은 아니다. 관객들은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에서 당시(1960년대) 미국 사회를 휘감고 있던 분노의 냄새를 맡았다. 이 영화는 인종 갈등, 냉전, 핵 공포, 베트남 전쟁에 대한 텍스트로도 읽힌다. 조지 로메로는 호러 영화가 정치·사회적 화두를 던지는 메신저로서 얼마나 탁월한 장르인지 증명한 감독이다.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은 공동묘지에서 시작한다. 남매가 아버지 묘를 찾았다. 멀리서 키 큰 남자가 심상치 않게 다가온다. 남자는 남매를 공격한다. 그는 무덤에서 기어 나온 좀비였다. 동생을 구하려던 오빠는 좀비와 싸우다 넘어져 기절한다.
그 틈에 동생은 도망쳐 오두막으로 피신한다. 오두막으로 생존자 몇 명이 모인다. 그 안에서 유일하게 흑인인 벤이 이 영화의 주인공이다. 1960년대 영화에서 흑인 주인공은 이례적인 캐스팅이었다.
◆ 좀비보다 더 끔찍한 건
영화는 극한에서 인간이 드러내는 민낯과 어리석음에 집중한다. 오두막 안에 갇힌 생존자 대부분은 좀비들의 공격에 허둥지둥 어쩔 줄 모른다. 그 와중에 자신만 살겠다고 타인을 희생시키는 인물도 있다. 이타적으로 행동하는 인간은 주인공 벤뿐이다. 지옥 같은 밤이 지나고, 오두막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사람은 벤이다. 가장 끔찍한 장면은 마지막에 있다. 백인만으로 꾸려진 자경단은 좀비를 놀이처럼 사냥하며 벤이 은신해 있는 오두막까지 찾아온다. 구조대 인기척을 느낀 벤은 창밖으로 얼굴을 내민다. 자경단은 벤을 좀비로 오인하고 사살한다. 벤의 시신은 다른 좀비와 함께 꼬챙이에 꿰어 불태워진다. 영화는 그렇게 끝난다.
백인 자경단원이 벤을 좀비로 오인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관객도 많았다. 살아있는 인간임을 알고도, 흑인이기에 사냥 연습하듯 방아쇠를 당겼다는 것이다. 이 영화는 인종 갈등이 극에 달했던 시기에 나왔다. 영화가 개봉한 1968년은 마틴 루서 킹 목사가 암살된 해였다.
◆ 쇼핑몰에 갇힌 인간들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으로부터 10년 후 조지 로메로는 후속편 '시체들의 새벽'으로 돌아온다. 주인공들은 좀비를 피해 대형 쇼핑몰로 피신한다. 필요한 물건만 챙겨 쇼핑몰을 떠나려 했지만 계획을 바꾼다. 쇼핑몰의 풍요로움에 푹 빠져 안주한다. 불청객이 쇼핑몰을 비집고 들어왔다. 불청객은 좀비가 아닌 다른 생존자들이었다. 쇼핑몰 자원을 두고 인간끼리 싸운다. 그 전쟁을 틈타 좀비들이 쇼핑몰 안으로 쏟아져 들어온다. 좀비들은 상품 매대를 어슬렁거린다. 마치 소비라는 본능만으로 움직이는 시체처럼. 이 영화가 전달하는 메시지는 전작만큼 선명하다. 조지 로메로는 소비지상주의라는 거대한 파도에서 허우적거리는 인간을 좀비에 빗대 풍자했다. 이 영화는 2004년 같은 제목으로 리메이크 됐다. 국내에선 '새벽의 저주'라는 타이틀로 개봉했다. '좀비 3부작' 마지막 편 '시체들의 날'은 전작보다 덜 주목 받았지만 조지 로메로는 세 편의 영화로 '좀비 대부' 지위를 얻었다.
조지 로메로 영화에서 직시하기 힘든 건 언제나 좀비가 아니라 탐욕스럽고 잔인한 우리의 얼굴이었다. 조지 로메로는 죽었지만, 그가 남긴 좀비들은 끊임없이 살아나 되물을 것이다. '인간은 도대체 왜'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