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 대표작은 '골콩드'다. 이 그림엔 중절모 신사 수십 명이 공중에 떠 있다. 그들 세계엔 중력이 없다. 현실 공식이 통하지 않는 이 세상은 낯설고 기묘하다. 마그리트는 왜 이런 그림을 그렸을까.
◆ 신비로운 그림
20대 시절 마그리트는 카탈로그에 실린 한 그림에 시선을 뺏겼다. 이탈리아 화가 조르조 데 키리코가 그린 '사랑의 노래'였다. 고대 그리스 동상의 두상, 붉은 고무장갑, 정체를 알 수 없는 녹색 공이 한데 모여 있는 작품이다.
전혀 상관없는 사물이 한 화면에 등장하는 이 그림은 이질적이다. 우리가 모르는 다른 차원 세상 같은 분위기도 풍긴다. 제목은 왜 '사랑의 노래'인가. 온통 수수께끼다. 키리코의 작품은 마그리트에게 충격을 줬다. 그는 사물을 어떻게 배치하느냐에 따라서도 그림이 신비로워질 수 있다는 사실을 배웠다. 벽지공장 디자이너였던 마그리트는 키리코를 접한 이후 초현실주의 화가의 길을 걷는다.
1920년대 후반 마그리트는 벨기에를 떠나 프랑스로 간다. 그곳에서 마그리트는 앙드레 브르통, 살바도르 달리 등 초현실주의자와 교류한다. 마그리트가 만난 예술가의 주요 관심사는 무의식이었다. 그들은 꿈, 욕망, 공포를 주제로 삼았다. 하지만 마그리트는 무의식이라는 유혹에서는 한 발치 떨어져 있었다. 그는 키리코의 '사랑의 노래'처럼 현실이라는 축대 위에 낯선 세상을 쌓으려 했다.
마그리트는 '데페이즈망' 기법을 발전시키며 자신만의 초현실주의를 구축한다. '데페이즈망'을 우리말로 옮기면 '추방하는 것'이다. 어떤 대상을 원래 있던 자리에서 뚝 떼어내 엉뚱한 맥락 안에 가져다 놓는 미술기법이다. 예컨대, 기차가 레일 위를 달리지 않고 벽난로에서 나온다고 상상해보자. 활짝 펼쳐진 우산 위에 올려져 있는 물컵을 떠올려보자. 모두 마그리트가 그린 이미지다. 기차와 물컵은 제 위치에서 벗어나는 순간 '낯선 어떤 것'이 된다.
◆ 파이프는 왜 파이프인가
마그리트는 1929년 '이미지의 반역'으로 단번에 존재감을 드러낸다. 파이프를 사실적으로 그리고 그 아래에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는 글을 적어놓은 작품이다. 파이프를 그려놓고 왜 파이프가 아니라고 하는 걸까. 실제 파이프가 아니라 파이프 그림일 뿐이라고 말하는 건가. 한발 더 나아가면 이런 생각도 든다. 파이프라는 '사물'과 파이프라는 '언어' 사이엔 어떤 관계가 있을까. 생각할수록 미로를 헤매는 기분이다.
초현실주의자들은 삶도 예술의 연장선으로 여겼다. 자유로운 연애는 기본이었고, 주목받기 위해 기행도 일삼았다. 마그리트는 달랐다. 그는 조용한 삶을 선택했다. 3년간 파리에 체류했던 마그리트는 벨기에로 돌아간다. 아내 조제트와 삶을 꾸리며 성실하게 작품에 몰두했다. 그는 평범한 삶 속에도 얼마든지 미스터리는 존재한다는 듯 묘한 그림을 그렸다.
◆ "당신은 나보다 운이 좋군요"
마그리트가 1928년에 그린 '연인'에선 두 남녀가 포옹하고 있다. 이들은 입을 맞추고 있지만, 엄밀히 따지면 키스는 아니다. 각자의 얼굴에 하얀 베일이 덮여 있기 때문이다.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사람들은 이해하고 싶었다. 누군가 이 그림을 마그리트 인생과 연관 지어 해석했다. 마그리트 어머니는 아들이 열세 살일 때 강에 투신했다. 마그리트는 강에서 시신을 건져내는 장면을 봤다. 흰 잠옷이 위로 젖혀져 얼굴을 덮고 있었다. 마그리트가 본 어머니의 마지막 모습이 '연인'의 모티브라는 분석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마그리트는 이런 해석을 모욕으로 받아들였다. 자신의 그림을 일목요연 설명하는 자들에게 "당신은 나보다 운이 좋은 사람이군요"라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누군가가 내 그림을 본다면 '이게 무슨 의미지?'라고 물을 것이다. 내 그림은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는다. 미스터리는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말도 남겼다. 마그리트는 관객이 자신의 그림을 논리적으로 해석하는 데 실패할 때 흡족해했다.
마그리트는 일생 동안 '신비'라는 단어를 강조했다. 그는 사람들이 신비함을 그 자체로 받아들여 기꺼이 낯선 감정에 사로잡히길 원했다. 그래서 마그리트는 중력을 거스르고, 물리 법칙을 무시하고,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며 모두가 믿는 것들을 의심했다. 일상을 새로운 눈으로 보려했던 한 예술가의 초현실적인 도전이었다.
◆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들
사람들은 달빛을 머금은 밤바다 앞에서 잠시 말을 잃고, 볕이 쨍한 날 쏟아지는 비에 낯섦을 느끼고, 처음 보는 무덤 앞에서 멈추기도 한다. 달물결, 여우비, 죽음이라는 자연법칙은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누군가는 거기에서 설명 불가능한 신비를 경험한다.
마그리트 그림도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관객은 마그리트 작품 앞에서 언어로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에 사로잡힌다. 그 순간 누군가는 이런 것을 깨달을지도 모른다. 일상이라는 커튼 뒤에 영원히 해답을 찾을 수 없는 의문이 가득 웅크리고 있다는 사실을.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죽음이라는 미지로 향하는 우리의 삶 자체가 수수께끼라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