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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01월 20일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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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 여왕의 외침…우리 모두 존중받길 원해요

미국 디트로이트에는 '8마일 로드'가 있다. 이 도로엔 도로 이상의 의미가 있다. 1950년대부터 '8마일 로드' 북쪽엔 백인이, 남쪽엔 흑인이 모여 살았다. 백인은 이 도로를 따라 콘크리트 차단벽까지 세우며 흑인들을 배척했다. 현재도 이 도로는 디트로이트 빈부 경계선이다.

1967년 7월 백인 경찰이 '8마일 로드' 남쪽 무허가 술집에서 흑인을 대대적으로 단속했다. 이 사건이 도화선이 됐다. 흑인들이 거리로 나왔다. 그리고 폭발했다. 일주일도 안 되는 시위 기간에 43명이 사망했다. 1992년 LA폭동 전까지 가장 규모가 큰 흑인 시위였다. 디트로이트 거리에서 흑인들은 자신들을 존중해 달라며 어리사 프랭클린 노래 'Respect'를 합창했다. 이 곡은 그해 빌보드 싱글 차트 1위에 올랐다.

◆ 파바로티 대타로 나선 어리사

어리사 프랭클린의 별명은 '솔(Soul)의 여왕'이지만, 여왕보다는 황제에 가깝다. 그가 이룬 업적 몇 가지를 나열하면 이렇다. 그래미 어워즈 18회 수상, 2008년 롤링스톤지 선정 '역사상 가장 위대한 가수' 1위, 여성 가수 중 100만장 넘게 팔린 앨범 최다 보유, 흑인 여성 첫 로큰롤 명예의 전당 입성. 마틴 루서 킹 목사 장례식에서 추모곡을, 버락 오바마 대통령 취임식에서 축하곡을 부른 가수.

프랭클린의 업적과 명성의 원천은 가창력이었다. 그를 소개하려면 꺼내야 하는 경이로운 일화가 있다. 1998년 그래미 시상식에서 세계 최고의 테너였던 파바로티가 오페라곡 '네순 도르마'를 부를 예정이었다. 하지만 그는 공연 직전 건강상 이유로 불참을 통보한다. 사회자는 심각한 표정으로 이 소식을 관중에게 전했다. 이어서 시상식에 참석한 어리사 프랭클린이 파바로티 대신 이 곡을 부를 것이라고 말했다. 파바로티 음역에 키를 맞췄던 오케스트라는 그대로 연주를 시작했다. 프랭클린이 노래를 부른 시간은 겨우 3분 남짓이다. 이 짧은 순간은 미국 대중음악 역사의 하이라이트가 됐다. 프랭클린은 자신의 장르와 거리가 먼 이 오페라 곡을 본인의 노래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재해석했다. 무대에 오르기 전 프랭클린이 가사를 외우고, 연주자들과 합을 맞춘 시간은 10분 남짓이었다.

◆ "내 노래가 구식인가?"

프랭클린은 목사였던 아버지 밑에서 10대 때부터 가스펠을 부르며 가수의 길을 걸었다. 큰 성공을 가져다준 앨범은 1967년 발표한 'I never loved a man the way I love You'다. 이 앨범에 수록된 'Respect'는 프랭클린 대표곡을 논할 때 가장 먼저 언급된다. 서두에서 썼듯, 이 곡은 디트로이트 흑인 인권운동 속에서 불렸다. 이후 여성, 성소수자 운동에서도 불리며 상징적인 곡이 됐다. 'Think'와 'Chain of fools'로도 여성의 당당함을 노래했다.

반세기 넘게 노래를 부른 프랭클린에게 슬럼프가 없었던 건 아니다. 1970년대 중반부터 히트곡 가뭄이 이어지며 앨범 판매 성적이 저조해졌다. 이 시기는 음악 외적으로 프랭클린에게 혹독한 계절이었다. 건강이 나빠진 아버지를 간병해야 했고, 두 번째 이혼이라는 아픔도 겪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부진을 개인사에서 찾지 않았다. 대신 "내 노래가 구식인가?"라고 자문한 뒤 새로운 프로듀서를 영입해 모험에 나섰다.

스스로를 돌아본 프랭클린은 1985년 'Who's zoomin' who?' 앨범을 출시한다. 가스펠 기반 솔(Soul)을 고집하던 프랭클린은 당시 유행하던 팝이나 록 사운드를 가미했다. 이 앨범으로 프랭클린은 첫 플래티넘 디스크(100만장 이상 판매) 기록을 세웠다. 제2의 전성기가 열렸다. 앨범에 수록된 곡 중 가장 널리 알려진 노래는 'Sisters are doin' it for themselves'다. 이 노래는 영국 신스팝 듀오 '유리스믹스'와 프랭클린이 함께한 듀엣곡이다. 전위적인 음악을 했던 '유리스믹스'와 프랭클린의 만남은 그 자체로도 파격이었다. 프랭클린은 꾸준히 시대와 호흡했다. 그는 2014년 한 무대에서 자신보다 마흔여섯 살 어린 영국 가수 아델의 대표곡 'Rolling in the deep'을 불렀다.

◆ 존경 속에서 떠나다

췌장암과 오랫동안 싸워 온 프랭클린은 지난해 8월 16일 세상을 떠났다. 추모 열기는 뉴욕의 지하철역 '프랭클린 스트리트역'에도 퍼졌다. 팬들은 애도의 의미로 'Franklin Street'라는 현판 앞에 'Aretha'라는 단어를 적었다. 지하철도 당국은 이 낙서에 대해 프랭클린의 히트곡 제목을 빌려 'R.E.S.P.E.C.T'라고 답했다. 경이로운 예술가의 재능은 더 나은 세상을 꿈꾸게 한다. 이 사실을 증명한 프랭클린은 마땅히 누려야 할 '존경' 속에서 떠났다.

최근 퓰리처상 이사회는 프랭클린게 퓰리처상 특별감사상을 수여했다. 50년 이상 미국 음악과 문화에 지워지지 않는 흔적을 남겼다는 이유에서다. 여성 단독으로 이 상을 수상한 건 프랭클린이 최초다.

[조성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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