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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6월 24일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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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광장 '거미줄 도로'… 고종황제가 밑그림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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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경운궁 앞 서울광장. 매경DB
"…경운궁을 출발해 원구단까지 도로 좌우로 많은 군사들이 정렬하였고, 순검들도 몇백 명이 벌려 서서 황국의 위엄을 나타내었고 좌우로 휘장을 둘렀다. 시위대 군사들이 황제의 어가를 호위하며 지나는데 그 위엄이 장하고 총 끝에 꽂힌 창들이 석양에 빛나더라…." - 독립신문

1897년 10월 고종의 황제즉위식 행사에 대한 기록이다. 1897년 경운궁으로 환궁한 고종은 국호를 '대한(大韓)'으로 하고 임금을 황제로 칭하며 대한제국의 선포를 알렸다. 그해 10월 고종은 황제로 즉위하였고 연호로 부국강병의 뜻을 담아 '광무'로 정했다. 경운궁(덕수궁)은 대한제국의 첫 황국이 되었고, 경운궁 맞은편에 있던 중국 사신이 머물던 건물들을 허물고 하늘에 제사 올리는 환구단을 건설하였다.



경운궁은 왜 덕수궁으로 불리나요?

원래 궁궐 이름이 '경운궁'이고 '덕수궁'은 잘못된 표현입니다. 덕수궁은 물러난 왕이 머무는 곳을 의미하는 일반 명사입니다. 실록을 보면 태종(이방원) 때 태조가 머물던 곳을 '덕수궁'이라고 기록했습니다. 1907년 헤이그 밀사 사건을 구실로 일본이 고종황제를 강제로 퇴위시키고 마지막 순종황제를 즉위시켰습니다. 그때 물러난 고종황제가 있던 경운궁을 세상 사람들은 '덕수궁(德壽宮)'이라고 불렀던 것입니다. 목숨 수(壽) 글자를 넣어 물러난 왕께서 오래오래 건강하기 바라는 마음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고종은 왜 경운궁(덕수궁)을 황궁으로 삼았을까요?

경운궁이 있는 정동에는 서양 여러 나라의 공사관이 많았습니다. 1883년 미국공사관을 시작으로 영국, 러시아, 프랑스, 독일 공사관이 자리를 잡으며 경운궁 주변은 서구 세력을 만나는 장소이면서 일본의 간섭이 닿지 않는 외교의 중심지였습니다. 몇 년 전 경복궁에 침입한 일본인에게 왕비를 잃었던 고종은 상대적으로 안전한 경운궁을 선택했을 것입니다.

경운궁은 위기 상황에서 나라를 재건했던 궁궐이라는 역사성도 갖고 있습니다. 임진왜란으로 경복궁이 불타고 의주에서 돌아온 선조는 경운궁에서 나라를 정비했습니다. 광해군과 인조가 즉위한 궁궐 역시 경운궁이었습니다. 1893년 10월 고종은 경운궁에서 선조의 수도 환궁 300주년을 축하하는 행사를 개최하였습니다. 고종은 경운궁에서 다시 시작될 조선왕조 300년을 꿈꾸었을 것입니다.



경운궁이 대한제국의 상징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나요?

고종황제는 경운궁을 중심으로 새롭게 대한제국의 서울을 만들고자 했습니다. 기존 경복궁에서 광화문 사거리까지의 육조거리를 경운궁까지 도로를 크게 연장하고 확장하였습니다. 현재 경복궁에서 서울시청까지 일직선으로 연결된 큰 도로가 바로 고종황제 때 시작된 것입니다. 조선왕조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경복궁에서 새로운 황제의 나라 경운궁까지 조선의 정통성이 계승됨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고종황제는 미국에 나가 있던 외교관 박정양, 이채연의 의견을 받아들여 미국 수도 워싱턴DC의 방사형 도로 체계를 도입합니다. 경운궁 바로 앞 지금의 서울광장이 거미줄처럼 사방으로 도로가 뻗어나간 모양이 된 것이 바로 이 때문입니다.

서울 최초 근대적 공원인 '탑골공원'이 조성된 것도 1897년 대한제국의 도시계획 일환입니다. 길을 넓히는 사업을 통해 도시 위생과 미관은 개선되었으며 하수도를 정비하고 오물을 수집하는 장소와 시설도 마련되었습니다. 곳곳에 가로등과 전등이 설치되었습니다. 해당 시기 서울(한성)의 거리에는 전차가 다니고 있었습니다. 아시아에서는 도쿄 다음 두 번째로 전차가 도입된 것입니다.



일본은 경운궁을 어떻게 훼손했나요?

일본은 경운궁 중심의 대한제국 도시계획을 철저히 무시했습니다. 고종황제 즉위식이 거행된 환구단은 파괴되고 1913년 일본인을 위한 '조선철도호텔'(지금의 웨스틴조선호텔 터)이 만들어졌습니다.

일본은 1926년 경복궁 자리에 조선총독부를 건립하고, 남대문 쪽 조선은행 본점(현재의 한국은행 화폐금융박물관) 주변에 새로운 식민 지배를 위한 도로망을 확대합니다.

일본은 황제의 궁궐이었던 경운궁 정문에 있던 계단을 없애고 자동차가 다닐 수 있는 경사면을 설치했습니다. 자동차를 타고 고종황제를 만나러 가겠다는 생각이었을 것입니다. 순종황제를 위로한다는 명목으로 창경궁에 식물원과 동물원을 설치하고 나중에는 입장권을 팔아 조선의 궁궐을 놀이동산으로 전락시켜버렸습니다.

수많은 경운궁의 건물들은 망국의 슬픔 속에 일본인 가옥을 짓는 재료로 거의 대부분 철거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