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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14일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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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층민 차별 못 참아˝ 고려 뒤흔든 형제의 반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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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주 명학소의 망이, 망소이 등이 무리를 불러 모아 스스로 산행병마사라 하고, 공주를 공격하여 함락시켰다. 정부는 채원부, 박강수 등을 보내어 달랬으나 적은 따르지 않았다. ……

망이 등이 말하기를, '이미 우리 고향을 현(縣)으로 승격시키고 수령을 두어 위로하더니, 이제는 다시 군대를 일으켜 내 어머니와 아내를 감옥에 가두었으니 그 뜻이 어디에 있는가? 차라리 칼날 아래에서 죽을지언정 항복한 포로가 되지 않을 것이며, 반드시 개경[王京]까지 갈 것이다'라고 하였다.……" -고려사

고려시대 무신집권기, 망이·망소이 형제는 차별받던 '소(所)'의 백성들과 함께 국가의 수탈에 대항해 큰 농민봉기를 일으켰다. 망이·망소이의 난으로 시작된 하층민의 봉기는 전주 관노의 난(전주), 김사미·효심의 난(경상도 운문·초전), 만적의 난(개경), 이언년 형제의 난(담양) 등으로 이어지며 사회적으로 큰 변화를 만들었다. 계속되는 하층민의 봉기로 차별받던 '향(鄕)·소(所)·부곡(部曲)'은 점점 사라지게 되었다. 고려시대 이름 없는 백성들이 스스로 생존을 위해 들고 일어나 새로운 변화를 만들었던 것이다.



'향·소·부곡'의 백성들은 어떤 차별을 받았나요?

고려시대에는 일반 '군현(마을)'과 다른 '향·소·부곡'이라고 불리는 특수행정구역이 있었습니다. '향·부곡' 사람들은 주로 농민이었고, '소'의 주민들은 국가가 필요로 하는 금이나 은, 철, 종이, 먹, 도자기 등을 만드는 수공업자들이었습니다.



1170년 정중부 등 차별받던 무신들은 무신정변을 일으켜 왕을 죽이고, 문신들을 많이 죽였습니다. 일부 살아남은 문신들은 무신에 대항해 1174년 서경유수 '조위총의 난'을 일으켰습니다. 무신정권은 북쪽(지금의 평양)에서 일어난 조위총의 난을 진압하는 몇 년 동안 수많은 무기가 필요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철을 생산하고 무기를 제조하는 '소'의 주민들에게 부담이 가중됐고 관리의 수탈이 심해졌습니다. 1176년 공주 '명학소'의 망이, 망소이 형제가 들고 일어난 것은 그 때문입니다.



망이·망소이의 난은 어떻게 끝났나요?

무신정권은 조위총의 난을 막느라 남쪽의 망이·망소이의 난을 초기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했습니다. 초기에는 북쪽의 정예 군대가 아닌 일부 장정들과 승병을 보냈다가 망이·망소이의 무리에게 패배했습니다. 패배에 놀란 무신정권은 '명학소'를 '충성스럽고 순한 마을'이라는 뜻의 충순현으로 승격시키고 지방관을 파견하며 민심을 달래고자 했습니다.

마침내 북쪽의 조위총의 난을 완벽히 진압한 무신정권은 다시 토벌군을 보내 먼저 망이·망소이의 가족을 인질로 잡았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망이·망소이가 2차 민란을 일으켰으나 결국 진압됐습니다. 1년 반 동안 청주를 비롯한 충청도 전역을 장악하고 자신들의 요구를 당당하게 내세웠던 망이·망소이의 난은 고려시대 하층민 봉기의 효시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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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인 강남대성학원 강사·전 이화여고 역사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