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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7월 20일 토요일

교양·진학

교양·진학 인문

흐르는 시간, 나는 그때와 같은 사람일까

모든 것은 변한다는 명제
동일성 개념과 충돌 일으켜

수리해 부품 다 바꾼 배는
처음 내 배와 같은 배일까
우리 삶속 변화의 역설 통해
도덕적 개념 깊이 고민해야

 

[사진 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사진설명[사진 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변하지 않는 것이 있을까? 강물은 흐르고 사람은 자라거나 늙는다. 그래서 고대의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는 우주의 끊임없이 변하는 모습을 '모든 것은 흐른다'는 말로 요약했다. 하지만 어떤 것이 변하려면 어떤 것은 변하지 않아야 한다. 세계는 모습이 어떻게 달라지든지 항상 그 세계이고, 자라거나 늙는 것은 같은 사람이다. 그래서 어떤 것이 변하는 것과 어떤 것이 자기 자신인 것은 동전의 양면이다.

변화와 동일성이 공존한다는 것을 누가 부정할 수 있을까. 하지만 놀랍게도 철학자들은 이 당연한 사실에 의문을 제기했다. 그들은 오래전부터 변화와 동일성이 심각하게 부딪치기 때문에 둘 중 하나를 포기해야 하는 듯 보이는 상황에 주목해왔다. 그런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잠시 멈춰 변화와 동일성에 관해 좀 더 알아보자.

변화와 동일성은 쉽게 이해되는 듯 보이지만 철학자들은 이것들의 의미를 좀 더 엄밀히 다듬어왔다. 우선 어떤 것이 변한다는 건 어떤 것이 한때에 이러하고 다른 때에 저러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나는 오후 1시에 앉아 있고, 오후 2시에 서 있다. 바꿔 말하면 한 사물이 변한다는 건 그것이 서로 다른 때에 서로 다른 속성을 지닌다는 것이다.

 


동일성은 무엇일까. 철학자들도 동일성은 너무 기본적인 개념이라 정의 내리기 어렵다고 보지만 그래도 그것에 있어야 하는 특징을 논할 수 있다고 본다. 우리가 주목해서 볼 특징은 두 가지다. 첫째, a와 b가 동일하면 a를 참으로 서술하는 모든 말은 b에 대해서도 참이어야 한다. 예를 들어 정조와 이산이 동일 인물이면, 정조가 개혁군주였으니 이산이 개혁군주였다는 것도 참이어야 한다. 이는 철학자 라이프니츠에게서 유래해 라이프니츠의 법칙으로 불린다. 둘째, a와 b가 동일하고 b와 c가 동일하면 a와 c도 동일해야 한다. 이는 동일성의 이행성 원리로 불린다.

이제 변화와 동일성이 일으키는 문제가 분명하게 서술될 수 있다. 간단한 문제로 시작해보자. 내가 오후 2시에 머리를 깎는다고 해보자. 그렇다면 오후 1시의 나는 장발이고 오후 3시의 나는 단발이다. 그런데 누군가는 장발이면서 동시에 단발일 수 없다. 즉 장발과 단발은 모순된 속성이다. 이는 오후 1시의 나와 오후 3시의 내가 동일인이 아니라는 뜻인 것 같다. 오후 1시의 나는 장발이지만 오후 3시의 나는 장발이 아니므로 두 인물은 라이프니츠의 법칙을 위반하기 때문이다.

어떤 대상이 분열하는 경우에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테세우스의 배 역설'은 대표적 사례다. '원선'이란 이름의 배 한 척을 생각해보자. 이 배는 낡은 판자를 그때그때 교체하면서 수리된다. 충분한 수리 과정을 거치면 원선의 모든 판자가 교체되고 새로운 판자로 이뤄진 배 한 척이 생긴다. 이를 '수리선'으로 부르자. 한편 배의 주인은 수리 중에 교체되는 판자들을 하나씩 거둬서 자신의 창고에서 그 판자들을 재조립한다. 재조립 과정을 계속 거치면 원선의 모든 판자로 이뤄진 배 한 척이 생긴다. 이를 '재조립선'이라고 부르자. 그렇다면 수리선과 재조립선 중에 어떤 것이 원선과 동일한가. 재조립선과 수리선은 모두 원선에서 조금씩 바뀌었기 때문에 각각 원선과 동일해 보인다. 하지만 동일성의 이행성에 따라 재조립선과 원선이 같고 원선과 수리선이 같다면 재조립선과 수리선도 같아야 하는데 재조립선과 수리선은 명백히 다르다. 원선은 어디로 갔는가.

위의 두 가지 문제는 사람의 변화와 동일성 문제로도 확장될 수 있다. 우선 우리 몸의 세포를 구성하는 물질은 대략 7일이 지나면 전부 바뀐다고 한다. 따라서 한 사람의 7일 전 물질 구성에 대한 참인 이야기는 7일 후의 그 사람에 대해 성립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두 사람은 라이프니츠의 법칙을 어기기 때문에 동일하지 않다. 또 좌뇌와 우뇌 기능은 중복적이라고 한다. 그리고 많은 철학자는 사람의 동일성 기준을 그가 가진 생각이나 기억 등의 연속성이라고 생각한다. 철수의 두뇌를 절개하고서 한쪽 절반을 영수의 죽은 몸에 성공적으로 이식한다고 가정해보자. 그러면 철수와 영수의 생각이나 기억은 동일하다. 하지만 철수와 영수는 엄연히 다른 사람이다. 원래 철수는 누구인가.

철학자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는 여러 방법을 제시해왔다. 어떤 철학자는 한 대상이 어떤 물질들로 구성되는 것과 그것이 그 물질과 동일하다는 것은 다르기 때문에 장발인 사람과 단발인 사람은 동일할 수 있고, 원선과 재조립선은 다를 수 있다고 주장한다. 또 어떤 철학자들은 우리가 사람이나 배로 부르는 것은 시간에 걸쳐 퍼져 있는 대상 전체이기 때문에 장발인 사람 부분과 단발인 사람 부분을 갖는 대상이 있고, 원선을 공통 시간적 부분으로 갖고 수리선과 재조립선을 각각 시간적 부분으로 갖는 두 대상이 있을 뿐이라고 본다. 또 어떤 사람들은 동일성 개념 자체가 모호하다고 보기 때문에 장발인 사람과 단발인 사람이 동일인인지, 수리선과 재조립선이 각각 원선과 동일한지 결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본다.

변화 문제에 대한 답변은 인격의 동일성에 대한 답변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우리는 어떤 근거로 이 사람과 저 사람이 동일인이라고 할 수 있는가. 이전에 잘못을 했던 사람과 우리가 지금 책임을 돌리는 사람은 같은 사람인가. 이렇듯 변화의 문제는 세계의 모습은 물론이고, 우리 삶에 중요한 도덕적 개념을 이해하는 데도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 한충만 선생님은…

연세대 철학과 박사과정

상상국어모의고사 출제위원

대원여고 인문학 강사